어른도 아이도 아닌 소녀가 화자
꿈ㆍ현실 넘나들며 에피소드 전개
여전히 ‘낯설고 어렵고 매혹적’
“읽히지 않고 싶은 불친절한 소설
계속 쓰는 모순이 바로 작가됨”
경험하지 않은 감각을 타인에게 전할 때 우리가 택하는 손쉬운 방법 중 하나는 통념에 동의하는 것이다. 누군가 특정 작품에 꼭 들어맞는 수식어를 발견하면 수식어는 손쉽게 반복되다, 작가의 모든 작품을 규정하는 특징처럼 증식되곤 한다. 보거나 듣지 않은 채.
1993년 데뷔한 배수아의 소설을 수식하는 말은 “낯설고 매혹적”(김동식 ‘우리시대 공주를 위하여’・1996)이다. 전위로 구분할 수도 없는 줄거리 없는 그의 소설은 ‘서사의 상실’과 ‘비문’이 특징처럼 따라붙는다. 한데 포스트모던 시대의 감성을 대표한 중견 작가의 신작이 어떻게 20여년 간 매번 “낯설”수 있을까. 컴퓨터 워드 연습 중 떠오른 상상을 타이핑해 쓴 소설로 데뷔한, 대학 졸업 때까지 한 번도 문학을 공부한 적이 없는 작가는 데뷔 후 독일어를 공부했고, 병무청 공무원을 그만두고 창작과 번역을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20여 년간 꾸준히 “내가 쓰는 모든 소설은 스토리가 있는데, 왜들 스토리가 없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해왔다.
배수아 작가가 단편소설집 ‘뱀과 물’(문학동네)을 냈다. ‘올빼미 없음’이후 7년 만에 낸 소설집은 어른도 아이도 아닌 존재(소녀)를 통해 “원근이 없는 시간”의 세계를 펼쳐놓는다. 20일 경기 고양시에서 만난 배수아는 “어린 시절을 신비롭게 보는 편이다. 그 시간은 지금의 시간과 다르다. 이전의 생에서 지금(의 생)으로 넘어올 때의 기억이 어린 시절에는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가 자신이 번역한 프란츠 카프카의 ‘꿈’의 역자 후기를 대신해서 쓴 ‘눈 속에서 불타기 전 아이는 어떤 꿈을 꾸었나’는 이 책의 안내서 격인 단편이다. 한여름 유원지에서 아버지를 잃은 소녀는 트럭을 타고 아버지가 있다는 ‘스키타이족의 무덤’으로 가기로 한다. 살짝 잠든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경찰에게 소녀는 묻는다. ‘이제 꿈이 시작되는 건가요?’
일곱 살까지 사내였다가 여자로 정체성을 찾는 아이, “아이들의 정부(情婦)”이자 “노인들, 그리고 외로운 개들과 쥐의 연인이기도” 한 미친 여자, 매일 자라는 소녀…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반복해 등장하는 인물과 이들이 엮는 에피소드는 반복되는 문장과 함께 독특한 이미지를 자아낸다. 인물과 에피소드가 반복, 변주되는 단편 7편은 그 자체로 완결된 작품으로도 연작으로도 읽힌다.
‘어린 시절이라니, 그런 건 없습니다. 어린 시절은 망상이에요. (…) 우리는 이미 성인인 채로 언제나 바로 조금 전에 태어나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이니까요. 그러므로 모든 기억은 망상이에요. 모든 미래도 망상이 될 거예요. 어린아이들은 모두 우리의 망상 속에서 누런 개처럼 돌아다니는 유령입니다.’(‘1979’)
‘어린 시절. 그것은 막 덤벼들기 직전의 야수와 같았다고 여교사는 생각했다. 모든 비명이 터지기 직전, 입들은 가장 적막했다. (…) 염세적인 사람은 일생에 걸친 일기를 쓴다. 그가 어린 시절에 대해서 쓰고 있는 동안은 어린 시절을 잊는다. 갖지 않는다. 사라진다.’(‘뱀과 물’)
-소설집 제목인 뱀과 물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작품에 상징을 잘 쓰지 않는다. 순간 떠오른 이미지를 사용하는 편인데, 뱀과 물은 어린 시절 꿈에서 본 이미지다. 소설집 전체가 소녀의 목소리다.”
-최근 몇 년 간 번역가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소설 쓸 때 번역 경험에 영향을 주나?
“그 보다 창작이 번역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사실 한국어 W.G 제발트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발트를 번역한 배수아의 문체가 남는 거다. 모든 번역가는 문체가 있다. 소설가 출신 번역가는 문체가 알려졌을 뿐이다. 위험한 발언일 수 있는데,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형태를 번역물에서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더 나가지 않도록 나를 조절할 때가 있다. 그런 걸 제외하면 번역은 독서와 비슷하다.”
-중문(重文)과 복문(複文)이 난무했던 전작과 대조적으로 모두 직역이 가능한 단문으로 이뤄져 있다. 번역의 경험이 반영된 것 아닌가.
“이 책은 의도적으로 어린 소녀의 시점에서 쓰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만연체를 의도적으로 피했다. 관념과 사변의 세계를 사는 소녀는 아니니까.”
-문장은 명확하게 떨어지는데 읽는 내내 ‘어렵다’를 반복하게 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하는 단편집이다. 소설에서 소녀 화자가 계속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는데, 앞뒤 설명 없이 바뀐 화자가 달라진 환경에서 각각의 에피소드를 이어간다.
“영화로 치면 시퀀스가 혼란스럽다는 것처럼 들린다. 실제로 이 책 쓸 때 명확한 스토리가 없는, 영상만이 할 수 있는 장면의 섞임을 표현하고 싶었다.”
-각 에피소드의 시간이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로 흐른다고 생각하는 일반의 시각에서 이 에피소드에 적응이 쉽지 않다. 단문, 짧은 에피소드를 겹친 소설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다.
“시간을 평면으로 봐서 모든 것을 동시성에 놓고 썼다. 말하자면 원근이 없다. 오늘로부터 어린 시절은 멀고, 어제는 가깝다는 개념을 없앴다. 그렇게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전작 ‘올빼미 없음’에도 평론가 외르그가 어린 시절을 대면하는 ‘시간의 겹침’ 장면이 나온다. 원근을 없앤 시간 개념은 언제부터 구상한 건가?
“어떤 작가는 일생 동안 하나의 작품을 다른 방식으로 반복해서 쓴다고 한다. 저도 거기 해당되지 않을까.”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완연한 소설 서사 방식도 아니다. 전작 작가의 말에서도 ‘선명한 이야기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썼는데 이유는?
“전통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이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추적할 수 있는 인물, 이야기에 흥미가 덜한 편이다.”
-선명한 서사가 아니라도 이야기를 전개할 때 사건의 선택과 집중은 필요하다. ‘이 장면까지 보여줘야지’할 때 기준은?
“직관이다. 즉흥적으로 선택한다. 작가가 어떻게 디테일하게 작업하는가, 그 얘긴 안하고 싶다. 방법이 없으니까(웃음). 꿈에서 문장을 만나고 그 문장에서 단편을 완성하기도 한다. 가장 좋아하는 방식인데 아마추어 같지 않나.”
-불친절한 소설을 쓰고 있고, 스스로 ‘글을 쓴다는 건 더욱더 고독해지기 위한 행위’라고 말했다. 말하면서 고독해지고(글쓰기), 읽히지 않고 싶지만 계속 책을 내는 모순을 반복하는 이유가 뭔가.
“그 모순이 작가됨이라고 생각한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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