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근접해도 감속하거나
우회 않고 경적만 울려
돈ㆍ시간 아낀다며 협수로 이용
“해상 난폭운전이 그만큼 일상화했다는 겁니다.”
4일 오후 인천 옹진군 영흥도 진두선착장에서 만난 경인호 선장 이승현(46)씨는 전날 새벽 낚싯배 선창1호(9.77톤)와 충돌한 급유선 명진15호(336톤) 선장 전모(37)씨가 해경 조사에서 했다는 진술 내용에 격분했다. “(낚싯배가 알아서) 급유선을 피할 줄 알았다”는 전씨 진술이 평소 낚싯배 선장들이 느껴 온 급유선 ‘난폭운전’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너희(낚싯배)들이 비켜가라”는 식의 안하무인 운행 방식에 수년 째 낚싯배들은 사고 위험을 안아왔다”고 분개했다.
영흥선주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사고지점인 영흥도와 선재도 사이 폭 200여m 수로를 지나는 급유선은 하루 평균 10여대. 주로 인천-평택-대산항을 오가는 급유선들은 4~5년 전만 해도 사고지점을 지나는 수로(소형선박이 자유롭게 오가는 바닷길) 대신 영흥도 서쪽 항로(대형선박이 지나도록 법적으로 정해진 바닷길)를 돌았다고 한다. “(수로가) 좁고, 위험하다는 걸 급유선 선장들도 알았던 것”이란 게 또 다른 선장 곽용주(58)씨 얘기다. 처음엔 급유선 한두 대가 수로를 통과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턴 모든 급유선이 대놓고 이곳을 통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곽씨는 “영흥도 서쪽을 돌면 1시간은 더 걸릴 길을 (수로로) 가로질러가면 시간과 돈이 절약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낚싯배 선장들이 느끼는 진짜 문제는 난폭운전. 급유선들은 선창1호 같은 10톤 미만 낚싯배가 근접해 마주 오더라도 속도를 줄이거나, 살짝 우회해 충돌 위험 줄이는 등 자구노력 없이 자기 속도를 그대로 내가며 경적만 울려대는 게 예사다. 물론 웬만하면 방향을 틀기 쉬운 작은 배가 움직이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라지만, 곽씨는 “생명이 걸린 문제인데 해도 너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차선이 정해져 있는 도로에서도 좁은 길에선 큰 차와 작은 차가 마주했을 때 서로 조심하지 않느냐”면서 “해상에서라면 더 위험천만한 일”라고 했다. 이번 사고가 대형 참사로 이어진 데는 급유선의 과격한 운행 습관이 결정타였단 얘기다.
이런 위험 속에 영흥도 소형 어선들은 급유선의 수로 운항 제한을 호소해왔지만 관계당국은 제재 근거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왔다. 이와 관련해 해경 관계자는 “향후 대형 선박의 난폭운전에 대한 민원이나 신고가 접수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해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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