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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서 희망을 켜다... 값싼 식용유로 밝히는 LED램프 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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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서 희망을 켜다... 값싼 식용유로 밝히는 LED램프 보급

입력
2017.11.27 04:4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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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서울 성수동 루미르 회의실에서 박제환(오른쪽에서 두번째) 대표와 직원들이 제품 회의를 하고 있다. 왼쪽 두 개는 촛불로 LED 램프를 밝히는 루미르C, 오른쪽에서 두번째는 식용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보급형 루미르K, 맨 오른쪽은 국내 정식판매를 앞둔 루미르S 시제품이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지난 23일 서울 성수동 루미르 회의실에서 박제환(오른쪽에서 두번째) 대표와 직원들이 제품 회의를 하고 있다. 왼쪽 두 개는 촛불로 LED 램프를 밝히는 루미르C, 오른쪽에서 두번째는 식용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보급형 루미르K, 맨 오른쪽은 국내 정식판매를 앞둔 루미르S 시제품이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41판_사회적기업/2017-11-26(한국일보)
41판_사회적기업/2017-11-26(한국일보)

지난 23일 서울 성수동 성수IT종합센터 5층의 사회적기업 루미르 사무실. 등대처럼 매끈한 형태의 ‘루미르C’ 아랫부분 조그만 양초에 불을 붙이고 2분쯤 지나자 맨 위 발광다이오드(LED) 램프에 불이 켜졌다. 루미르C에 전기 콘센트와 연결하는 전선 따위는 없었다. 램프를 밝힌 전기는 오로지 촛불의 열이 만들어냈다.

성질이 다른 도체들의 온도 차이가 전기를 발생시키는 ‘제베크(Seebeck) 효과’는 1821년 독일 물리학자 제베크가 처음 밝혀냈다. 지금은 공장 폐열 재활용 등에 사용하는 전혀 새롭지 않은 기술이지만 루미르C에는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촛불에서 안정적인 LED 빛을 얻어낼 수 있는 특허기술이 녹아 있다. 중앙대 전기전자공학부를 휴학 중인 박제환(29) 루미르 대표는 “형광등 안정기 개념을 응용해 불꽃 크기가 달라져도 LED 램프는 항상 같은 빛을 내는 기술을 개발했다”며 “얼마 전 미국 특허도 취득했는데, 2년이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전기 없이 사는 저개발국 인구는 13억 명에 이른다. 촛불 하나로 LED 램프를 밝히는 루미르C는 이들에게 빛을 전할 수 있다. 유려한 디자인에 은은한 촛불 향을 느낄 수 있어 전기가 풍족한 나라에서도 인테리어 소품이나 캠핑용으로 손색이 없다.

루미르는 최근 촛불이 아닌 식용유로 LED 램프를 켤 수 있는 신제품 ‘루미르K’를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 남쪽 칼리만탄 지역에 출시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등유로 LED 램프를 켜는 제품을 테스트했던 현지 주민들이 비싼 등유 대신 폐식용유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개발한 제품이다.

식용유는 인도네시아의 7대 생활필수품의 하나로 가격이 저렴한 데다 석유제품과 달리 전국적으로 품질이 동일하다. 일반 등유의 5분의 1 양으로 2.5배 밝은 빛을 내 1ℓ만 있으면 200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식용유는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고 불이 잘 옮겨붙지 않아 안전성도 상대적으로 높다. 조리 뒤 땅에 버리던 폐식용유를 태울 수 있어 연료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가격은 루미르C보다 훨씬 저렴한 20달러 수준이다. 칼리만탄에서 6개월간 150가구를 대상으로 테스트한 결과 만족도는 97%에 달했다. 박 대표는 “태양광 램프가 2007년부터 보급됐지만 우기 때 사용이 불가능하고 배터리 교체가 어려워 1, 2년이면 수명이 다했다”며 “현지에서 흔한 식용유를 사용해 더 많은 빛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사회적기업이 태동한 것은 외환위기 사태 이듬해인 1998년이다.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의 자활이란 개념에서 출발해 청소나 자원 재활용 같은 단순 일자리 제공 역할을 했고 일반 취업이 불가능한 노년이나 장애인 등이 대상인 곳이 많았다. 이런 이유로 사회적기업은 사회복지용 일자리란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 등장한 기술기반 기업들은 이런 선입견을 허물고 있다.

싱가포르 보타닉 가든(왼쪽 사진)과 미국 LA 허모사 비치에 설치된 클린큐브. 이큐브랩 제공
싱가포르 보타닉 가든(왼쪽 사진)과 미국 LA 허모사 비치에 설치된 클린큐브. 이큐브랩 제공

태양열로 발전해 스스로 쓰레기를 압축하는 ‘클린큐브’를 개발한 이큐브랩은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대표적인 사회적기업이다. 이큐브랩은 압축방식 등 핵심기술로 국내 특허 4건에 기계 간 통신방식 특허 2건, 신제품 관련 특허 2건을 취득했다.

저개발국 대나무 생산지역 주민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나무 칫솔을 내놓은 닥터노아도 세계 최초로 칫솔모를 대나무에 자동으로 심을 수 있는 식모기를 개발했다. 닥터노아는 내년 말 가동 목표로 베트남의 대나무 주산지 부근에 칫솔 공장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칫솔 교체시기인 두 달에 한 번씩 새 칫솔을 집으로 보내주는 ‘칫솔 정기구독’이란 기상천외한 마케팅도 내년쯤 선보일 예정이다. 치과의사인 박근우 닥터노아 대표는 “빈곤이란 사회적 문제를 동정이 아닌 기업의 방식으로 시장에서 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저개발국 빈곤 문제 해결에 뛰어든 사회적기업 닥터노아가 만든 대나무 칫솔과 대나무 치약. 닥터노아 제공
저개발국 빈곤 문제 해결에 뛰어든 사회적기업 닥터노아가 만든 대나무 칫솔과 대나무 치약. 닥터노아 제공

고령 노동자와 첨단 정보기술(IT)을 결합해 의외의 시너지 효과를 내는 사회적 기업도 있다. 서울 은평 응암동과 경기 성남시, 강원 춘천시에서 사업장을 운영하는 시니어 고용 전문 IT 사회적기업 에버영코리아다. 2013년부터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콘텐츠 모니터링, 지도와 참고문헌 등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업무 등을 위탁 처리하는 이 회사에선 평균 연령 62세의 직원들 430여 명이 근무 중이다.

지난 23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에버영코리아에 출근한 시니어 직원들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실시간으로 네이버에 올라오는 유해 불법 정보를 걸러내고 있다. 맹하경 기자
지난 23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에버영코리아에 출근한 시니어 직원들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실시간으로 네이버에 올라오는 유해 불법 정보를 걸러내고 있다. 맹하경 기자

네이버에는 카페나 블로그 게시글부터 각종 동영상까지 하루에만 수십만 건의 콘텐츠가 올라온다. 출근대별 20~30명의 시니어가 모니터링 업무를 거뜬히 수행할 수 있는 비결은 인공지능(AI)이다.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던 시절은 이미 과거가 됐다. 기계학습으로 음란물 등을 판별하는 법을 배운 AI가 순식간에 각 이미지를 확대해서 훑은 뒤 문제가 있어 보이는 콘텐츠만 걸러 시니어들에게 전달한다. 김성규 에버영코리아 경영지원실장은 “이곳 직원들은 AI라는 직장 동료와 함께 일한다”며 “최신 IT 기술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이면서 취약계층 일자리 제공이란 사회적 목적까지 달성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남다른 기술력은 수익 창출에도 유리하다. 많은 사회적기업이 기술 개발에 열중하는 것도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적기업의 체질개선 속도만큼 사회적 인식이 따라와 주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도 나온다. 한 사회적기업 대표는 “사회적기업도 이익을 내야 운영이 가능한데, 일부 사회 단체 등에서 사회적기업이 만든 제품을 무료로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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