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엔 외국 남성들 웅성… 경찰에 신고
“쇼와 시대 골동품 같은 목선으로…” 경악
日정부, 北어선 EEZ 불법조업 대대적 단속
북한 목선과 시신들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일본 해안가 마을에선 ‘북한 공작원 출현’공포가 확산되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북한 배의 불법조업이 증가하고 있다며 대대적인 단속을 선언했고, 주민들은 문을 꼭 걸어 잠근 채 혹시라도 나타날 ‘북쪽의 이방인’을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지난달 23일 조악한 목선에 의존한 채 표류하던 북한인 8명이 출현했던 아키타(秋田)현 유리혼조(由利本莊)시는 1일부터 내내 눈보라가 몰아쳐 차량 통행이 쉽지 않았다. 도쿄(東京)로부터 신칸센(新幹線) 열차로 4시간, 이후 차량으로 2시간을 달리는 내내 폭설이 길을 막아섰다. 동해가 눈 앞에 펼쳐진 시골 어촌마을, 소박한 촌락은 최근 한 달 새 흉흉한 소문이 난무하고 불안에 들썩이는 곳으로 이미 일본내에서 유명해졌다.
해안에 나타난 심야의 방문자들
혼조니시메(本莊西目) 어업협동조합 사무실에 모인 지역 주민들은 목선을 타고 나타났던 북한인 8명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주민들에 따르면 23일 밤 11시 25분 한 가정집 초인종이 울렸다. 오후 4시에 하루 일과가 끝나는 어촌의 일상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집주인 여성이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고 문 앞에 다가섰을 때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말이 들려왔다고 했다. 누추한 복장의 남성 2명이 서있었고, 공포에 질린 여성은 문을 열지 않은 채 경찰(110번 전화)에 급히 신고했다.
어협 사무원인 사사키 히사코(佐佐木久子ㆍ43)는 “북한에서 왔고 오징어잡이를 하다 한 달간 바다에서 표류했다고 경찰이 밝혔지만 만일 정체불명의 이들을 밤에 마주쳤다면 얼마나 무서웠을지 아찔하다”고 몸서리쳤다. 2명이 초인종을 누르던 시간, 나머지 6명은 다른 집 앞 창고에 숨어 들어가 추위를 피했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북한 목선이 처음 닿은 곳은 마을로부터 15분 거리의 등대 옆이다. 현장엔 ‘혼조마리나’라는 선착장이 있다. 개인소유 보트를 정박한 회원 90여명이 속한 요트클럽이다. 관리인 가네다 다카후미(金田崇史ㆍ31)는 “8명이 발견된 하루 뒤 배가 파도에 밀려 사라지면서 북한 공작원이 밀항했을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라며 “놀란 회원들의 전화가 빗발치고 요트를 급히 회수하려는 이들이 몰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8명이 어민이라고 들었지만 다른 목적(공작원)으로 온 게 아닌지 솔직히 의심된다”며 “그럴 경우 총을 지녔을 테고, 일본과 사이가 좋지 않은 북한에서 이렇게 쉽게 사람을 보냈다면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니냐”라고 했다. 가네다는 “이들이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바다에서 해상보안청이 일찌감치 발견해주길 바란다”라며 “북한을 탈출한 난민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이를 등에 업은 한 여성은 “요즘 해안 쪽 숲이 우거진 곳엔 접근을 피하고 집마다 문단속 설비를 고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목선만 발견…“침투에 성공한 공작원 아닌가”
유리혼조시 주민들이 이처럼 겁에 질린 이유 중 하나는 1주일 전 비슷한 10m 길이의 목선 한 척이 옆 동네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배에는 시신은커녕 인기척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차로 20분 거리인 니카호시(市) 고노우라마치(金浦町) 어협의 분위기는 더욱 심각했다. 가토 다케시(加藤武ㆍ42) 관리인은 “당일 아침 6시 30분 어부들이 방파제에서 8~9명이 탈만한 목선을 발견해 경찰이 출동했다”라며 “여긴 하타하타(도루묵)나 카니(꽃게)철인데 오징어잡이 배였다. 수 년전 북한배가 떠밀려온 적이 있지만 요즘처럼 서쪽 해안에 무더기로 몰려드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말했다.
몇몇은 밀항선일지 모른다며 개운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 중 한 명이 민감해하는 이유를 들려줬다. “선원이 없는 배가 발견된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살아남은 공작원이 이미 배를 벗어나 상륙에 성공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예전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이 벌어지던 당시 공작원들이 어민을 가장해 해안으로 침투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라며 “8명이 산채로 나타난 데다 방파제 안쪽으로 사람이 없는 배가 떠밀려 온 게 아무래도 수상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실제 니가타(新潟)현 쪽에선 과거 북한에 의한 납치사건이 발생해 무장 난민 출현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연안 20㎞도 갈까 말까한 수준의 배이다”
고노우라어협 관계자는 목선의 상태에 대해 “일본에선 전혀 볼 수 없는 황당한 수준”이라며 “1940년대 쇼와(昭和)시대에나 볼 수 있는 골동품 같은 배”라고 혀를 찼다. “100마력이 될까 말까한 미약한 동력으로 일본까지 건너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며 “저 정도 배면 연안 20km도 나아가기 어렵다”고 놀라워했다. 일본에서 북한 어선이 발견되는 곳은 청진이나 원산 등 북한의 동해안 주요 포구로부터 600~800㎞나 떨어진 지역이다. 발견되는 시신 대부분이 백골상태인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고노우라어협 측 안내를 받아 방파제로 나가 50여m 앞에 있는 목선을 육안으로 확인했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다.
일본 해상보안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해안에서 발견된 북한발 표류 어선은 2013년 80건, 이후 연간 45~65건에 이른다. 시신이 발견된 경우도 2015년 27구, 2016년 11구 등이며 국제사회 대북제재가 강화된 최근엔 지난달 15일 이후 급증하는 추세다. 아오모리(靑森), 이시카와(石川), 야마가타(山形)현 등에서 최소한 18척이 확인됐고 32명이 구조됐으며 18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겨우내 강한 북서풍이 몰아쳐 이런 추세는 내년 초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아베 정부 “北불법조업으로 日어장 황폐화”
일본 정부는 북한 어선들로 일본의 어장이 황폐화되고 어민 이익이 침해된다고 경계하고 있다. 해상보안청은 지난 7월부터 EEZ내 첫 대규모 단속을 실시해 ‘물대포’를 통한 퇴거 조치를 벌이고 있다. 일본 당국은 지난달 중순까지 1,900건 이상을 강제 퇴거 조치했으며 현재 62척인 1,000톤급 이상 순시선을 2021년까지 69척으로 늘릴 계획이다. 주요 지자체들 역시 7월이후 북한어선의 불법조업 단속강화 요청서를 줄줄이 정부에 제출하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무엇보다 대량 난민이 발생, 국내로 유입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막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달 29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중무장한 공작원이 탈 수 있어 확실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고,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는 “무장 난민에 대한 자위대의 사살”을 운운해 일본내 양심 세력의 지탄을 받았다. 자민당의 아오야마 시게하루(青山繁晴) 의원은 “북한인 상륙자는 천연두 바이러스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리혼조(일본 아키타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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