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사비 지출” 주장에 ‘갸우뚱’
지역 기관단체장 스폰서 역할설
정치자금제공 등 소문만 무성…
“구체적 사용처 당당하게 공개해야”
박인규 DGB대구은행장은 ‘카드깡’으로 조성한 31억 원이 넘는 비자금을 어디에 썼을까. 13일 대구경찰청에 3차 소환을 앞둔 가운데 비자금 사용처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이 높다.
대구은행 측은 “대구은행을 위한 대외활동을 위해 공적으로 썼다”고 밝히고 있다. 주로 경조사비 등에 사용했다는 설명이다. 사적 횡령이나 정치자금, 뇌물 제공 등 부적절한 곳에 쓰지 않았다는 항변이다.
이 같은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우선 상품권할인이라는, 신용기관으로서 납득하기 힘든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지만, 보수적인 은행 특성상 근거는 반드시 남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사가 지지부진한 것도 사용처에 대한 소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석채 전 KT회장은 거의 5년간 11억6,000여 만원의 비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대법원에서 무죄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다. 이는 “경조사비로 썼다”는 그의 주장 대부분이 소명됐기 때문이다. 경찰이 13일 박 행장을 3번째 소환한 것도 사용처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고, 박 행장도 부적절한 지출이 아니라는 점을 소명하지 못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경조사비로 보기엔 금액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도 의문이다. 박 행장이 은행장에 취임한 2014년 3월부터 지난 7월까지 3년 5개월간 조성한 비자금 31억여원은 매달 평균 8,000만원 가량이나 된다. 이 기간 경조사비로 1인당 10만원을 냈다면 3만1,000여 명이고, 20만원이면 1만5,000명 이상이다. 대구은행이 지역 최대 기업이고, 대구시와 구ㆍ군청 등의 금고지기이지만 지역 상갓집이나 잔칫집마다 부조를 한 셈이다. 상상하기 어렵다. 1인당 100만원씩 했다면 3,100여명으로 줄겠지만 1인당 금액이 너무 많다. 뇌물이나 마찬가지다. 이석채 전 KT회장은 회사 규모가 대구은행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고, 기간도 5년 가까이 되지만 총액이 박인규 행장의 3분의 1 정도다.
이 때문에 대구은행이 지역 유력 기관장들의 ‘스폰서’ 역할을 했다는 소문이 그럴듯하게 포장돼 나돌고 있다. “기관장들이 오고 가고 할 때 수백만 원 하는 행운의 열쇠를 대구은행이 만들어 주었다”, “단체장들의 해외출장 때 법인카드 사용이 곤란한 자리는 대구은행이 책임졌다”, “지역 유력 인사들의 술자리, 골프모임 최대 스폰서가 대구은행이다”는 풍문이 파다하다. 정식 회계처리가 곤란한 곳에 대구은행 비자금이 쓰였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와 함께 가능성은 적지만 정치자금이나 뇌물로 쓰였을 것이라는 주장도 숙지지 않고 있다. 사실이라면 그 파장은 가늠조차 어려워 보인다. 경찰이 가장 신경을 쓰는 대목도 이 부분이다.
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대구은행의 비자금 조성은 ‘관행’이었는데 경찰이 쓸데없이 들쑤셔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초래한다는 여론이 적지 않다”며 “대구경찰은 명예를 걸고 시민들이 납득할만한 수사결과를 내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참여연대 대구경실련 우리복지시민연한 3개 시민단체는 13일 오전 대구경찰청 앞에서 ‘박인규 대구은행장 구속수사 및 은행장 사퇴촉구’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이들 단체는 “대구은행 불법비자금 사건이 5개월이 지나는데도 경찰 수사는 부진하고 박 행장은 염치없이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대구은행과 대구의 도시 이미지는 실추했고 대구은행은 뒤처지고 구성원과 시민들의 한숨이 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박 행장 자택 인테리어 공사를 대구은행 거래 건축회사에 맡기고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갑질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며 구속수사와 은행장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대구은행 측은 “인테리어 공사비 미지급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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