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가 가사에 따르면, 사랑은 얄미운 나비이며, 유리 같은 것이며, 창밖에 빗물처럼 부질없다. 내게 사랑은 너무 쓰며,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며,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지 원망스럽다. 그래서 많은 이가 동굴에 들어간다. 사랑 안 해! 사랑은 연필로만 쓸 거야!
어쩐지 아쉽다면, 김지윤 좋은연애연구소장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17년 강의 경력의 관계 전문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폭발적 조회수를 올린 그의 강의는 예리하고 명쾌하다. 사랑에 정답은 없다지만, 참고할 모범 답안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사랑이 어렵고 두렵다는 사람이 많은데.
“마땅한 사랑의 롤 모델이 없어서다. 보고 자란 거의 유일한 남녀관계 모델이 부모인데, 별로 바람직한 모델이 아니다. 사랑의 감정을 TV드라마에서 주로 배운다. 드라마에선 오해와 갈등이 마지막회에, 그것도 공항 출국 게이트 같은 곳에서 스르르 풀린다. 사랑을 두고 극단적 환상 아니면 거부감을 품게 되는 것이다. 또 SNS로 소통하다 보니 진짜 관계를 맺는 것에 미숙하다. 과거 엄마들은 ‘대학 가면 살도 빠지고 남자 친구도 생길 테니 공부만 하라’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웃음). 요즘 세대는 더 공부만 한다. ‘수학의 정석’ 파듯 사랑도 뒤늦게 학습해서 하려 한다. 연애를 잘 하겠다는 시도 자체는 긍정적이다.”
-사회가 사랑에 너그러워졌는데도 연애의 질은 나빠졌다.
“사랑할 기회가 늘었지만 연인들이 누리지 못한다. 연애는 서로를 소비하는 것이다. 데이트 콘텐츠는 상대여야 한다. 그런데 밥, 커피, 영화, 여행, 섹스 같은 자본주의적 데이트 메커니즘만 소비한다. 상대의 역사, 내면을 알기까지의 정신노동을 부담스러워한다. 무엇보다 자기 감정을 잘 모른다. 갈등이 생기면 ‘몰라, 짜증 나, 그만해’하고 피한다. 관계가 공허할 수밖에 없다. 연인과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가는 만큼 서로의 마음속으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별도 힘들어한다. 연락을 일방적으로 끊는 ‘잠수 이별’, 문자로 통보하는 ‘카카오톡 이별’을 많이 한다.
“스스로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고 불편한 감정을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별은 엄청난 상처고 절망이다. 뉴스 속보 전하듯 고하면 안 된다. ‘지금 당장 우리의 사랑을 동강 내겠다’는 식의 무자비한 통보는 상대를 절벽으로 내몬다. 합의 이별, 만나서 하는 이별을 해야 한다. 단, 술 마시며 하면 위험하다. 내재된 폭력성이 폭발할 수 있다. 이를테면 낮 12시 광화문광장에서 맨 정신으로 이별해야 한다.”
-사랑해도 안전한 좋은 사람은 어떻게 알아보나.
“답은 행동에 있다. 생각, 감정이 행동과 균형을 이루는 사람이어야 한다. 예컨대 ‘결혼하고 싶어 미칠 것 같은 건 네가 처음이야’라고 하면서 결혼 얘기는 하지 않는다면 감정만 앞서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헤어져도 ‘역시 세상이 내 마음을 알아 주지 않는다’며 자기 연민에 빠진다. 외로운 사람일수록 말뿐인 말을 잘 믿지만, 지켜지지 않는 말만큼 큰 상처를 주는 건 없다. 여러 사람과 어울릴 때 상대의 모습도 검증해야 한다. 웃음 포인트가 너무 다르다는 건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나쁜 사람과 이미 사랑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한 번의 연애라면 인생의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나쁜 사람에게 빠져도 이내 발을 뺀다. 왜 늘 쓰레기만 만나게 되는지 고민하면서도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성장 환경 등 때문에 편안한 상황을 불편해 하고 나쁜 사람을 만나야 마음의 격정을 느끼는 경우다. 연애는 겉보기엔 로맨스가 전부인 것 같지만, 끊임없는 자기 인식 과정이다. 자기 안의 진짜 문제를 찾아 고치지 않으면 나쁜 사람에게서 영영 벗어날 수 없다.”
-운동이나 공부처럼 연애도 할수록 잘하게 되나.
“사람을 많이 만나 보는 것만으로 ‘연애 기술’이 늘진 않는다. 오히려 이상한 데이터만 쌓일 수 있다. 횟수보다 내용이 중요하다. 상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자기 한계를 발견하고 마음을 아낌없이 주고받은 연애였다면 다음 사랑을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경험은 소중하다. 차인 뒤 덕수궁 돌담길도 걸어 보고, 짝사랑에 실패도 해 봐야 한다. 첫 연애 상대와 결혼한 걸 자랑하는 사람도 있지만,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웃음).”
-사랑 콘텐츠는 넘치지만 ‘모태 솔로’가 느는 건 왜인가.
“모태 솔로라는 말 자체가 사회적 공격이다. 관계에 서툰 사람에게 자기를 탐색할 시간을 주고 응원하기는커녕 루저 취급하는 게 요즘 분위기다. 태생적으로 연애에 관심없다면 괜찮다. 청소년기에 느끼는 이성에 대한 감정을 자유롭게 발산하지 못해 사랑을 무서워하게 됐다면 문제다. 부모들은 자녀가 그런 감정을 느끼면 인생이 망한다고 위협하면서 죄책감을 심어 준다. 부모의 철저한 보호 덕분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30대 후반~40대 여성 중에 뒤늦게 사랑의 쓴맛을 보는 경우가 많다.”
-사랑에도 갑을 관계가 있나. 더 사랑하는 쪽이 을인가.
“건전한 관계라면 갑과 을의 위치가 수시로 바뀐다. 무수리 혹은 엄마처럼 일방적으로 챙겨 주는 ‘접대 사랑’이 문제다. 모성 신화가 애인 신화로 전이된 것 같다. 엄청나게 퍼 줌으로써 자기 가치를 증명하려 하는 사랑은 불행하다. 거꾸로 자기 매력을 활용해 상대의 감정과 노동을 착취하는 ‘기생 사랑’에 익숙한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연애하지 말았으면 한다. 연애는 편안하고 포근하기도 하지만, 불편하고 힘들기도 한 것이다. 일방적인 건 없다. 사랑은 공평해야 한다.”
-‘상대의 애를 태울수록 사랑이 오래 간다’는 속설은 진리인가.
“결국 연인 간 거리 조절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감정은 조금 생기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밀고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 자기 영역 개념이 확실한 사람, 주로 남성들이 힘들어한다. ‘네가 그렇게 의존적인 사람인지 몰랐어!’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지, 직장 동료야?’ 그런 충돌이 생긴다. 요즘 정서적으로 굶주려 있는 사람이 많다. 잉여 시간은 많지만 정작 자기를 돌아 볼 기회는 부족하니 허전해한다. 그러다 누가 나타나면 순식간에 불타오르고 금세 식는다. 몇 달 단위로 시간을 두고 상대 반응을 보면서 조금씩 다가가야 서로 행복하다.”
-연인이라면 SNS 계정, 휴대폰 비밀번호까지 공유해야 하나.
“그런 것에 관심 자체를 갖지 않는 게 답이다. 부부끼리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요구하지 않는 한 전화를 대신 받아도 안 된다. 사랑과 소유는 다르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적 영역을 소유할 수는 없다. 너와 나의 영역을 확실히 가르고 지켜 주는 게 건강한 관계다. 물론 비밀이 있는 건 다른 얘기다. 블라인드 친 각자의 영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
-남자친구가 피임에 무관심하다고 토로하는 여성이 꽤 있다.
“그런 남성과 무조건 헤어지는 게 답은 아니지만, 섹스는 하면 안 된다. 섹스는 사람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피임에 대해 이기적이면서 좋은 남자친구는 없다. 피임에 대한 합의 없는 섹스는 불공정한 사랑의 끝판왕이다. 상대의 ‘처분’에 맡길 게 아니라, 여성이 절대 주도권을 넘겨줘선 안 된다.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여성이 피임을 요구하면 ‘까졌다’고 공격받는 한심한 사회 분위기도 문제다.”
-스마트폰 소개팅 앱으로 시작하는 연애, 괜찮은가.
“소개팅 앱에는 더 많은 사람을 본 뒤 애인을 선택하려는 욕망이 깔려 있다. 선택의 가능성을 소비하면서 최상의 상대, 맞춤형 애인을 고르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택의 폭과 행복이 반드시 비례하진 않는다. 앱에서 상대의 내면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부분이다. 극도로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앱을 제작ㆍ운영하는 업체의 윤리 의식이 중요하다.”
-사랑은 언젠가 끝난다. 커플링, 사진, 선물 등 이별의 잔해 처리법은.
“유품처럼 애도하면서 차분하게 정리하자. 그 과정은 내 인생의 한 단계를 정리하는 것이자, 다음 연애를 준비하는 것이자, 다음 사람에게 갖추는 예의다. 의식을 치르면 마음을 잘 정리할 수 있다. 커플링, 사진 등은 이별 의식에 딱 맞는 제물이다. 커플링 같은 물질적 상징은 바로 없애는 게 좋다. 사진은 거기 담긴 ‘사랑의 추억’이 아닌 ‘나의 추억’이 소중하다면 당분간 보관해도 괜찮다. 물건들을 모아 굳이 돌려보내는 건 반대다.”
-데이트 폭력, 이별 폭력을 피하려면.
“폭력은 사실 징후가 있다. 살짝 밀거나 물건을 던지는 행동, 집착하는 성향이 결국 폭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첫 번째 신호를 넘기면 안 된다. 연인이라면 그런 얘기도 진지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언어 폭력도 폭력이다. 상대를 심리적으로 죽이는 것이다. 드라마에선 때리다가도 사랑하고 대개 두 번은 때리지 않는다. 현실은 다르다. 연애 초반 상대를 잘 관찰해야 한다. 다양한 공간에서 만나 보는 게 중요한 이유다. 자취방을 데이트 공간으로 삼는 건 위험하다. 상대를 제대로 알기 어렵고 상대가 안전한지 파악하기 전에 관계가 깊어진다. 상대의 가족, 친한 친구, 사는 곳 등 위급 상황 때 연락할 포인트를 알고 있어야 한다. 죽도록 사랑한다면, 상대가 정말로 반성한다면, 폭력을 휘두른 상대에게 한 번은 기회를 줄 수도 있다. 썩 좋은 선택은 아니다. 폭력성은 점점 커지게 마련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현지호(성균관대 경영학과 4)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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