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시비 뒤 왕따 된 학생 상대
“쓰레기” “죽여버린다” 욕설 협박
피해학생 욕하기 계정도 만들어
“핫플을 게임처럼 여기면서
전교생이 한 학생 괴롭힌 꼴”
“교실 창문에 왜 긴 봉이 3개나 달려있는지 몰랐는데, 이제 알아요. 뛰어내리기 힘들게 하려고 있는 거잖아요…” 서울 서초구 S중 학교폭력 피해자 A(14)양이 ‘자살 충동’을 이렇게 에두르자 A양 어머니는 분통을 터트렸다. “특수목적고 진학 때문에 가해자들을 봐준 것(본보 8일자 8면)도 모자라, 아이가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학교는 학교폭력을 제대로 판단할 의지도 없어 보입니다.” S중에서는 무슨 일이 있던 걸까. (▶ 관련 기사 : [단독] “특목고 진학 문제 될라” 학폭위 가해자 봐주기 의혹)
A양은 올해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시작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였다. 2학년인 A양은 7월 17일 SNS에서 한 3학년생의 부모까지 욕하는 1학년생들에게 “도를 넘은 거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학년 가리지 않고 A양을 욕하는 댓글이 마구 달렸다. 다음날 쉬는 시간 몇몇 3학년생들은 직접 부른 A양을 약 50명이 둘러싸게 한 뒤 몰아세우고 “쓰레기네” “죽여버린다” “뭘 꼴아 보냐(쳐다 보냐)” “똑바로 서라” 등 욕설을 퍼부었다. ‘둘러싸고 욕하기’는 수업 시작 종이 울린 뒤에야 멈췄다.
이날 학생들은 이른바 ‘핫플’ 공유로 A양 괴롭힘에 동참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음식점 등 핫플레이스(hot place)를 뜻하는 핫플이 S중 학생들에겐 ‘A양을 둘러싸고 욕하는 장소’라 받아들여진 것이다. ‘곧 A양 핫플 뜬다’ ‘A양 핫플 구경하러 가자’ 같은 글이 SNS에 돌자 쉬는 시간 A양 근처로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비뚤어진 S중 학생들의 핫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8월 14일, 10월 11일 두 차례 더 있었다. 특히 10월엔 A양보다 한 학년 아래인 1학년생이 ‘A야 기다려 언니가 갈게’라고 자신의 SNS에 핫플 예고 글을 남기자, A양 반 앞에 80명 가까이 몰려들었다. 이 상황을 목격한 2학년 한 학생은 “몰려든 애들 중 절반은 핫플을 즐기면서 방관하고, 나머지는 A양을 싫어해서 욕하려고 핫플을 보고 온 것”이라고 말했다.
괴롭힘은 SNS에서도 지속됐다. 페이스북에는 A양 욕하기 전용 계정이 만들어져 ‘친구 신청 받는다’는 글이 올라왔고, 에스크라는 익명 SNS에서는 A양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일부 학생은 A양 부모까지 욕하는 ‘패드립(패륜+드립)’을 남기기도 했다.
학교는 사건 발생 석 달이 한참 지나서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었다. 11월 7일, 20일 두 차례 진행됐지만 “해당 행위들을 학교폭력으로 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주요 가해자로 지목된 1, 2학년 학생 4명에게 ‘조치 없음’ 결정했다. 3학년생 3명에게는 그나마 1(서면 사과), 2(보복 금지), 3(봉사 3일)호 조치를 내렸지만,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기록에서 없어져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이에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은 “핫플에 가담한 적 없다”고 해명했다. 1학년 학생 측은 “학생들이 A양을 둘러쌌다는 10월 11일 점심시간에 A양을 마주친 적도 없다”며 A양이 자신에게 패드립을 남겼다고 한 글에 대해서도 “아무도 특정하지 않고 홀로 화가 나 남긴 화풀이 글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또 다른 1학년 학생 측은 “친하게 지내던 선배(A양)가 연락 수단을 모두 차단하고 갖은 험담을 한다기에 이유를 묻기 위해 찾아간 것일 뿐”이라며 “욕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SNS 계정 역시 A양에게 연락하려 만든 계정”이라고 밝혔다.
3학년 학생 측도 “집단적으로 SNS를 이용해 괴롭힌 게 아니다”며 “가해자로 먼저 지목돼 어쩔 수 없이 참가하게 된 학폭위 결과에 불복행정심판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8월 14일 상황이 만들어진 계기인 ‘A양을 욕한 글’은 다른 학생이 쓴 것이지 나머지 3학년 학생 3명과는 관계없다”며 “오히려 A양이 먼저 해당 학생들을 욕하는 글을 올려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한결 같이 “학교의 안이한 판단”을 지적했다. 정제영 이화여대 학교폭력예방연구소 부소장은 “이 사건은 한 학생을 대상으로 다수 학생이 SNS를 이용해 정신적인 피해를 입힌 ‘심각한’ 학교폭력”이라고 밝혔다. 김경석 한국학교폭력상담협회장은 “특히 이 학교 학생들이 게임처럼 받아들이고 즐긴 핫플은 발전된 학교폭력 양상으로 SNS를 통해 사실상 전교생이 한 학생을 괴롭힌 꼴이라 피해 학생의 수치심은 극에 달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현재 해당 사건은 서울시교육청에서 재심 절차를 밟고 있으며, 서초경찰서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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