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장막 피덕령 안반데기마을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수하리에서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를 넘는 고개 이름이 피덕령이고 그 고개마을이 ‘안반데기’다. 안반데기마을은 백두대간의 주 능선이다. 백복령을 넘은 능선이 닭목이재와 안반데기를 거쳐 고루포기산에서 대관령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오대산 설악산을 거치면 백두산까지 연결되니, 안반데기마을은 백두대간의 중간쯤 되지 않을까 싶다.
안반데기마을은 교과서에서 배운 ‘고위평탄면’과 비슷하다. ‘안반’이란 떡메를 칠 때 쓰는, 넓고 가운데가 오목한 떡판을 말하고 ‘덕’ 혹은 ‘데기’는 고원의 평평한 땅을 일컫는다. 고개 정상은 거대한 분화구마냥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평원이었다. 그 경사면에 나무는 드문드문 몇 그루만 서 있고, 땅은 텅 비어 있다. 초여름이면 환한 감자꽃이 흐드러지고, 배추의 청청함이 물결치는 고랭지 밭이다. 한겨울이면 산꼭대기에 조성한 드넓은 채소밭에 하얀 장막이 펼쳐진다. 온통 눈 세상이다. 설국(雪國)이다.
대관령면 수하리에서 ‘산골식당’을 운영하는 김금자ㆍ숙자 자매는 어릴 적 안반데기마을에서 살았다. 그들이 들려주는 안반데기마을은 이렇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은 산속에 흩어져 살던 화전민들을 한데 모아 고랭지 농사를 권유했다. 안반데기에 땅을 개간하면 집도 지어주고 공짜로 토지를 불하한다는 말에 부친은 일곱 남매를 이끌고 이곳으로 이주했다. 나무를 뽑고 땅을 갈아 감자며 옥수수며 이것저것 심었지만 농사는 생각만큼 되지 않았다. 터무니 없는 소출에 가을에 주워 모은 도토리로 끼니를 때워야 했고, 한겨울에는 나라에서 헬기로 떨궈 준 밀가루와 보리쌀로 연명해야 했다. 그래도 서로 땅을 개간하겠다며 싸움도 많았고, 살인까지 났다는 소문도 돌았다고 한다. 당시 금자씨는 지금은 폐교된 왕산초등학교 매지분교로 매일 30리를 걸었고, 취학 연령이 안된 숙자씨도 산골 생활이 심심해 언니를 따라 다녔다.
김씨 가족은 몇 년을 못 버티고 힘들게 개간한 안반데기를 버리고 내려오고 만다. 지금은 고랭지 채소밭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으니 아쉽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어요. 계속 있다가는 일곱 남매를 굶겨 죽일 판이었는데요." 김씨 가족에게 안반데기는 먹기 살기 위해 올랐던 곳이고, 또 그 때문에 버려야 했던 진한 추억의 땅이다.
안반데기 가는 길은 강릉과 평창에서 나 있다. 강릉에서는 영동고속도로 강릉IC~456번 지방도 대관령방면~성산에서 35번 국도로 정선방면~왕산교에서 410번 지방도를 이용해 안반데기(피덕령)마을로 진입하면 된다. 평창에서는 대관령IC에서 도암댐 방향으로 이동하다 안반데기마을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하늘도 세 평, 경북 봉화 승부마을
경북 봉화는 강원 태백과 붙어있다. 분천(봉화)~철암(태백)~도계(삼척)~동해는 영암선 기찻길로 연결돼 있다. 승부마을은 환상선 눈꽃열차와 협곡열차(V트레인)가 운행하는 분천과 철암 사이 첩첩 산중에 숨어 있다. ‘하늘도 세 평 땅도 세 평’이라고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열차를 이용해서는 마을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진짜 승부마을의 백미는 낙동강을 따라 걸어야 볼 수 있다. 승부마을로의 도보여행은 석포에서 시작한다. 겨울철에는 눈이 얼어붙어 마을주민이 아니면 차를 모는 것이 위험하다. 석포에서 약 10km 아래 첫 번째 다리 부근에 주차를 하고 걷는 것이 편하다. 길은 철길과 만났다가 멀어지고 계곡을 여러 차례 건넌다. 조급한 마음은 버리는 것이 좋다. 도보여행은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도 보고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재미다.
승부마을에 이르기까지는 결둔마을, 암기마을, 마무이마을 등을 지난다. 암기마을은 주변의 돌들이 아름다워 ‘기암’을 거꾸로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전한다. 승부마을은 이 길의 마지막 마을이다. 여기서 ‘승부가 갈렸다’ 하여 생긴 이름이란 말도 있다. 한자로는 ‘부자로 이어간다’라는 뜻이다.
승부마을에 사는 홍재남씨는 눈이 많이 오는 철이면 주민들과 함께 ‘겨울 농사’를 준비한다. 환상선 눈꽃열차 관광객을 상대로 마을에서 수확한 농작물과 음식을 판매한다. 연세 드신 어르신들은 농작물을 팔고, 젊은이들(쉰이 훨씬 넘으신 아주머니들)은 음식을 만든다.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은 가마솥에 끓인 시래깃국과 육개장이다. 모든 재료는 이 마을에서 생산한 ‘착한’ 먹거리다. 남자들은 숯불을 때서 돼지고기 꼬치나 양미리, 메추리 등을 굽는다. 고기가 두툼해 도시에서 흔히 먹는 꼬치와는 차원이 다르다. 주민들은 천직이 농사라 셈에 약하다. 몰려드는 관광객을 감당하기 힘들다. “만원이요. 이만원? 에잇 몰라, 그냥 만오천원 주세요.” 이런 식이다.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주말에는 아무데나 가야겠다’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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