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주의ㆍ공감 능력 등
응집력을 통해 공동체가 진화”
그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시행
소도시 친사회성 지도를 그려
네이버후드 프로젝트
데이비드 슬론 윌슨 지음ㆍ황연아 옮김
사이언스북스 발행ㆍ640쪽ㆍ2만5,000원
진화론 연구자가 사회 정책에 개입한다? 이거 좀 위험해 보인다. 전례도 있다. 스탈린의 소련은 진화론을 몹시 좋아했다. 진화론을 잘 알게 된다면, 오랜 기간 농노(農奴)로 살아와 그저 자기 소유 땅 한 덩어리에 집착하는 저 무식한 촌놈들을 ‘사회주의의 큰 뜻을 이해하고 사회주의적 품성을 지닌 위대한 노동영웅’으로 도약시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이다. 물론, 진화란 본질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었기에 이후 소련 생물학계는 인간개조론을 내세우는 몇몇 사이비들 손에 놀아나다 망해버렸다.
‘네이버후드 프로젝트’은 이 금기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기록이다.
먼저 저자 데이비드 슬론 윌슨. 미국 뉴욕주립대 빙엄턴 캠퍼스의 생물학 교수인 윌슨은 사회생물학의 창시자 에드워드 윌슨과 더불어 유전학계에선 소수파라 불리는 집단선택론의 대표적 옹호자다. 집단선택론은 ‘이기적 유전자’ 대신, 이타주의와 공감능력을 중시한다. 고도의 사회적 응집력이 진화의 원동력이었을 것이라 본다.
‘네이버후드 프로젝트’는 집단선택론자인 저자가 빙엄턴시를 대상으로 실제 수행한 사회실험 명칭이다. 도시는 인구밀집지역이다. 밀집은 각 개체들에게 빠른 적응과 진화를 요구한다. 빙엄턴은 인구 5만 정도로 도시치곤 작은 규모다. 진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밀집 지역이긴 하되, 너무 커서 실험을 못할 정도는 아니니 ‘테스트 베드’로 적당하다. 더구나 빙엄턴은 세계 곳곳에서 여러 이민자들이 몰려들어 각자 쓰는 모국어만도 18개 언어 이상일 정도로 유전적 다양성이 풍부한 곳이기도 하다. 인간이 지겨워 까마귀를 연구한다는 부인과 달리, 진화론을 연구한답시고 맨날 두꺼비와 진드기를 들여다보는 게 진력이 났던 저자에게 빙엄턴은, 이타주의와 공감능력을 실험해보기에 좋은 장소로 보였다.
세부적 설명 때문에 책은 두껍지만, 스토리는 간결하다. 빙엄턴 공립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친(親)사회성 정도를 알아보는 설문조사를 시행한 뒤 이를 빙엄턴시 지도와 동기화했다. 친사회성 점수가 높아 지도상에 산으로 표시된 지역은 안전한 주거지역이었고, 친사회성 점수가 낮아 골짜기로 표시된 지역은 우범지대였다. 좋은 환경에 사는 아이들은 당연히 이 사회에 긍정적일 테고, 우범지대에 사는 아이들은 당연히 주변 환경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라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인 거대 사회 통계 연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밥 먹으면 배부르다’ 수준의 결론이다.
저자는 여기서 한걸음 더 뗀다. ‘어떻게 하면 골짜기를 메워 산으로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과제다. “진화라는 연장통을 가지고 여러 개의 막힌 하수도를 고치는 배관공”임으로 자임하는 저자는 도시의 빈 공터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꾸미도록 하는 ‘당신만의 공원을 디자인하라’ 프로젝트 같은 것을 통해 친사회성을 계발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고안해낸다. 그래서 친사회성이 높아졌느냐고? 이건 앞으로 연구가 더 진행되어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사실 엄격한 과학의 눈으로 보면 이 프로젝트는 그 자체가 논란거리다. ‘친사회성’ 측정을 설문조사로 갈음한다는 것이 과연 엄밀한 연구 토대를 제공하는 것인 지에서부터, 친사회성을 통해 공동체가 진화한다는 말의 의미가 인종ㆍ성별ㆍ세대별 구분과 차별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보는 저자의 관점이 과연 옳은 것인지 등 읽어가는 내내 여러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냉소적 시각으로 보면 이 책은 어쩌면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한 기나긴 변명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게 하는 점을 꼽으라며 세가지다.
하나는 따뜻함이다. 이 무슨 순진한 헛소리냐고 욕 먹을 지는 몰라도 진화론을 공부한 학자가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지역사회와 공무원이 호기심을 보이고, 주민들이 자원봉사를 통해 설문조사 등 각종 업무를 기꺼이 돕고,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 못하는 기업인이 후원하려 나서는 풍경 자체가 이미 집단선택론을 뒷받침하는 것만 같다.
두 번째는 ‘넛지’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세일러의 행동경제학에 대한 비판이다. 저자는 ‘이기적 개인’을 내세우는 주류경제학을 깼다는 점에서 행동경제학을 칭찬하면서도 심리학을 넘어 심리학의 토대인 진화론까지 오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 때문에 좋은 공격포인트를 쥐고 있으면서도 “신고전주의 경제학이라는 모성의 중력에 이끌린 작은 위성들처럼, ‘변칙’으로 취급”되는 데 그치고 있다고 지적해뒀다. 또 다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엘리너 오스트롬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 부분은 19장 ‘에보노믹스’를 직접 읽어보는 게 좋겠다.
마지막으론 역시 ‘글발’이다. 앞서 언급한 19장 에보노믹스만 해도 그렇다. 경제얘기를 딱딱한 경제학 용어로 풀어내는 대신, 자신을 이기적 개인이라는 ‘절대 반지’를 부수러 가는 ‘반지의 제왕’의 주인공 프로도에 비유한다. 주류경제학에 도전한 세일러나 오스트롬은? ‘반지원정대’다. 그러면 주류경제학자는? 당연히 오크다. 시장근본주의를 신봉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은? 어둠의 군주인 사우론쯤 되려나.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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