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ㆍ30대가 비트코인 투자 주도
경제 불확실성에 사행심리 커져
대학생 윤모(27)씨는 “지인이 비트코인에 투자해 1년치 등록금을 벌었다”는 친구 이야기를 듣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100만원을 지난 6일 ‘올인’했다. 당시 코인 한 개 가격은 1,400만원이었는데 8일에는 2,400만원까지 치솟으며 윤씨의 100만원도 어느덧 170만원으로 불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가격이 30% 넘게 급락하며 그는 부랴부랴 매도에 나섰다. 윤씨는 12일 “가격이 오를 때마다 심장이 빨라지는 느낌”이라며 “몇 달간 아르바이트를 해야 모을 수 있는 돈을 이틀 만에 얻으니 ‘굳이 일을 할 필요가 있나’란 생각이 들어 허무했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광풍이 한국을 휩쓸고 있다. 직장인뿐 아니라 청소년, 주부, 노인 등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뛰어들며 투기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투자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카페도 1,000여개에 달할 정도다.
투자를 주도하고 있는 이들은 젊은 층이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지난달 이용자 4,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20대와 30대 이용자가 각각 29%를 차지했다. 그 뒤를 40대(20%)와 50대(12%)가 이었다. 20ㆍ30대가 투자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셈이다. 주식 등과 달리 거래에 제한이 없는 탓에 청소년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용자 연령 통계를 별도로 내진 않지만 청소년의 수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유독 한국에서 이상 과열 조짐이 나타나고 20ㆍ30대 비율이 높은 이유로 ‘희망없는 사회’를 꼽았다.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만연할 정도로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20ㆍ30대가 비트코인을 ‘흙수저 탈출구’로 여긴다는 해석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믿음이 사라진데다 한국인의 동조심리와 집단주의적 성향이 맞물린 결과”라며 “희망 없는 사회에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한탕주의가 만연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임명호 단국대 교수도 “현 청년층은 이전 세대와 달리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고 부를 창출하기도 어렵다”며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고 불안감까지 겹치자 사행심리만 커지게 됐다”고 분석했다.
국내 정보기술(IT) 환경, 소액 투자가 가능한 점 등도 광풍의 이유로 꼽힌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직접 (도박장에) 방문해야 하는 다른 사행성 투기와 달리 가상화폐 거래는 애플리케이션(앱)만 깔면 되고 별도 제재도 없어 청소년과 젊은층의 접근이 용이하다”며 “더구나 많은 자금이 필요한 부동산과 달리 적은 돈으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믿음에 젊은 층이 돈을 빨리 벌 수 있는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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