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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갈등 리포트] 지하철 무임승차에 ‘지공거사’ 비난까지… 냉가슴 앓는 노인들

입력
2017.12.05 04:4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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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층 “편하게 활동” 발이 되고

실버 택배원 등 일자리도 얻어

젊은층은 “출퇴근 시간 불편”

지난해 요금 면제액 5543억원

고령층 급증하며 갈수록 눈덩이

지자체 “정부가 손실 보전해야”

기재부는 “한해 8000억원은 과해”

4일 오후 서울역에서 노인들이 지하철 1호선 열차에 타고 있다. 고영권 기자
4일 오후 서울역에서 노인들이 지하철 1호선 열차에 타고 있다. 고영권 기자

“노인들은 돈도 안 내는데, 젊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가야지.”

서울 은평구에 사는 김옥순(70)씨는 지하철을 탈 때 자리에 앉지 않는다. 본인은 시니어패스(어르신 교통카드)를 이용해 무료인데, 돈을 낸 사람들에게 얹혀 탄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김씨는 “운전면허도 없고 차도 없고 길눈도 어두운 내게 가장 만만한 이동수단은 지하철인데 무료 이용하는 노인들 때문에 적자가 늘어난다는 뉴스를 보고 미안해 나름대로 배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 노인(65세 이상)이 인구의 3.9%에 불과하던 시절, 경로우대 목적으로 도입된 지하철 무임승차는 노인인구가 급증(올해 14.0%)하면서 대표적인 ‘사회적 부담’이 됐다. 노인들은 ‘지공거사(地空居士ㆍ지하철 공짜로 타는 노인이라는 뜻의 은어)’라는 조롱에 냉가슴을 앓고, 일부 젊은층들은 “적어도 출근시간 만이라도 유료화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노인 무임승차에 따른 적자 보전책을 두고 지방자치단체와 정부의 공방도 점점 커지고 있다.

‘노인의 삶’이 된 지하철… 커지는 불편함 호소

수도권 지하철이 광역화되면서 서울~천안, 서울~춘천 등의 ‘지하철 여행’은 노인들에게 인기를 얻은 지 오래다. 일주일에 2,3번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을 오가는 손모(72ㆍ충남 천안)씨는 “집에 홀로 있는 것보다 지하철을 타고 또래도 만나고 풍경도 보는 걸 좋아한다”며 “노인들이 무료하고 우울하게 있는 것보다 기분 전환도 하고 활력 있게 시간을 보내는 편이 낫지 않느냐”고 말했다.

제도 이점을 활용한 ‘노인 일자리’도 생겼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택배회사에서 ‘실버 택배원’으로 일하는 신모(67)씨는 주유소 직원, 구청 주차 관리원 등을 전전하다 60대 중반을 넘어 서면서 이곳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지하철을 타고 하루 2~4건씩 택배 배달을 해 올리는 수입은 월 60만~80만원 선. 영등포, 사당, 송파 등 사무실 밀집지역과 경기ㆍ인천 지역까지 물건을 나른다. 신씨는 “택배 일은 적당한 운동도 되고 회사에 또래가 모여 있으니 사랑방 같아 출근하면 외롭지 않아 좋다”며 “지하철 이용이 공짜라 택배회사도 나이든 사람을 채용하는 걸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는데 무임승차 제도가 폐지되면 이 일을 계속하지 못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노인들의 무료이용이 늘면서 불편을 호소하는 젊은 사람들의 목소리도 거세다. 직장인 박선미(32)씨는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안양에서 서울까지 출퇴근을 하는데 어르신들이 워낙 많아 자리에 앉은 적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가끔 만삭 임신부가 있어도 자리 양보를 해주지 않는 어르신을 보면 야속하다”고 말했다. 신분당선을 주로 이용하는 직장인 윤모(37)씨는 “지하철을 매일 이용하는 입장에서 노인 무료요금이 부담돼 요금인상 얘기가 나오면 예민해질 수 밖에 없다”며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의 심리상 불필요한 이용도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적자로 몸살 앓는 도시철도공사

전국 도시철도공사에서 무임승차로 인한 요금 면제액은 2012년 4,239억원에서 지난해 5,543억원으로 급증했다. 지난해는 전체 지하철 이용객 중 16.8%(4억2,400만명)가 무임승객인데, 광주(31.6%)나 부산(26.4%)처럼 4분의 1 넘게 ‘공짜 승객’인 지역도 있었다. 전국 도시철도공사의 영업손실액(8,395억원ㆍ코레일 제외)의 66%가 무임손실액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손실은 앞으로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고령화 추세를 감안할 때 2020년 무임손실액은 7,281억원으로 추산된다.

지자체들은 노인 무임승차 제도가 ‘노인복지법 제26조’에 근거를 둔 정부 정책인 만큼, 제도 유지를 위해선 정부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코레일과 형평성에 어긋날 뿐 아니라 무임수송으로 인한 부담이 커져 노후화된 시설 안전 투자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코레일의 국철도 노인 무임승차가 가능하지만, 손실액의 절반 이상을 정부에서 보전해준다.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노인 무임수송으로 인한 적자를 정부가 메워주는 ‘도시철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해 지난 9월 국회 교통위원회를 통과했으나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려 계류된 상태다. 전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서울ㆍ부산 등 대도시에 사는 노인들의 지하철 요금을 대신 내주는 것이 형평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도 같은 이유로 반대 의견을 냈다. 법이 개정될 경우 매년 평균 8,000억원 가량이 정부 부담이 된다.

그러나 노인들의 공짜 수요를 줄인다고 해도 지하철의 만성 적자가 해결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최진석 한국교통연구원 철도안전산업연구센터장은 “도시철도는 공공재산인데 공사들이 시설물을 유지 보수하고 개량하며 막대한 돈을 부담하는 게 적자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공짜이기 때문에 노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일 뿐, 유료화로 전환된다면 이용 수요가 크게 줄어들어 수익 개선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해법, 고민해봅시다] “노인복지 관점서 사회적 합의를”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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