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누가 시켰지? 갑자기 웬 꽃다발이야?”
28일 오후 서울 영둥포구 타임스퀘어 아모리스홀에서 열린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6’ 제작발표회. 형식적인 분위기를 뚫고 난데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배우 이승준이 ‘막돼먹은 영애씨’의 10주년을 기념해 주인공인 배우 김현숙에게 장미꽃을 안겼다. 이승준이 극중 연인인 김현숙에게 무릎 꿇고 꽃다발을 내밀자 10주년을 축하하는 박수가 이어졌다. 2007년 시즌 1부터 드라마를 이끌어온 주인공 김현숙은 감회가 남다르다. “우리나라에 여성 출연자를 중심축으로 하는 드라마가 별로 없는 게 사실이에요. 제 이름을 걸고 계속 드라마를 이어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0주년을 맞은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가 다음달 4일 시즌 16을 시작한다. 에피소드 수로만 따지면 289편(시즌 15 기준)까지 달려왔다. 국내 방송 중인 드라마 중 최장수다. 30대 노처녀로 험난한 직장생활을 이어갔던 영애(김현숙)는 시즌 16에서 40대를 맞이하고, 그토록 바라던 결혼에도 골인한다.
이번 시즌에서는 유부녀가 된 영애의 새로운 인간관계와 변화된 환경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노처녀 직장인의 사회생활을 그렸던 전 시즌에 비해 설정이 크게 변화해 이전과는 달리 재미가 없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시선도 쏟아지고 있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배우들은 “여전히 공감 가는 B급 코미디가 이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막돼먹은 영애씨’는 시즌 15에서 공감대가 떨어지는 설정으로 질타를 받기도 했다. 김현숙은 “뚱뚱한 영애가 꽃미남을 두고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게 말이 되느냐, 영애도 이제 결혼할 때가 되지 않았냐고 지적하는 골수 팬들의 의견이 많았다”며 “이번 시즌은 애초 드라마의 취지를 뒤흔드는 설정이라 두려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오랫동안 사랑해준 시청자의 의견을 수렴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10년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인생에 변화를 겪은 고정 시청자가 매년 반복되는 영애의 삶에 피로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특히 김현숙이 2014년 결혼해 세 살배기 아들의 엄마로 지내고 있는 만큼 “결혼 과정에서 겪는 고민과 유부녀의 내적 갈등”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김현숙은 “기존 영애에게 느꼈던 공감 요소는 그대로 적용하면서 새로운 표현들을 가미할 것”이라며 “결혼과 육아 경험이 있어 영애의 여러 심리 상태를 세밀하게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막돼먹은 영애씨’는 2007년 당시엔 시도되지 않았던 다큐멘터리형 드라마로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다. 흔히 드라마에서 활용하는 “풀, 바스트, 웨스트 샷과 같은 촬영 기법 없이” 날 것 그대로 B급 코미디를 펼쳐 생동감을 살렸다. 김현숙이 작품에 출연하게 된 건 “당신을 모델로 만든 대본이 있으니 찾아오라”는 작가의 연락을 받고 나서다. 호기심에 찾아간 자리에서 “왜 대한민국 여배우들은 속눈썹을 붙이고 자느냐”고 소리치는 작가의 호통에 신선한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처음엔 어떻게 연기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연출자가 ‘대본이 있는 인간극장’이라고 정리해주더라고요. 어떤 때는 2~3쪽을 한 번에 찍기도 하고, 5분 동안 한 장면이 이어진 적도 있었어요. 이런 거친 화면과 촬영 기법에 시청자가 신선함을 느낀 것 같아요. 형식에 익숙해진 후에는 여과 없는 B급 코미디에 통쾌함을 느낀 것 같고요.”
영애의 아버지로 출연하는 배우 송민혁은 장수 비결로 “케이블 채널의 특성”을 들었다. 당시 지상파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파격적인 개그 설정이 눈길을 끌었고 이 같은 인기가 충성도 높은 시청으로 이어졌다는 것. 송민혁은 “과거엔 드라마 속 B급 코미디에 대해 부정적이 시선이 많았는데, 지금은 보편화됐고 재치 있는 아이디어로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진 듯하다”고 덧붙였다.
김현숙은 가끔 지난 시즌을 돌려본다. 기존의 감성을 잃거나, 실제 인생을 살면서 달라진 생각 때문에 변화한 부분이 없는지, 꼼꼼히 점검하고 출발점을 되돌아본다. 이번 작품은 “초심으로 돌아간 시즌”이 될 듯하다. 그는 “대본을 7회 정도 미리 읽어봤는데, 골수 팬이 기대하던 쫀쫀한 코미디와 페이소스가 살아 있더라”며 “자신 있는 시즌이니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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