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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자급자족 위해 지자체ㆍ시민이 뭉치다

입력
2017.12.18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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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크롬메니에 자전거 전용도로에 설치된 솔라로드에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있다. 오른쪽 짙은 부분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암스테르담=고경석 기자
네덜란드 크롬메니에 자전거 전용도로에 설치된 솔라로드에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있다. 오른쪽 짙은 부분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암스테르담=고경석 기자

“길이 70m, 폭 3.5m의 자전거도로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로 첫 1년간 9,800㎾h의 전력을 생산했습니다. 대략 세 가구가 1년간 쓸 수 있는 전기입니다.”

지난달 21일 세계 최초의 태양광 패널 자전거도로인 ‘솔라로드’가 설치된 네덜란드의 소도시 크롬메니에를 방문했다. 암스테르담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크롬메니에는 2014년 11월 솔라로드를 설치했다.

이 특별한 도로의 개발에 참여한 비영리 응용과학연구소 TNO의 시스템 설계자 스탄 클레르크스는 “네덜란드의 건물 지붕의 총 면적은 약 400㎢인데 도로 면적은 1,000㎢”라며 “전체 도로의 30%만 솔라로드로 전환해도 전기차 800만대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태양광 패널 성능이 향상되면 지역에서 쓰는 에너지 상당 부분을 인근 도로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네덜란드의 지방자치단체, 기업, 연구소 등이 힘을 모아 개발한 솔라로드는 스마트도로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파일럿 형식으로 설치한 실험용 도로여서 경제성과는 거리가 멀다. 1㎡당 설치비는 약 1,200달러(약 130만원) 수준이다. 예상 수명인 20년간 매년 1㎡에서 70㎾h의 전기를 생산한다고 할 때 1㎾h당 0.86달러를 쓰는 셈이다. 네덜란드의 통상적인 발전비용(0.05달러)보다 무려 17.2배 비싸다. 한여름에도 자전거 통행으로 그림자가 생기거나 나뭇잎, 흙 등 이물질이 표면을 덮어 발전 효율은 일반 태양광 패널의 50~70%에 그친다. 겨울에는 여름철 전력 생산량의 10% 안팎으로 효율이 뚝 떨어진다.

(왼쪽 사진) 비영리 응용과학연구소 TNO의 시스템 설계자 스탄 클레르크스는 "하루 종일 흐린 날에도 조금씩 태양광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암스테르담=고경석 기자 (오른쪽 사진) 2014년 네덜란드 크롬메니에 자전거 전용도로에 태양광 패널이 깔린 블록이 설치되고 있다.
(왼쪽 사진) 비영리 응용과학연구소 TNO의 시스템 설계자 스탄 클레르크스는 "하루 종일 흐린 날에도 조금씩 태양광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암스테르담=고경석 기자 (오른쪽 사진) 2014년 네덜란드 크롬메니에 자전거 전용도로에 태양광 패널이 깔린 블록이 설치되고 있다.

그럼에도 네덜란드가 이처럼 값비싼 실험을 하는 이유는 유럽연합(EU)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7% 이상으로 높이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40% 이상 줄이기로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네덜란드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5.9%에 그쳤는데 그 중 63%가 바이오매스(곡물과 식물, 폐목재, 동물의 분뇨 등 유기성 자원)이고 풍력은 24%, 태양광은 5.4%에 불과했다.

태양광 부문이 유독 부진했던 이유는 네덜란드의 산업적, 지리적 요인 때문이다. 키스 빌렘세 TNO 사업총괄이사는 “네덜란드는 전통적으로 가스ㆍ석유 산업 비중이 높았다”며 “최근 정부가 석탄화력발전소를 줄이고 풍력과 태양광 등 친환경에너지를 늘리려 하지만 국토가 넓지 않아 건물 지붕이나 일반 토지, 도로 등을 활용해 태양광발전 설비를 늘리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솔라로드가 설치된 곳은 네덜란드의 크롬메니에와 크로닝헨, 프랑스의 투루브르오페르쉬까지 3곳뿐이다. TNO의 클레르크스는 “태양광 패널의 가격이 점점 떨어지고 효율은 높아지고 있어서 당장은 솔라로드를 만드는 데 큰 비용이 들어가지만 경제성이 확보되는 때가 곧 올 것”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남부 상업지구 쥐다스 지역에 위치한 친환경 스마트빌딩 ‘디 에지’의 내부 전경. 이 곳엔 2만8,000여개의 센서가 설치돼 온도 습도 밝기 등을 조절한다. 암스테르담=고경석 기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남부 상업지구 쥐다스 지역에 위치한 친환경 스마트빌딩 ‘디 에지’의 내부 전경. 이 곳엔 2만8,000여개의 센서가 설치돼 온도 습도 밝기 등을 조절한다. 암스테르담=고경석 기자

스마트시티의 축소판, 스마트빌딩 ‘디 에지’

친환경에너지로 자급자족하는 스마트시티를 만들기 위한 시도는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암스테르담 남부 상업지구인 쥐다스 지역에 자리잡은 독특한 건물 ‘디 에지(The Edge)’도 그런 곳 중 하나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딜로이트의 사옥으로 쓰이는 ‘디 에지’는 지상 15층, 연면적 4만㎡(약 1만2,000평) 규모로 네덜란드에서 가장 스마트한 빌딩으로 꼽힌다.

디 에지는 1층부터 15층 천장까지 뻥 뚫린 중앙공간(아트리움)이 시원한 느낌을 줬다. 디 에지를 운영하고 있는 부동산 개발업체 OVG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에릭 우벨스는 “빌딩 지붕과 외벽, 인근 대학 지붕에 설치한 5,900㎡의 태양광 패널로 전기를 생산하는데 빌딩 전체가 필요한 에너지보다 2% 더 많은 양”이라고 설명했다.

냉난방은 전기나 가스를 사용하지 않고 물로 해결한다. 여름에 데워진 물을 2개의 관으로 지하 130m까지 이어지는 대수층(지하수를 품고 있는 지층)에 보내 열을 보관하고 있다가 겨울에 물을 끌어올려 난방에 쓰고, 겨울에 차가워진 물을 다시 여름철 냉방에 사용하는 순환 구조다. 대수층에 열을 보존했다가 끌어 쓰면서 냉난방 효율을 극대화하는 기술은 국내에서도 도입되고 있다. 인공으로 열을 축적하는 수조를 만들 경우 물의 용량에 한계가 있지만, 대수층을 활용하면 용량 걱정 없이 냉난방에 사용할 수 있다. 디 에지는 빗물도 재활용해 화장실 변기에 쓴다.

디 에지는 2만8,000여개의 센서로 연결돼 있는 스마트시티의 축소판이다. 사무실과 회의실, 주차장, 복도는 물론, 조명, 오디오ㆍ비디오, 커피 머신, 심지어 화장실 휴지걸이에도 센서가 설치돼 있다. 공간의 온도와 밝기, 습도 등의 환경, 기기 상태, 이용 빈도 등 각종 정보가 실시간으로 수집돼 중앙 서버에 전송된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를 분석해 조명과 냉난방을 포함한 건물 관리에 활용한다. 우벨스 CTO는 “사람들이 어떻게 빌딩을 사용하고 어디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며 “개인의 데이터는 익명성을 보장하고 절대 감시와 통제의 용도로 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디 에지의 입주사 직원은 스마트폰에 설치된 앱으로 빈 자리를 찾아 일하고 주변 온도와 조명을 최적의 상태로 조절해 능률을 높인다. 정해진 자리가 없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인 사무실 활용이 가능하다. 우벨스 CTO는 “주 입주사인 딜로이트의 경우 처음보다 직원 수가 2배로 늘었지만 책상 수는 그대로”라며 “예전처럼 고정된 자리에 앉아있다가 퇴근하는 사무실이 아니라 동료나 상사, 고객과 만나고 대화하는 장소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마트빌딩 디 에지는 야간 경비를 로봇이 맡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전 층을 다니며 건물을 지킨다. 야간에 출입하는 사람은 이 로봇에 신분확인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로봇이 바로 경찰에 위험 메시지를 송신한다. 암스테르담=고경석 기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마트빌딩 디 에지는 야간 경비를 로봇이 맡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전 층을 다니며 건물을 지킨다. 야간에 출입하는 사람은 이 로봇에 신분확인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로봇이 바로 경찰에 위험 메시지를 송신한다. 암스테르담=고경석 기자

“스마트시티를 만드는 것은 기술이 아닌 사람”

국토의 25%가 해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는 늘 홍수 등의 자연재해에 시달려왔다.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각자 축적한 데이터와 지식,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지속적인 혁신을 이뤄야 했다. 암스테르담이 유럽에서 일찍부터 스마트시티를 추진해온 이유도 여기 있다.

암스테르담의 스마트시티 구축을 이끄는 것은 시 당국과 시민, 학계, 기업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암스테르담 스마트 시티(ASC)’ 프로젝트다.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를 통한 전력수요관리, 탄소배출 감소,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2009년 시작했는데 점점 분야를 넓혀 현재 ▦자원순환 도시 ▦시민과 생활 ▦에너지ㆍ물ㆍ쓰레기 ▦도시관리와 교육 ▦인프라 및 기술 ▦교통 등 6개 분야에 걸쳐 200개가 넘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일례로 에너지ㆍ물ㆍ쓰레기 부문에선 주택 지붕의 태양광 패널로 만든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해 지역 주민끼리 사고 팔거나 공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전기차 배터리에 저장한 뒤 이를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또 자원순환 도시 부문에선 빗물을 사용해 맥주를 만드는 흥미로운 실험도 하고 있다.

이 같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다양한 형태의 리빙랩이다. 리빙랩은 ‘살아있는 실험실’이란 뜻으로 생활 현장에서 시민과 과학자, 기술자 등이 공동으로 혁신을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센서와 태양열 등을 이용해 도로 주차를 관리하는 스마트 시스템을 개발한 IoT리빙랩의 폴 맨워링 대표는 “리빙랩은 장소가 아닌 공동체로 스마트시티를 만드는 것은 기술이 아닌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시민의 참여가 없으면 기술은 무의미하다”며 “스마트시티에선 참여형 민주주의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암스테르담 스마트 시티(ASC)의 시민 참여 프로젝트 중 하나인 레인비어. 빗물을 재활용해 만든 맥주로 대학 강사이자 영화감독, 작가인 요리스 후버가 관련 업체들과 협업해 제작했다. 레인비어 제공
암스테르담 스마트 시티(ASC)의 시민 참여 프로젝트 중 하나인 레인비어. 빗물을 재활용해 만든 맥주로 대학 강사이자 영화감독, 작가인 요리스 후버가 관련 업체들과 협업해 제작했다. 레인비어 제공

암스테르담시는 시민들의 참여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ASC도 암스테르담시의 주도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이해 당사자들이 모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네트워크나 플랫폼 역할에 중점을 두고 있다. 코넬리아 딩카 ASC 선임연구원은 “우리 임무는 도시 운영과 관련한 여러 기관들, 시 당국, 기업 등을 시민들의 스마트한 아이디어와 연결해 해결책을 만드는 것”이라며 “더욱 많은 실험을 하고, 노하우와 시행착오를 공유해 더 나은 도시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암스테르담=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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