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은 어려운 장르 아녜요”
음악·예능 프로그램 출연해
대중의 편견 깨려 노력
TV 출연 통한 친근감으로
공연장 찾는 관객들도 늘어
#1. 오페라 하우스에 가야만 들을 수 있던 ‘아시아의 종달새’ 목소리가 매주 TV에서 들려온다. 유럽을 중심으로 활약하는 소프라노 임선혜(41)는 지난달부터 Mnet 프로그램 ‘더 마스터-음악의 공존’(‘더 마스터’)에 출연 중이다. 클래식, 국악, 재즈, 록 등 각 장르를 대표하는 음악인들이 무대를 꾸미는 프로그램에 클래식 대표로 나섰다. 임선혜는 첫 방송에서 헨델이 작곡한 오페라 ‘리날도’의 아리아 ‘울게 하소서’를 불러 관객들의 공감을 가장 많이 얻은 ‘그랜드 마스터’가 됐다. 임선혜는 이후 패티김의 ‘이별’,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의 ‘파파게노 파파게나’ 등을 선곡해 불러 성악가의 목소리가 다양한 장르와 공존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2. 지난 5월 한국인 최초로 미국 반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소식을 전하며 클래식계 스타로 떠오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8)은 자신의 일상을 방송을 통해 공개한다. 12월 2일부터 방송되는 JTBC 예능프로그램 ‘이방인’에서다. ‘이방인’은 저마다의 이유로 낯선 나라에서 살고 있는 유명인들의 일상과 외국에서 겪는 어려움 등을 담는 관찰 예능프로그램이다. 그 동안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피아니스트의 일상이 공개된다는 점에서 방송 전부터 화제다. 선우예권은 독일에서 보내는 일상과 공연 전날 호텔에서 악보를 보는 모습, 연주 직전 분장실의 모습 등 자신의 3박4일을 카메라 앞에서 보여줬다.
클래식 음악가들은 대중들과 거리가 멀다는 편견이 있다. 클래식 자체가 어렵다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인상이다. TV 출연도 제한돼 있다는 선입견이 강하다. 연주회를 녹화한 방송이나 엄숙한 교양프로그램 정도라야 TV를 통해 대중과 만날 수 있다는 인식이 넓게 자리잡고 있다.
요즘은 달라졌다. 클래식 음악가들의 예능프로그램 외출이 잦아지고 있다. 대중과 더 많이 만나 클래식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생각에 예능프로그램 출연을 늘리고 있다.
클래식 음악가들이 예능프로그램 출연을 결정하기까지는 오랜 고민의 시간을 거친다. 임선혜는 “각 장르를 한 무대에 모이게 한다는 시도와 (지나친) 예능 요소를 배제한다는 제작진의 진지한 접근 때문에 ‘더 마스터’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출연이 나름 국제적으로 잘 쌓아온 경력에 위험 요소가 될까 망설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의 고민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건 사명감이었다. 클래식 음악을 더욱 알려보겠다는 의욕이 출연 결정으로 마음이 기울게 했다. 금요일 오후 8시20분이라는 방송 황금시간대에 클래식 음악을 선보일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다. 임선혜는 “대중에게 클래식을 잘 소개하려다 오히려 ‘역시 낯설고 어렵다’는 편견을 강화할까 봐 선곡을 하기까지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고민한다”고 털어놨다.
방송 출연으로 클래식 문턱을 낮추려는 음악가들의 도전은 효과가 크다. 음악가 자신은 물론 음악을 알리는데 큰 힘을 발휘한다. 리코디스트 염은초(25)는 지난해 11월 MBC 예능프로그램 ‘마이리틀텔레비전’에 출연해 리코더가 클래식 악기라는 사실을 널리 알렸다. 현악4중주단 ‘노부스콰르텟’의 멤버인 비올리스트 이승원(27)은 지난해 초 tvN 예능프로그램 ‘뇌섹시대-문제적 남자’에 출연해 노부스콰르텟의 이름을 사람들 뇌리에 더욱 각인시켰다. JTBC 음악 예능프로그램 ‘팬텀싱어’에 출연했던 성악가들의 공연 티켓은 예전보다 훨씬 더 잘 팔려나간다. ‘팬텀싱어’에 출연한 바리톤 김주택(31)은 최근 열린 콘서트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기자간담회에서 “성악가로서 방송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찾아가 성악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있었다”며 “관객들도 오페라란 장르가 어려운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클래식 공연장을 찾아와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가들이 예능프로그램에서 활동한다 해도 넘지 않으려는 나름의 선이 있다. ‘음악가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는 방송 출연 원칙을 지니고 있다. 연주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조건을 출연 전 내세우곤 한다. 방송 섭외 대상인 클래식 음악가 대부분이 1년에 300회 넘게 국내외에서 연주 활동을 한다. 프로그램을 위해 별도의 시간을 내기보다 본업과 방송의 적절한 균형을 찾는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민병훈 감독의 신작 ‘황제’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이라지만 영화 속 김선욱은 공연하거나 홀로 연습하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선우예권은 “연주자의 정체성을 온전히 지킬 수 있으면서, 연주자의 삶을 대중과 공유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이유로 ‘이방인’ 출연을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방송사도 클래식 스타를 꺼릴 이유가 없다. 특히 젊은 음악가들의 출연을 반긴다. 이승원이 출연했을 때 ‘문제적 남자’는 당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재출연 요청이나 새로운 섭외 요청이 끊임없다.
클래식 음악가의 방송가 외출에 못마땅해 하는 시선도 있다. 일부 팬들은 클래식 음악가를 예능프로그램에 출연시킨다며 소속사에 원성을 보내기도 한다. 선우예권과 노부스콰르텟 등이 속한 기획사 목프로덕션 관계자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데, 연주자와 음악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면 굉장한 행운”이라면서도 “음악가로서 삶과 대중과 소통의 비율을 건강하게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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