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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 시위’ 나선 변호사,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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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 시위’ 나선 변호사, 왜?

입력
2017.12.11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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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법 개정안 통과됐지만

당장 뚜렷한 피해 없는데도

“독점 권한 줄어든다”강공

로스쿨 도입후 변호사 급증한 만큼

시장은 성장하지 못해 경쟁 심화

세무사ㆍ법무사ㆍ노무사 등

전문 직역 분리 싸고 대립 확산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변호사의 세무사 자격증 자동취득 권한을 삭제한 세무사법 개정안 통과로 변호사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초유의 집행부 삭발식까지 감행한 대한변호사협회는 변호사 총궐기대회 예고 등 강공을 펼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미 14년 전 소송과 무관한 세무대리 업무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점을 감안하면 이번 세무사법 개정안 통과로 인해 변호사가 받을 뚜렷한 피해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 때문에 변호사 단체의 반발은 업무가 겹치는 세무사 등 전문 직역의 전방위 공격이 예사롭지 않은 데 대한 방어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변호사가 상대적으로 광범위한 업무영역을 갖고 있는 만큼 사회의 복잡ㆍ전문화에 따라 업무 영역을 분리하고, 변호사가 독점하는 소송 대리 권한도 일부 떼달라는 전문 직역의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는데 대한 사전 차단과 대응 차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세무사 자격증 자동부여 권한 폐지가 최초 국회 발의된 지 14년 만인 8일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하면서 다른 전문 직역의 요구 분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세무사법 개정안은 16대 국회였던 2003년부터 19대 국회까지 매번 발의됐지만 그때마다 법조인 출신이 많은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폐기됐다. 직역을 확보하기 위한 세무사 반발도 거세졌다. 2003년 한국세무사회가 대국민서명운동 등을 벌인 끝에 신규 변호사를 세무사 등록부에 올리지 못하도록 법이 일부 개정 됐지만 ‘자격증 자동 취득’ 조항은 살아남았다. 관련 조항 폐지 법안은 장기 계류됐지만 이번에 국회선진화법 적용에 따라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통해 본회의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다.

이에 변협은 “변호사 제도 근간을 훼손한다”며 반발하지만 변호사가 입는 실질적 손해가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변호사는 2003년 세무사 등록부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도록 한 세무사법 개정으로 세무조정계산서 작성 등 세무대리 업무에 제한을 받고 있다. 세법은 세무대리 업무를 세무사 등록부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자가 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더라도 변호사협회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면 변호사 업무를 할 수 없도록 한 변호사법 규정과 비슷하다. 이에 따라 2003년 이후 신규 변호사는 상당수 세무대리 업무 및 세무사 명칭을 사용한 사무실 개업을 못했다. 더군다나 변호사의 세무대리 업무가 완전 봉쇄된 것도 아니다. 변호사법 3조에 따라 변호사가 하는 세무ㆍ조세 법률 소송에 수반되는 세무 대리 업무는 볼 수 있도록 돼 있다.

이런 측면을 감안할 때 변호사 업계 반발을 법무사 세무사 변리사 등 전문 직역과의 역학관계에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변호사와 전문 직역간 갈등은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김현 변협 회장은 유사직역을 통폐합해 변호사 생존권을 지키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당선됐다. 전문 직역의 새 인력을 뽑지 않는 대신 이들 직역까지 포괄하는 법조인 신규 인력을 로스쿨을 통해 배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와 경쟁하는 전문 직역들은 변호사가 독점하는 소송 대리 권한 일부를 내놓으라는 법안을 잇따라 발의하면서 공세를 퍼붓고 있다. 변리사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변호사만 할 수 있던 특허침해 소송을 변리사도 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17대 국회부터 장기 계류 중이다. 지난해 발의된 공인노무사법 개정안도 노무사가 노동 관련 고소ㆍ고발인을 대리해 수사기관에서 피해 사실을 대신 진술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문 직역의 파상공세에 대한 변호사 업계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행정자치부가 지난 5월 입법예고한 행정사법 개정안에는 당초 행정사가 행정심판을 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가 변협의 강력 반발로 빠졌다.

변협 관계자는 “지금도 기장 대리 업무를 하는 변호사들이 극히 드문 만큼 세무사법 개정안으로 실질적인 변화가 없는 것은 맞다”며 “세무사 단체에서 세무나 조세 소송 대리권을 주장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점 때문에 변호사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출구 없는 직역 갈등은 더 심화될 전망이다. 변호사가 극소수이던 시절에는 국가자격증시험 등을 통해 세무사 등 전문 직역을 만들어 수요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로스쿨 도입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로스쿨 제도 도입 후 변호사가 급증했지만 법률시장은 그만큼 성장하지 못해 같은 크기 파이를 놓고 변호사간, 변호사와 전문직역 간 갈등이 심각해졌다”며 “각 집단의 목소리가 커 정부가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기도 어렵고,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도 못하고 있어 앞으로 법조 시장 내 갈등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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