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상 돼지고기 안 먹는데
알면서도 일부러 ‘얌체짓’
“답답한데 이런 걸 왜 하냐…”
히잡 강제로 벗기는 상황도
무슬림 방문객 100만 눈앞
“고유의 문화 섬세한 이해 필요”
최근 지하철4호선 이촌역 승강장에서 작은 소란이 벌어졌다. 머리에 ‘스카프’를 한 외국인 여성이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옆에 있던 할머니가 느닷없이 “답답한데 이런 걸 왜 하느냐”고 스카프를 손으로 벗겨낸 것. 여성은 너무 놀랐던지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할머니 손에서 스카프를 낚아채 대충 얼굴을 가리고는 역을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봉변을 당한 여성은 올해 초 말레이시아에서 온 ‘무슬림(이슬람교 신자)’ 엔다 아스미라(32)씨. 머리에 둘렀던 스카프는 무슬림 여성이 외출할 때 반드시 써야 하는 히잡((Hijab)이었다. 엔다씨는 “남이 히잡을 벗기는 상황은 상상해본 적이 없고, 히잡을 함부로 벗기는 것은 ‘강간’에 버금가는 행동”이라며 “그때만 떠올리면 지금도 수치심에 얼굴을 들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무더위가 한창인 8월엔 “더운데 이런 걸 왜 하느냐”며 벗기려고 손을 뻗는 노령층이 적지 않다는 게 국내 무슬림 여성들의 하소연이다.
이슬람권 국가에 한류 바람이 불면서 한국을 찾는 무슬림이 급증하고 있지만, 무슬림 고유 문화를 인정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한국인들 탓에 이곳 저곳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히잡을 강제로 벗기거나 이들이 먹지 않는 돼지고기를 강권하는 등 한국인 입장에서는 별 것 아닌 행동이지만 무슬림에게는 ‘이슬람 혐오’로까지 받아들일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관광객이나 유학생 등 무슬림들은 엔다씨가 겪은 ‘히잡 사건’을 새 발의 피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올해 9월 한국으로 관광 온 인도네시아인 무슬림 L(28)씨는 한식당에서 찌개를 시켰다가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율법상 입에 댈 수 없는 돼지고기가 들어가는지 직원에게 직접 물어 아니란 걸 확인한 뒤 주문을 했는데, 음식을 먹던 중 한국인 일행 얼굴이 사색이 된 것. L씨가 찌개를 먹기 시작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직원들이 “사실 조미료에 돼지고기 들어가는데”라고 희희낙락하며 속삭였다는 게 일행이 전해준 얘기다.
특히 1년 이상 장기 체류하는 유학생이나 주재원들은 이런 행동에 일상적으로 노출된다. 지난해까지 2년간 중견기업 주재원을 했다는 K(33)씨는 “(동료들이) 회식 장소를 일부러 삼겹살가게로 정하더라”고 했다. 매년 한 번 있는 금식기간인 라마단 때는 점심시간에 혼자 사무실에 남아 있게 되는데, 팀장이 일부러 팀원들과 함께 햄버거나 샌드위치를 사와 먹기도 했다고 한다. “라마단인 걸 뻔히 알면서 음식으로 약을 올린다”거나 “일부러 밥 굶고 힘든 척은 왜 하느냐고 비아냥댄다”는 것도 무슬림 직장인들이 자주 내놓는 하소연이다.
전문가들은 이슬람 문화에 대한 몰이해가 무례한 행동으로까지 이어지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슬람 전문가’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알게 모르게 스며 있는 이슬람 포비아(혐오)가 ‘무슬림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겠다’는 생각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고 당당하게 행동까지 하게 한다”고 풀이했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관광이나 외교에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이슬람에 대한 섬세한 이해와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12년 54만명이던 무슬림 한국 방문객수는 지난해 98만명을 기록했고, 올해 100만명 돌파가 전망된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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