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역사적인 날에 여러분과 함께 기쁨을 나눕니다. 그리고 엎드리어 눈물로 감사의 인사를 올려드립니다. 사법형그룹홈인 ‘청소년회복지원시설’에 대해 2018년도부터 국가 차원에서의 예산지원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한 없이 기다려야 할 것만 같았던 예산지원 문제였는데, 이렇게 벼락 같이 처리되고 나니 예산 문제로 안달하던 제가 얼마나 작고 부족한 인간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위 글은 2017. 12. 6 아침에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중의 일부다. 하지만 문자를 보내고 나서 얼마 뒤에 예산 지원 소식이 오보였음을 알게 되었다. 잘못된 정보를 전달받고 너무도 기쁜 마음에 성급하게 소식을 알리려다 본의 아니게 오보를 전한 셈이 되었으니 송구하고 무참하여 무언가를 해보려는 의지마저 꺾인 채 무기력에 휩싸여 버렸다. 특히, 필자의 메시지를 바탕으로 잘못된 기사를 내게 된 두 기자 분에 대해서는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소년범의 대부’라 불리는 필자로서는 예산 지원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간절한 마음이 그만 어처구니없는 실수까지 저지르게 만든 것이라고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2010년 2월 필자는 예기치 못한 인사발령에 따라 창원지방법원으로 가서 ‘소년 사건’을 담당하게 되었다. 사건을 맡고 보니 비행청소년들이 처한 환경은 생각했던 것보다 참혹하고 열악하였다. 부모의 따듯한 보살핌 아래 성장해야 할 어린 소년들이 어른들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 거리를 떠돌다 비행 세계에 발을 담그고 그러다 잡혀와 소년재판에 맡겨지는 것이었다. 처분 이후에 재비행이 없기를 바랐지만 말 그대로 바람에 그치고 말 때가 많았다.
비행청소년들도 대한민국의 청소년이고, 보호받아야 할 아동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비행청소년들은 정치적 이용가치가 없기에 보수나 진보 진영 모두에게서 투명인간처럼 취급되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다시 재비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악순환을 두고 볼 수만은 없어 그들을 회복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으려고 여러 곳을 뛰어다녔다. '대안가정'과 '대안부모'가 해결방안이란 결론을 내리고 뜻있는 분들을 설득하여 ‘비행청소년 전용 그룹홈’인 ‘청소년회복센터’의 설립을 추진해가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많은 소년들이 상처를 치유 받았고, 부모와 사회와의 관계도 회복하였다. 무엇보다 재비행률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따듯한 돌봄이 낳은 작은 기적이었다. 그리고 19대 국회 회기 마지막 날인 2016년 5월 29일, ‘청소년복지지원법’의 개정으로 ‘청소년회복센터’가 ‘청소년회복지원시설’로서 공식적인 지위를 얻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지난 8년간의 성과는 아무런 조건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고, 때로는 필자를 대신하여 비난을 감수해 준 위대한 시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존재감도 없던 무명의 시골 판사 이야기를 기사를 통해 조금씩 세상에 알려주고, 그것을 밑거름으로 오늘의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준 언론사와 기자들의 도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했다. 그런데, 그릇된 정보로 그들을 황망케 만든 것도 모자라 오보까지 내게 했으니 이 허물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청소년회복센터와 관련해 최종적으로 남아 있는 과제가 국가적 차원에서의 예산 지원이다. 현재 청소년회복센터는 법원에서 지급되는 ‘교육비’와 소년사건의 ‘국선보조인 수당’과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겨우 운영되고 있다. 센터의 운영자들에 대한 급여는 지급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센터의 운영자들은 이른바 ‘열정페이’로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일본 독일뿐만 아니라 심지어 뉴질랜드와 비교해도 소년들에 대한 대우가 터무니없이 낮은 형편이다.
19대 국회 회기가 끝나갈 무렵 마지막 임시회의를 앞두고 청소년복지지원법 개정에 대해 반대하던 기획재정부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국가적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약속은 하였지만, 그래도 최종적으로 아동들을 보호해야 할 기관은 국가가 아니겠는가. 가정에서도 손을 놓고, 학교와 사회마저도 극도의 혐오감으로 소외시키고 있는 비행청소년들에 대하여 비행에서 벗어나게 해 줄 최소한의 도움조차 외면하는 국가가 있다면 그 국가는 자신의 중차대한 임무인 ‘정의’ 특히 ‘배분적 정의’의 실현을 태만히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또 개인이 국가를 대신하여 자금과 시간을 투입하여 비행청소년들의 재범 예방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범죄방지대책을 세워나가야 할 국가는 범죄 예방을 위해 걷은 세금을 쓰지 않고도 범죄 방지 효과를 고스란히 누리고 있으니 이중으로 이득을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부당한 상황은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되어야 한다. 이는 우리사회의 정의 실현에 있어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년범의 대부의 메시지가 허위가 아니라 사실이었다는 보도가 나오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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