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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문학이 권력을 잃어야

입력
2017.11.29 14:1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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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임 위원장이 되었다. 그 동안 언론이 크게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문화예술계 한 편에서는 2,000억여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문화예술계 최대의 공공기관장 자리를 놓고 이의가 없지 않았다. 구설의 핵심은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문인인데, 예술위원장까지 문인이 맡는다면 지나친 문단 편중이 된다는 거였다. 이런 잡음을 의식한 문체부의 한 관계자는 여러 가지 해명을 내놓으면서 “문학은 모든 예술 분야의 맏형에 해당하는 장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이런 수사는 낯설지 않다. 문학 종사자들은 입만 떼면 “언어예술로서 문학은 한국 정체성의 근간”(오창은)이라느니, “문화예술 생태계의 근간인 ‘기초예술’로서 문학”(고명철)이니 하는 말을 쏟아낸다. 이런 ‘맏형 의식’은 시대착오적이고 허황한 데다가 볼썽사납다.

제목에 혹해서 강미정의 ‘조선왕조실록의 간통사건에 대한 문학치료적 접근’(문학과치료,2004)이라는 책을 읽었다. 지은이의 박사논문이기도 한 이 책의 서두에는 ‘조선왕조실록’에 무수하게 언급ㆍ인용된 ‘시경’이 사례별로 분류되어 있다. 조선의 왕들과 신하들은 국정을 이야기할 때 밥 먹듯 ‘시경’에 나오는 싯귀나 작품 제목을 들먹였다(제목만 말해도 무슨 내용인지 알았다). 공자의 권위로 자신의 발언을 장식하고, 논지를 보강하거나, 내용을 함축적으로 요약하기 위해서였다. 지은이가 집중적으로 거론하고 있는 여섯 건의 간통 사건 경우에도, 군신은 유ㆍ무죄의 근거를 ‘시경’의 작품으로 증명하고자 애썼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 시 혹은 문학은 그 시대 문화예술의 맏형, 그 이상이었다. 교양을 한 사회의 소통 기반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시는 가히 조선시대의 유일무이한 교양이었다. 문학에 대한 교양이 없이는 관직에 나가기도, 직무를 수행하기도, 성공을 하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문학 교양을 모르고서는 사교생활조차 불가능했다. 하지만 현대는 그런 시대도 아니요, 문화예술 분야 어디에도 장유유서는 없다.

한국의 크고 작은 일간지는 예외 없이 이 ‘아침에 읽는 시’와 같은 코너를 두고 있고, 칼럼의 필진 가운데는 나 같은 문인이 수두룩하다. 한국 사회는 대형 사건이 벌어졌을 때 혹은 사회적 합의나 진로를 모색하고자 할 때 항상 문학인들에게 ‘한 말씀’을 구하고자 한다. 전문가의 역할과 영역이 분화된 근대 사회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과문해서일 수도 있지만, 선진국 신문에서는 문학판 이외의 지면에서 직업 문인의 칼럼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이런 것을 보면, 한국은 여전히 문학이 교양의 전부인 조선시대다.

김명인ㆍ권성우ㆍ반경환ㆍ신철하ㆍ오길영ㆍ조영일ㆍ최강민 같은 일군의 문학평론가들을 일컬어 ‘문학권력 비판론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문학잡지를 발행하고 있는 대형 출판사와 거기에 빌붙은 평론가 무리’를 문학권력이라고 규정하고 그것과 싸운다. 하지만 ‘문학권력’은 그들이 말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문학권력이란 ‘문학’ 그 자체이다. 거대 야당이 고작 강담사에게 국회의원 공천심사위원을 맡기고(이문열, 2004), 신임 대통령이 중요한 해외 순방에 상스러운 입담꾼을 동반하고(황석영, 2009), 두 명의 유력 대통령 후보가 병든 망상가(김지하, 2012)와 채신머리 없는 기담가(이외수, 2012)에게 지지를 구걸하는 일은, 유독 한국에서만 벌어진다. 열거한 문학권력 비판론자들이 문학 주변을 떠나지 않는 것도, 문학이 수석이나 분재 취미가 절대 다다를 수 없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서구는 물론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문학 따위에는 상징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그 어떤 권력도 나누어 주지 않는다. 거기에 비해 한국의 문학과 문학인들은 조선시대의 사대부 관념과 사라진 시대의 허위의식을 그대로 갖고 있다(물론 겉으로는 부인한다). 한국 문학의 파행적인 이행은 연구거리다. 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나라 문학이 넘보지 못하는 바로 그것을 가진 탓에 한국 문학의 수준이 새삼 문제되는 것이다. 문학이 권력을 상실해야, 문학이 될 것이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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