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원가 보전율 너무 낮아
병원 운영비 100만원일 때
건보 수입 60만~80만원 그쳐”
정부, 원가 보전율 개념 사용 안해
의료기관들 원가 드러내기 꺼려
연구마다 수치 16%P씩 차이 나기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 구도에서 핵심 키워드는 저(低)수가다. 의료계는 원가의 60% 수준에 불과한 터무니 없이 낮은 수가부터 정상화 해야 한다는 오랜 숙원을 이 기회에 쏟아 내고 있다. 진료를 보면 볼수록 손해를 보니 비급여 진료를 통해서 겨우 손실을 메워왔는데, 비급여를 대거 급여로 전환하면 병원도, 건강보험도 파탄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도 저수가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나 수가가 저평가돼 있고, 얼마나 올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확한 원가 보전율 산정이 시급하지만 관련 연구 용역은 첫 발조차 떼지 못한 상황이다.
13일 보건당국과 의료계에 따르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행위 또는 치료재료 등의 가격, 즉 수가의 적고 많음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는 원가 보전율이다. 의료계는 이 보전율이 100%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이용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원가 보전율이 의원급은 60%, 상급종합병원은 80% 수준으로 추정된다”며 “보전율이 100%는 되어야 정상적인 의료기관 운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병원 운영비(원가)가 100만원일 때 건강보험 수가로 얻은 수입이 60만~80만원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건강보험 수가가 너무 낮다 보니 환자에게 비급여 의료행위를 해야만 병원 운영비를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이 의료계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급여를 급여화하겠다는 정책이 나오자 ‘저수가 문제부터 해결하라’며 반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가가 너무 낮다는 의료계 주장에 정부도 일정 부분 동의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수석ㆍ보좌관 회의에서 직접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면서 의료수가 체계도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라며 의료수가 인상 방침을 시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적정 수가가 얼마인지를 따져볼 수 있는 정부 차원의 통계가 없다는 점이다. 정통령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수가가 낮다는 주장에는 충분히 동의한다”면서도 “전체 의료기관의 평균 원가를 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원가 보전율이라는 개념을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원가를 구하려면 임대료, 의료기기 값은 물론 의료인들이 드러내기를 꺼리는 민감한 인건비 항목까지 다 알아야 하는데다 사실상 의료기관의 답변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해 한계가 있다. 또 상황이 천차만별이 다양한 병원들의 분포를 살릴 수 있는 표본을 뽑아내야 하는데 이 작업 역시 만만치 않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선임연구위원은 “병원에 협조 요청을 한 뒤 표본 기관을 뽑아서 원가 정보를 요청하는데, 민감한 정보이다 보니 협조를 받기가 어렵다”며 “특히 중소 규모 병원은 인건비나 재료비 파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산출된 원가 보전율은 연구자별로 결론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연세대 연구팀이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을 표본으로 추정한 원가 보전율은 의원 62.2%, 상급종합병원 84.2% 등 전체 평균이 69.6%였지만, 2013년 발표된 보사연의 평균 원가보전율은 85.9%(비급여 포함 시 106.0%)였다. 시기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16%포인트 넘게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특히 최근 문재인 케어에 반대하는 의료계 시위 현장에서 자주 인용되는 연세대 조사 결과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 많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원가 보전율의 핵심이자 가장 어려운 부분은 원가를 정확히 산정하는 작업인데, 대형 종합병원인 일산 병원의 원가 구조를 가져다 의원급에 적용해 보전율을 산출한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사연이 정부 의뢰를 받아 4~5년에 한번씩 실시하는 원가 보전율 조사는 병ㆍ의원 130여곳의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표본은 좀 더 많다. 보사연은 내년부터 본격적인 원가 보전율 조사에 착수하는 것을 목표로 의협 등과 접촉을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비상대책위원회가 투쟁에 나서면서 당분간은 원활한 협조를 받을 수 있을 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나마 좀 더 현실에 부합하는 원가 정보를 도출한 뒤 이를 참고해 저수가 개선에 나서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 하지만 이는 국민 부담 증가(건강보험료 인상)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와 동시에 의료계 역시 원가 절감 노력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보건행정학자는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마진율이 떨어지면 매출을 늘리려는 노력도 하지만, 동시에 인건비 등 원가 절감도 시도한다”며 “의료계가 원가는 건드릴 수 없는 상수(常數)로 두고서 수가, 즉 매출만 원가에 맞춰줄 것을 요구한다면 이는 비상식적”이라고 꼬집었다. 김윤 교수도 “더 나은 서비스로 환자를 더 받거나 시스템을 효율화해 원가를 절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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