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땅 흔들림 정도를 알려줘야
국민 행동요령 교육 기초로 삼아야
‘지진 괴담’에 흔들릴 이유도 없어
경주 지진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해 9월23일자에 ‘한국형 진도가 급하다’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기상청이나 언론이 알리는 ‘지진의 규모(Magnitude)’가 삶의 근거지인 지각 표면의 진동(지진동ㆍ地震動)의 크기를 알려주지 못해 국민 감각에 와 닿지 않는 만큼, 체감 가능한 진도 등급을 하루빨리 만들어 쓰자는 내용이었다.
1년이 훨씬 더 지나 그 속편을 쓰는 것은 최근의 포항 지진에서도 경주 지진 당시 느꼈던 답답함을 그대로 맛봐야 했기 때문이다. 기상청 발표나 대부분의 관련 보도는 포항 지진이 도대체 어느 정도나 포항 땅을 흔들었는지를 알려주지 못했다. 필로티형 빌라의 콘크리트 기둥이 ‘철근 내장’을 훤히 드러낸 채 금세라도 무너질 듯한 사진 등으로 겨우 포항 지진이 지난해 경주 지진보다 더 크게 삶의 기반을 흔들었구나 하고 짐작했을 뿐이다.
규모 5.4의 지진이 규모 5.8의 지진보다도 더 위협적이었다는 사실은 지진과 지진동이 다르고, 지진 대응행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규모가 아니라 진도임을 새삼 일깨웠다. ‘지진 규모보다 실제 체감하는 진도가 중요하다’는 한국일보 보도(22일자 1면)에서도 힘을 얻었다.
‘지진’의 일반적 어감은 ‘땅 흔들림’에 가깝지만, 실제로는 지각 파괴나 단층활동 자체를 가리키고, 그 결과인 땅 흔들림은 ‘지진동’이란 다른 말로 나타낸다. 그래서 지진의 규모(크기)는 진원에서의 지진 에너지의 크기를 가리킬 뿐, 지진동의 크기를 나타낼 수 없다. 지진이 쏟아낸 에너지는 사방에 파동으로 퍼지며, 진원과의 거리나 매질(媒質) 특성에 따라 전혀 다른 크기로 지각표면에 전달된다. 거리가 멀수록, 토양이 암반에 가까울수록 땅 흔들림이 약하다. 따라서 지진의 규모는 하나지만, 지진동의 크기를 체감 가능한 지표로 나타낸 진도는 지역마다 다르다.
그러니 지진이 났을 때 긴급재난문자에 지진 규모만이 아니라 진도가 담긴다면, 지역별 대응행동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가령 일본기상청 진도계급(JMA)을 기준으로 ‘진도 3’이면 별 걱정 없이 진동을 느끼면 그만이고, ‘진도 4’면 책상이나 식탁 아래로 잠시 피했다가 진동이 멈추면 밖으로 뛰어나가고, ‘진도 5약’을 넘으면 무조건 밖으로 뛰어나가는 습관을 체득해야 한다. 주관적 체감을 평균화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지진체험관 등에서의 실감(實感)학습을 거치도록 할 필요도 있다. 그런 체험과 훈련으로 지진의 인적 피해만이라도 최소화해야 한다. 이런 모든 게 진도계급이 있어야 가능하다.
또한 진도 감각이 갖춰지면 좀처럼 괴담에 흔들리지 않아도 된다. 진도는 구조물의 요동이나 파손 정도 등 체감자료를 근거로 매겨지지만, 객관적 계측자료와도 일정한 관계를 가진다. 지진동의 크기를 일러주는 최대지반가속도(PGA)에서 진도의 기본수치가 얻어지고, 내진설계 기준도 PGA로 정해진다는 점에서, 진도는 구조물의 내진 안전성을 가늠할 근거가 된다. “규모 6.5의 지진에도 견딘다”는 말과 달리, “JMA 진도 6강의 진동에 견딘다”거나 “0.2g의 PGA에 견딘다”는 말은 실감이 난다.
포항 지진 후 어김없이 원전의 내진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포항 일부 지역의 PGA가 0.58g에까지 이르렀으니, 0.2g에 견디도록 설계된 인근 원전이 위험하다는 주장은 언뜻 그럴 듯하지만, 주로 화강암 암반에 들어선 원전의 PGA는 진원 가까운 곳에서도 0.1g를 겨우 넘는 데 그쳐 진도 감각에 들어맞았다.
기상청은 2001년 JMA를 버리는 대신 미국의 수정 메르칼리 진도계급(MMI)를 쓰기로 했다.그런데 MMI는 국내 지질ㆍ건축물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데다 12등급으로 복잡하다. 기상청조차 거의 쓰지 않으니, 사실상 폐기된 것과 다름없다. 당장 ‘한국형 진도계급’의 개발이 어렵다면 우선은 JMA를 다시 갖다 쓰기라도 하자. 수시로 지진을 겪어온 일본의 지진연구와 대응자세만큼은 아직도 배우고 베낄 게 많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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