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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디지털성폭력… 젠더폭력 방지 어떻게? 머리맞댄 여성들

입력
2017.12.0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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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동부지검에서 열린 성관련범죄&여성 전문검사 커뮤니티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젠더폭력 방지를 위한 기본법 제정을 모색하다' 세미나에서 조희진 서울동부지검 검사장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성관련범죄&여성 전문검사 커뮤니티 제공
지난 7일 서울동부지검에서 열린 성관련범죄&여성 전문검사 커뮤니티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젠더폭력 방지를 위한 기본법 제정을 모색하다' 세미나에서 조희진 서울동부지검 검사장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성관련범죄&여성 전문검사 커뮤니티 제공

“강남역 살인 사건 후 남녀화장실을 분리하고 폐쇄회로(CC)TV 설치를 늘려서 여성이 더 안전해졌을까요?”

“여중생을 임신시킨 40대 연예기획사 대표가 대법원 무죄 판결을 받은 상황에서 법 하나 더 만든다고 사법부가 달라질까요?”

스토킹, 데이트 폭력, 디지털 성범죄 등 성폭력 범죄는 다양한 양태로 진화하는데 이를 다루는 법과 제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여성 법조인들과 여성 단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여성관련범죄&여성 전문검사 커뮤니티(이하 여성전문검사 커뮤니티)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지난 7일 ‘젠더폭력 방지를 위한 기본법 제정을 모색하다’는 주제로 서울 동부지검에서 공동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에는 여성전문검사 커뮤니티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젠더법연구회, 한국여성변호사회, 민변 여성위원회,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여성전문검사 커뮤니티 좌장인 조희진 서울동부지검 검사장은 “성폭력, 가정폭력 외에도 스토킹, 인신매매, 사이버성폭력, 여성 증오범죄 등 여성폭력의 양상이 다양하고 심각해지면서 이를 포괄적으로 망라해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며 젠더폭력방지기본법의 필요성을 밝혔다.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에 두고 성 차이에 기반한 유ㆍ무형의 폭력 전반에 대처하기 위한 젠더폭력방지기본법(가칭) 제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로 지난 7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여당에서도 젠더폭력대책전담팀을 지난 9일 구성해 법 제정 논의를 하고 있다.

젠더폭력은 남녀 성별불평등 기반으로 발생하는 구조적인 폭력

젠더 폭력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남성과 여성간의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권력 불균형등 성별 위계와 관련 있다고 보고 채택된 개념이다. 국제사회에서도 젠더 폭력을 남성이 권력 및 특권을 남용해 나타나는 성별 불평등 현상으로 보고 있다.

젠더 폭력은 비단 여성에 국한하지 않는다. 일부 남성들도 남성다움을 결여했다는 이유로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는 점에서 남성 역시 젠더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세미나에서 그동안 여성 관련 법에 성별위계구조 문제가 빠져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형사정책연구원의 정다혜 부연구위원은 “박근혜 정부 시절 제정된 양성평등기본법은 각각의 범죄에 대한 예방정책, 교육 등이 별개로 취급되면서 성별 권력관계라는 큰 핵심이 빠졌다”며 “여성폭력 개념이 삭제된 자리에 국민안전이 대신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정부의 대응책이 정책방향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며 “정부는 남녀 화장실을 분리하고 CCTV와 여성안심택배를 늘리는 대응책을 내놓았지만 오히려 안전하지 않은 공간 목록만 늘리고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면서 여성의 공적 공간 활용을 제약했다”고 지적했다.

젠더폭력방지기본법, 상징적인 법으로만 남지 말아야

기본법 제정을 통해 현재 가정폭력방지법, 성폭력방지법, 성매매피해자보호법 등 여러가지로 흩어진 개별법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장미혜 연구원은 “기본법 제정을 통해 보편적 인권과 젠더 관점에서 폭력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추진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젠더폭력방지기본법을 별도로 제정하는 방안과 현재의 양성평등기본법을 보완해 통합하는 방안, 젠더폭력방지기본법과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을 각각 별도 제정하는 방안 등이 검토됐다”고 말했다. 그는 “기본법이 상징적인 법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며 “가해자 처벌 조항을 건드리지 않는 것은 반쪽 짜리일 뿐”라고 덧붙였다.

기본법 제정과 관련해 우려도 있다. 정부의 기본법 제정 과정이 젠더 폭력에 대해 충분한 논의 없이 스토킹, 데이트폭력, 온라인 성폭력 등 신종 성폭력 유형을 추가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 있다는 우려다.

또 젠더 폭력 개념을 형사법 체계로 도입 했을때 성폭력 범죄 피해를 정조, 성적 수치심이라는 사회적 법익 개념에서 어떻게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구조적 문제로 바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국회에서는 내년 여성가족부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금 7억4,000만원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삭감했다가 반대 여론에 밀려 다시 원상 회복했는데, 이 또한 젠더 폭력 피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검사들의 고민… 진화된 성범죄, 2차 피해 예방 수사 어떻게

성폭력 범죄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들도 고민이 깊다. 박명희 서울동부지검 검사는 “성범죄는 10년 전과 너무나 달라져 죄형법정주의에 반하지 않고 어떻게 대책을 마련할 것인지 고민이 많다”며 “진화한 데이트폭력, 가정 내 성폭력 범죄들을 수사할 때 피해자의 2차 피해를 예방하면서 심도 있는 조사를 할 수 있는 기법 개발도 절실하다”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여검사들의 존재는 각별하다. 사회를 맡은 문지선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최근 논란이 된 이혼 소송 조정 중인 부인을 살해한 20대 남성의 사건을 언급하며 “여성이 일상에서 느끼는 위험과 안전한 사람 및 안전한 장소는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성 검사로서 여성이 피해자인 사건을 보면 그 자리에 내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마음이 든다”며 “그것이 여성 검사 존재의 중요한 의의가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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