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피해 기자들 비난 뒤틀린 심리
방중결과 흠집 내는 것은 바로 그들
어려운 고차방정식 냉철하게 풀어야
강추위 뒤끝에 흰 눈발의 군무가 장엄하다. 여느 때라면 최승호 시인의 ‘대설주의보’라도 읊조리며 감상에 젖어들 만하지만, 영 그럴 기분이 아니다. 저 눈발처럼 인터넷 공간에서 어지럽게 춤추는 억측과 터무니없는 주장들이 떠올라서다.
문재인 대통령 중국 국빈방문 행사 취재 중 한국 사진기자들이 중국 경호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부상이 심하다. 이들은 국빈방문 동행 기자단의 풀 기자들이다. 자사가 아니라 한국 전체 언론을 대표해 취재 중이었다. 종종 대검찰청 포토라인 등에서 보는 아수라장 같은 취재 경쟁 상황이 아니었다. 그들이 열심히, 악착같이 뛴 결과물에 따라 보도의 질이 달라진다. 자기들 편의대로 취재를 가로막는 중국 경호원들에게 순순히 물러선다면 기자로서의 직업정신에도 맞지 않고, 결국 손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풀 기자들은 대통령 곁 3m까지 근접 취재가 허용되는 비표를 착용하고 있었고, 현장에 특별한 통제선도 없었다. 그런데도 중국 경호원들이 접근을 가로막았고, 이에 항의하자 집단으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이는 순전히 그들의 경호 임무 미숙이거나 편의주의, 또는 이들에 대한 지휘책임이 있는 중국 공안당국의 문제다. 어떤 경우에도 취재기자들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문명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야만적 행태이다.
명확하고 상식적인 이런 사리를 외면하고, 부당하게 폭행당한 기자들을 비난하고 갖은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이 있다. 더욱 이해 안 되는 것은 전후맥락을 쉽게 파악할 만한 인사들이 앞장선다는 점이다.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교수는 사실과 전혀 맞지 않는 주장 하에 한국기자들을 비꼬는 글을 SNS에 올렸다가 엉뚱한 변명과 함께 사과했다. 경찰서장을 지냈다는 한 퇴직 인사는 더 황당했다. 폭행당한 한국 취재기자들이 대통령의 중국 외교 성과를 망가뜨리고 국격을 훼손했다며 이 기자들의 소속 언론사에 사과와 기자 징계까지 요구했다.
피해자 중 한 사람인 고영권 기자가 본보 소속이라서 저런 행태에 대해 분개하는 게 결코 아니다. 그날 그 자리에 다른 어떤 언론사 소속 기자들이 풀 기자로 배치됐더라도 똑같은 사태가 벌어졌을 터이다. 입원 치료 중인 고 기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문 대통령 방중 결과에 악영향을 끼친 사진기자에 대해 피해자 아닌 가해자로 손해배상을 하게 해야 한다는 청원이 올라 있는 데 대해 참담해 했다. SNS와 웹 상에서 교묘하고 집요하게 ‘기레기’로 매도하며 언어적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의 말의 저주가 중국 경호원에 당한 것보다 더 힘들다고도 했다.
진짜로 문 대통령의 방중 성과를 훼손하고 국익을 해치는 사람들은 사실관계를 호도하고 부당하게 집단폭행을 당한 우리 기자들을 비난하는 바로 그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보장된 권한에 입각해 취재 활동을 벌이던 우리 기자들을 가로막고 폭력을 행사한 중국 경호원들의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만행이다. 중국 당국은 자신들의 국가 위신에 먹칠을 한 해당자들을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국경없는기자회(RSF)’ 에 따르면 중국의 세계언론자유지수는 180개국 중 꼴찌 수준인 176위다. 이런 수준으로 중국몽을 얘기하고 인류공동체의 운명 운운하는 게 우스꽝스럽다. 중국 정부가 이번 사태를 엄정하게 처리하도록 촉구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중국이 문명국으로 나아가는 것을 도와주는 일이다.
그런 바탕 위에서 비로소 한중관계도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이번 국빈방중과 한중 정상회담은 주한미군 사드 배치 문제로 크게 흔들린 한중관계를 안정시키는 과정이다. 미중 패권경쟁의 동아시아판 위에서 북한이 거칠게 핵무력 완성을 밀어붙이는 때에 한중관계를 재정립하고 안정을 꾀하는 것은 꼭 필요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진보-보수 진영 간 시각 차와 정권 담당 세력의 역량에 따라 수많은 논란과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 그럴수록 감정을 억누르고 냉철하게 난해한 고차방정식을 풀어가야 한다.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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