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년 전부터 기부 참여자 감소세
“기부 요청하는 단체 못 믿겠다”
‘어금니 아빠’ 사건도 불신 키워
#2
모금ㆍ지출내용 의무공시 단체
공익법인 4곳 중 1곳만 해당
“해외처럼 공시 기준 낮춰야”
#3
기부 결과 확인되면 기부금 증가
통합정보공개시스템 도입으로
손쉽게 정보 접근할 수 있어야
최근 국민들의 기부 참여 열기는 주춤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까지 증가 추세였던 개인 기부금액(약 7조8,313억원)과 기부 참여자(약 580만명)가 2014년에는 약 7조7,178억원, 약 530만명으로 줄었고, 2015년에는 기부액(약 7조9,328억원)은 소폭 늘었지만 참여자(약 529만명)는 줄었다. 이런 추세의 이유로 여러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기부금의 사적 이용, 기부단체 관계자의 횡령 등 기부관리의 투명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기부할 마음 자체를 얼어붙게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어금니 아빠’ 이영학씨가 희귀병에 걸린 딸 수술비 명목으로 기부 받은 돈 대부분을 호화 생활 경비로 써 왔다는 사실이 알려져 그에게 기부했던 시민들이 충격에 빠졌다. 앞서 8월에는 결손아동 돕기 단체인 새희망씨앗 관계자들이 2014년부터 기부 받은 128억원 중 실제 불우 아동에게 2억원만 쓰고 나머지는 자신들의 요트 관광ㆍ골프 여행, 고가 수입차ㆍ아파트 구입 자금 등으로 써온 일이 드러났다.
실제로 국민들은 기부를 꺼리는 주요 이유로 기부단체에 대한 불신을 꼽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성인남녀 2,0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나눔 실태 및 인식 현황’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기부 경험이 없다는 응답자 964명 중 기부를 하지 않은 이유로 ‘기부를 요청하는 시설, 기관, 단체를 믿을 수 없어서’를 택한 비율이 23.8%로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52.3%)’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했다.
기부단체를 고를 때 주요 고려 사항으로 ‘기부 금액의 투명한 운영’을 꼽은 비율이 54.2%로 가장 높았지만, 우리나라 기부 단체가 정보공개를 잘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72.5%에 달했다. 부정 평가 비율이 2014년 62.7%, 2015년 68.3%로 계속 높아지고 있는 것도 안타까운 대목이다.
특히 자신의 기부액이 어디 쓰이는지 알고 기부한 이들의 평균 기부액은 연간 62만원이었던 반면 모르고 기부한 이들의 기부액은 39만원에 불과해 기부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기부 의사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응답자들이 나눔문화 확산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 1순위(35.3%)로 꼽은 것도 ‘관련 단체의 투명성 및 신뢰성 강화’로, 정보제공(16%), 홍보강화(14.9%)보다 훨씬 높았다.
기부금 지출내용 의무 공시 범위 넓혀야
전문가들은 현재 기부단체-기부자-정부-민간 평가조직 등이 맞물려 있는 기부 생태계가 정상 작동하도록 우선 모금액ㆍ지출내용 등을 의무 공시해야 하는 단체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지정기부금단체, 법정기부금단체, 공익법인 등은 소득세, 법인세 감면, 부가가치세 면세(공익법인) 등 혜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각종 혜택에 비해 공시 의무가 있는 단체는 소수라는 평가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정한 지정기부금단체는 무조건 결산내역을 국세청을 통해 공시해야 하지만 3,708개(올해 3분기 기준)에 불과하다. 법정기부금단체와 공익법인에 대해서는 자산 총액이 5억원 이상이거나 수입 금액과 해당 사업연도 출연금 합계가 3억원 이상인 경우 공시 의무가 부여되는데 대부분이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재단법인 한국가이드스타의 분석에 따르면, 공익법인 3만4,000여 개(2015년 기준) 중 종교 법인(1만8,000여 개)은 공시 의무가 없고, 나머지 사회복지법인, 교육법인, 학술ㆍ장학법인, 의료법인(1만6,000여 개) 중 공시 의무가 있는 단체가 52%(8,500여 개)에 불과하다. 결국 공익법인의 4분의 1만 공시 의무 대상인 셈이다.
반면 미국은 수입 2만5,000달러(약 2,780만원), 영국은 자산 5,000파운드(약 738만원)를 공시 의무 기준으로 삼고 있다. 정재환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보는 “공시 기준을 대폭 낮출 필요가 있다”며 “자산가액이나 연간 수입액의 규모에 따라 공시 자료의 서식을 달리 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불성실한 공시 행태도 문제다. 한국가이드스타가 올 2월 미국 가이드스타의 평가 지표를 차용해 사상 처음 국내 기부단체 2,553곳을 평가한 결과 고유목적사업비 0원, 관리 및 모금비용 0원, 직원 수 0명 등 한 눈에도 엉터리 공시를 한 곳이 1,665개나 됐다. 박두준 한국가이드스타 사무총장은 “공익법인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외부 감사를 받아야 하는 기준을 현재 자산 100억원에서 기부금 수입 10억원으로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지정 절차 강화해 남발되지 않도록
기부 관련 업무가 정부 내 여러 부처로 흩어져 있다는 사실도 관리감독을 어렵게 한다. 박 사무총장은 “현재 국내 어느 부처나 기관도 지정기부금단체가 정확히 몇 개인지 아는 곳이 없다”고 꼬집었다. 기부금품 모집ㆍ관리는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 기부금 세제 지원은 기획재정부, 기부금 관련 결산 자료 공시는 국세청이 맡고 있다. 지정기부금단체 지정은 기획재정부 몫이지만 각 부처가 지정을 추천할 수 있다. 호주는 2012년 12월 호주자선및비영리위원회(ACNC)를 설립해 부처에 흩어져 있던 기부 관련 업무를 일원화한 뒤 비영리 공익법인의 정관, 규칙, 이사회 회의록, 연간 회계정보 및 재무 자료를 투명하게 관리하고 있다.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직접 조사한 뒤 국세청 감사를 통해 돈을 회수한다.
기부금단체 지정 시 검증 절차가 부실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단체가 써낸 서류 점검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조직 테스트, 운영 테스트 등 까다로운 검증을 통해 면세 단체의 지위를 주고, 일본도 공식인정테스트(PST), 조직운영, 경리의 적정성, 사업활동의 적정성 등 총 8개 요건을 충족해야만 ‘인정 비영리 공익법인’으로 정해 세제 혜택을 준다. 서희열 강남대 교수는 “기부단체가 과도하게 늘어나게 하기보다는 지정 요건을 구체화해 공익성 검증을 통과한 단체에게만 세제 지원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정보 얻을 통합기부정보시스템 필요
국민들이 기부단체에 대한 정보나 자신의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좀 더 쉽게 알 수 있도록 통합기부정보공개시스템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지금은 어떤 단체로부터 기부 의뢰를 받았을 경우, 이 단체가 ▲기부금품을 모집할 수 있는 단체인지 확인하려면 ‘1365기부포털’에 ▲적법하게 등록된 사회복지시설인지 알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시설정보시스템’에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와 기부금 사용 현황을 파악하려면 국세청 홈택스에 접속해야 한다. 미국은 국세청(IRS)이 비영리단체 공시 양식인 ‘양식 990(Form 990)’에 따라 기부금 수익, 사용 내역, 사업 내용, 내부 의사 결정 구조 및 임직원 보수까지 공개하도록 했다. 이 정보를 가지고 가이드스타, BBB와이즈기빙 얼라이언스, 채러티내비게이터 등 170개 넘는 민간 평가 기관들이 평가, 분석한 결과를 별점으로 표시해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이성규 한국장애인재단 이사장은 “기부단체는 기부 관련 정보를 충실히 제출하고 정부는 이 정보를 자세히 공개한 다음 민간영역에서 이를 평가해 국민이 알기 쉽게 제공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일랜드에 본부를 둔 국제인도주의단체 컨선월드와이드코리아의 이준모 대표는 ‘어금니 아빠’ 사건 이후 기부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서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안내했다. 기부자들은 걱정이 많았는데 안심이 된다며 고마워했다고 한다. “기부자는 파트너입니다. 많은 기부금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후 사업의 결과, 변화, 기쁨을 기부자와 공유하는 과정은 필수입니다. 기부자와 원활한 소통과 교감이 있으면 기부단체에 대한 신뢰도는 당연히 올라가죠.”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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