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 그림책 ‘간질간질’(사계절 발행)을 어른의 시선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머리를 벅벅 긁었을 때 떨어져 나온 머리카락들은 또 다른 ‘나’가 되어 엄마 아빠를 괴롭히다가 우르르 바깥으로 나간다. 더 많이, 더 빠르게 증식한 ‘나’들은 흥을 주체 못하고 “오예”를 외치며 세상을 휩쓸고 다닌다는 게 ‘간질간질’의 줄거리다.
이 책은 2009년 그림책 ‘눈물 바다’로 데뷔한 서현 작가의 세 번째 작품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의 작품 중심에 놓이는 건 웃음이다. 슬픔에 빠진 아이가 밤새 울다가 눈물로 이뤄진 바다에 자신을 슬프게 한 것들을 쓸려 보낸다는 내용의 ‘눈물 바다’ 조차 유머를 그 아래 깔고 있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즐겁고 재미있게 표현하고 싶어요. 언젠가 죽음에 대한 얘기를 하더라도 어둡고 진지하게 보다는 웃으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박장대소보다 어이없는 상황에서 픽 터지는 웃음을 선호하는 서 작가는 어릴 때부터 만화광이었다. ‘도라에몽’부터 ‘슬램덩크’까지 가리는 것 없이 읽던 그가 그림책 작가를 꿈꾼 건 미국 동화작가 데이비드 위스너의 글 없는 그림책 ‘이상한 화요일’을 본 뒤부터다. “그때까지 그림책은 아이들 전용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화요일’을 본 후 그림이 글에 서툰 사람의 이해를 돕는 보조도구가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그림만으로도 만화나 영화 같은 전달력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안 뒤로 그림책 작가를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간질간질’에는 장마다 짧은 글들이 쓰여 있지만 글자의 역할은 그림에 가깝다. ‘간질간질 간질간질 머리가 간지러워 머리를 긁었더니’ ‘밖으로 밖으로 버스 타고 멀리멀리’ 등 운율이 느껴지는 글은 경쾌한 서체 디자인을 통해 그림의 일부가 된다. 글과 그림이 하나가 되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역시 웃음이다.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분신이 생기면 뭘 할 거냐’고 물어봐요. 대부분 시험공부나 숙제를 대신 시키겠다고 해요. 삶이 고단한 거죠. ‘간질간질’의 주인공에게 특별한 점이 있다면 분신들과 함께 오로지 즐거워하기만 한다는 거예요. 자신의 즐거움에 집중하는, 즐거움을 들여다볼 줄 아는 아이에요.”
온 세상에 흥을 뿌리고 다니는 아이는 작가의 분신이기도 하다. 그는 “눈물 많았던 내 어린 시절을 향해 재미있는 위로를 주고 싶었던 마음이 책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책을 아이들은 좋아하는데 어른들은 읽어줄 때 약간 난감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뚜렷한 메시지 없이 마냥 흥만 내니까요(웃음). 위로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웃음으로 위로하는 일 같아요. 독자들도 아이가 퍼뜨리는 즐거움을 함께 느끼면서 이 책을 즐겨주시면 좋겠어요.”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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