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지구 생태계의 ‘침입종(Invader)’이라 규정한 제목이 강렬하다. 절대적 패권을 쥐고 있기에 지구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바로 우리 인류, 호모 사피엔스 자신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인류세(Anthropocene)’란 용어가 널리 퍼진 마당에 새삼스러운 얘긴 아니다. 다만 ‘침입종’이란 표현은, 뭔가 장엄한 역사적 냄새를 풍기는 ‘인류세’ 같은 말보다 우리 인류가, 말하자면 저수지의 황소개구리 같은 존재임을 명확하게 일러준다.
미국의 인류학자 팻 시프먼이 쓴 ‘침입종 인간’(푸른숲)은 5만년 전 탄생해 4만2,000년 전 퍼져나간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당대의 최상위 포식자 그룹 네안데르탈인, 동굴하이에나, 승냥이, 동굴곰, 유럽시미타고양이 등을 멸종시켰는지 추적한다. 인류는 새삼스러울 것 없이 원래부터 학살자였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네안데르탈인이었다. 발굴된 유물로 보면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훨씬 더 덩치도 크고 힘도 강했다. 언어도 쓰고 무리지서 사냥하는 협동에도 능했다. 그런 네안데르탈인이 왜 작고 힘없는 호모 사피엔스에게 당했을까. 가장 널리 알려진 가설은 빙하기의 도래다. 네안데르탈인은 거대종을 매복해서 사냥하는 방식을 택했기에 빙하기로 숲이 사라지자 꼼짝없이 굶어 죽었다.
시프먼은 여기에다 하나를 더한다. 인류와 개의 동맹이다. 늑대에서 개로 진화한 초기 개의 두개골을 찾아 3만2,000년 전이란 연대를 뽑아낸 2009년 벨기에 연구팀의 성과에서 힌트를 얻었다. 보통 가축화는 9,000년 전 수렵 생활이 농경 생활로 전환된 뒤 이뤄졌을 것이라 본다. 고기를 얻을 생각으로 가축을 길렀고, 그 다음 우유나 털 같은 부산물을 활용했다는 가설이다.
시프먼은 이 가설 자체를 의심한다. 수렵 채집 시절 이미 인류는 늑대와 동맹을 맺었다. 먹음직스러운 대형 포유류가 점차 사라져간, 혹독한 추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다. 개와 함께 사냥하면 20~100㎏ 짜리 거대 동물을 보다 손쉽게 잡을 수 있고 사냥 시간도 57%나 절약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동물의 가축화는 고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도구를 창조함으로써 인간이 자신이 가지지 못한 동물의 유용한 능력을 빌리는 데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인간과 늑대의 동맹은 늑대에게도 이롭다. 최상위 포식자의 지위를 두고 인류와 경쟁하다 다른 종들처럼 멸종당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인간과 동맹을 맺지 않되 멸종을 피하려면? 호모 사피엔스와 먹을 것을 두고 경쟁하지 않는 쪽으로 진화해야 한다. 판다가 고기맛을 아는 유전자를 버린 뒤 대나무 먹고 사는 이유다. 오래도록 살아남는 건 그래서 늘 짠하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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