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법원이 1993년 11월 24일 살인죄 피고로 법정에 선 로버트 톰슨(82년 8월 생)과 존 베네블스(82년 8월 생)에 대해 가석방 최소 형기 8년의 무기(보호감호) 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그들의 이름과 사진 등 신원을 언론이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그 해 2월 12일 엄마를 따라 리버풀의 한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온 2살 소년 제임스 벌저(James Bulger)가 실종됐다. CCTV를 통해 두 10대 소년이 그를 데리고 간 것을 알게 된 경찰은, 유괴범이 아이라 막연한 기대를 품었지만, 벌저는 이틀 뒤 납치현장에서 약 4km가량 떨어진 철로에서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20일 두 소년의 집에서 범행에 사용한 쇠막대와 피 묻은 옷 등을 수거했다. 수사 결과 ‘배후’는 없었다.
11월 시작된 재판에서 드러난 사실은 더 충격적이었다. 범인들이 벌저 이전에도 살해 목적으로 한 소년을 유괴하려다 실패한 일, 살해 현장까지 끌고 가는 동안 38명의 목격자가 있었고 그 중 일부가 아이가 우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저지했지만 동생이라며 능청스럽게 거짓말한 일, 그들은 인적 없는 철길에서 아이에게 페인트를 끼얹고 쇠막대와 돌로 살해한 뒤 시신을 철로 위에 걸쳐 두는 야만적인 짓까지 감행했다. 법원은 소년법정이 아닌 일반법정에서 그들을 재판했다.
여론은 조기 가석방 가능성에 분노했고, 대법원장 격인 수석재판관(Lord Chief Justice)은 가석방 최소 형기를 10년으로 늘렸다. 여론에 밀려 보수당 존 메이저 총리와 내무장관까지 가석방 최저한도를 15년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피고측 변호인단은 선고의 불공정성과 여론에 휘둘린 선고의 부당함을 들어 국내 및 유럽인권법원에 항소했고, 형량은 최소 형기 8년으로 확정됐다.
둘은 보호감호 중 중등수료 자격을 우수한 성적으로 획득했고, 2001년 6월 가석방 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이듬해 2월 석방됐다. 그들에게는 증인보호 절차에 준하는 새로운 신분과 거처가 주어졌다.
그들의 신원과 소재를 추적해 폭로하는 이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처벌을 받았고, 부당하게 오인 받은 한 청년이 자살하는 일까지 빚어졌다. 사건은 소년범죄의 야만성에 대한 환기와 별개로, 법원의 냉정과 여론ㆍ권력으로부터의 중립이라는 가치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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