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공항 영접부터
차관보급이 나와 관례 어겨
문 대통령 방중 첫날 저녁과
이튿날 아침ㆍ점심 ‘혼밥’ 거듭
출발 전부터 삐걱대던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이 폭행 사태라는 외교 참사로까지 이어졌다. 중국 측의 외교적 무례가 도를 넘어 국빈방문한 외국 지도자 면전에서 집단폭행을 저지른 것이다. 여기에는 연내 방중 성사를 목표로 일정을 무리하게 추진한 우리 정부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
외교적 무례 논란은 문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국빈 자격으로 방문한 문 대통령을 쿵쉬안유(孔鉉佑) 외교부 아시아 담당 부장조리가 영접했다. 우리로 치면 차관보급이다. 중국을 방문하는 각국 정상은 차관급(부부장) 인사가 영접하는 의전 관례에 어긋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국빈방문 했을 때는 장예쑤이(張業遂) 상무부부장이 맞이했다. 장 부부장은 쿵 부장조리보다 두 단계 높은 수석차관급이지만, 공산당 서열로는 외교부 내에서 가장 높은 인물로 사실상 외교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방문 때는 왕이(王毅) 외교부장(장관급)을 공항에 보냈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문 때는 양제츠(楊潔篪) 국무위원(부총리급)을 공항에 보냈다.
문 대통령이 사실상 ‘혼밥’을 거듭하는 등 알맹이 없는 정상외교 일정이 된 것도 논란 거리다. 문 대통령은 국빈 방문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방중 첫날 저녁과 이튿날 아침ㆍ점심 세 끼 모두를 사실상 비공식 일정으로 대신 했다. 통상 방문 첫날 저녁 이뤄지는 국빈만찬은 시진핑 주석 등 주요 지도자들이 난징대학살 80주년 추모식 참석을 위해 자리를 비우면서 일정이 미뤄졌다. 문 대통령은 13일 저녁을 댜오위타이에 마련된 숙소에서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14일 아침도 숙소 인근의 한 현지 식당에서 노영민 주중한국대사 부부와 함께했다. 청와대는 “중국 서민들의 아침 일상을 잠시나마 체험함으로써 마음으로 중국 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지만 비중 있는 일정이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점심도 특별한 일정 없이 넘겼다. 특히 국빈 방문의 관례로 여겨지는 총리 환영오찬도 리커창(李克强) 총리 측이 문 대통령과의 면담 일정을 늦은 오후로 잡으면서 무산됐다. 문 대통령이 중국 유력 인사와 함께하는 오찬은 16일로 예정된 천민얼(陳敏爾) 충칭시 서기와의 만남이 유일하다.
정부는 당초 계획했던 4박5일 일정을 하루 줄여가면서 홀대론을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다. 중국 국영 방송사인 중국중앙TV(CCTV)가 중국 순방을 하루 앞둔 문 대통령과 인터뷰를 하면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문제와 관련해 몰아세우듯 질문공세를 퍼부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CCTV는 특히 문 대통령의 발언을 자의적으로 편집해 방송에 내보내 사실상 문 대통령의 진의를 왜곡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연내 방중 성사를 목표로 무리하게 일정을 추진하면서 외교 실책을 자초한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 주재의 연례회의인 중앙경제공작회가 시작하는 18일 이후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그에 앞서 서둘러 방중을 성사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난징학살 80주년 추모일을 방중일로 잡았다는 것부터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이 외교관은 “지난번 한ㆍ중간 사드 합의 과정에서도 드러났지만 문제점의 연장선상”이라며 “(우리 국민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함이 앞서다 보면 아쉬운 사람이 굽히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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