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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테이에서 온 편지] 이웃들의 이야기가 소복소복 책방에 쌓여

입력
2017.11.24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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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새로 문을 연 경남 통영 봉수골의 봄날의책방. 책방 앞에서 책방 식구와 책방 이웃, 이웃 전혁림미술관과 뒷집 할머니, 골목 앞 카페 사장님 등이 모여 함께 사진을 찍었다.
지난 주말 새로 문을 연 경남 통영 봉수골의 봄날의책방. 책방 앞에서 책방 식구와 책방 이웃, 이웃 전혁림미술관과 뒷집 할머니, 골목 앞 카페 사장님 등이 모여 함께 사진을 찍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이 마무리 되었다. 늦가을의 찬바람이 불던 지난 토요일, 한 달 만에 새 단장을 마치고 다시 문을 연 경남 통영의 시골 책방은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북적였다. 멀리 서울서 새벽부터 고속버스를 타고 달려온 사람들, 인천에서 6시간 동안 운전을 하고 달려온 부부, 부산ㆍ창원ㆍ울산 등에서 찾아온 손님들, 새 단장을 축하하기 위해 달려온 ‘모두의 학교’ 팀까지, 책방의 작은 공간이 가득 찼다. 다섯 명의 연사와 통영시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책방 이웃 전혁림미술관에서 100여명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함께 나눈 가을밤의 추억은 사람들에게 따스한 온기를 불어 넣었다.

우리가 통영에서 출판을 시작한 건 올해로 6년째다. 사무실에서 책과 씨름하다 보니 우리를 찾는 독자들과 제대로 이야기 할 기회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폐가를 사들여 북스테이를 겸한 작은 책방으로 새 단장해 문을 연 것이 3년 전이었다. 4평 남짓 안방을 책방으로 만들고, 다른 네 방은 통영의 문화예술을 알리는 북스테이 공간으로 만들었다.

하루에 10권도 팔지 못한 날이 허다했지만 우리는 지치지 않고 책방 문을 열었다. 그러자 책방 주변에 크고 작은 카페와 빵집 등이 문을 열면서 쇠락한 주택가는 온기 가득한 골목으로 변화해갔다. 책방지기에게 늘 따스한 음료를 전해주시는 카페 사장님, 새 책이 나오면 제일 먼저 찾아와 책을 구입하는 난집 사장님, 반찬 값을 아껴가며 책을 사는 뒷집 할머니까지 우리 책방에는 이웃들의 이야기가 소복소복 쌓여갔다. 고마운 이웃들이 좀 더 편안히 책을 볼 수 있도록 2층만 북스테이로 남기고, 서점 공간을 확장하기로 결심하면서 우리에게 책방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 두 권의 책이 있다.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ㆍ엄일녀 옮김

루페 발행ㆍ320쪽ㆍ1만4,800원

잃어버린 두근거림을 찾아 세계예술마을로 떠나다

천우연 지음

남해의봄날 발행ㆍ304쪽ㆍ1만6,000원

첫 번째는 바로 ‘섬에 있는 서점’이다. 이 책은 섬에 있는 오직 하나뿐인 서점의 ‘츤데레’(무뚝뚝하면서도 속정이 깊은) 주인장 에이제이 피크리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육지로 나가려면 몇 시간 배를 타야 하는 섬마을에서 책방을 중심으로 주인장 피크리와 마을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 책은 유머와 눈물, 가슴 저릿한 감동을 담은 장편소설이다.

무엇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서점은 우리 책방과 닮은 구석이 많다. 우리도 아일랜드 서점처럼 통영의 미륵도라는 섬에 있는 유일한 책방이다. 까칠한 피크리가 어느 날 자신의 삶에 쑥 들어온 마야를 입양하고 새로운 사랑에 빠져 사람들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가는 모습은 까칠한 도시녀에서 책방을 통해 소통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이 책을 직원들과 함께 읽으면서 저마다 꿈꾸는 책방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안에는 피크리가 남긴 서점처럼 우리가 만들어 온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 갈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북스테이 서점으로 ‘시즌2’를 준비하면서 또 하나의 영감을 준 책은 최근 우리가 펴낸 ‘잃어버린 두근거림을 찾아 세계 예술마을로 떠나다’라는 책이다. 이 책은 문화예술 기획자로 10년을 살아온 한 청춘이 행정이나 자본에 의한 예술마을 만들기가 아니라 진짜 예술마을이 어떤 곳인지를 세계 곳곳에서 1년 반 동안 직접 살아보며 체험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2년 전 통영을 찾아와 자신의 여행에 대한 포부를 이야기했던 청년의 열정에 반해 출간을 결정하고, 이후 글로 기록된 그의 생생한 체험은 미술관 옆 책방을 운영하면서 작은 예술마을을 꿈꾸는 우리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우리가 통영 이 작은 마을에서 책방을 열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이유, 그 답이 바로 이 두 책에 있었다.

“몰랐는데, 내가 진짜 서점을 좋아하더라.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직업상 사람들을 많이 만나잖아. 근데 세상에 책 쪽 사람들만 한 사람들이 없더라고. 신사 숙녀들의 업종이지. 서점은 올바른 종류의 사람들을 끌어당겨. 그리고 난, 책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책 얘기를 하는 게 좋아. 이 동네에 서점 하나도 없으면 이 섬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야. 책방이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도 없잖아.”

‘섬 위에 있는 서점’의 한 대목은 마치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리고 세계 곳곳의 예술마을에서 얻은 경험을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 단 하루의 이벤트가 아니라 살아가는 매일, 우리들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마을 축제의 본질”이라 담담히 고백하는 청년 작가의 말에서 우리를 이끄는 것은 결국 이야기의 힘이라는 생각을 한다. 단편 혹은 때론 장편집 같은 우리들의 인생이 하나 둘 이어지는 책방에서 우리는 날마다 마을 사람들과 새로운 이야기를 쌓아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고단하고 힘든 하루하루를 축제 같은 일상으로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곳에서 매일매일 작은 책방의 문을 열고 기쁜 마음으로 이웃들의 방문을 기다리는 이유다.

통영 봄날의책방 정은영 대표ㆍ북스테이네트워크(www.bookstaynetwo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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