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돈세탁 등 3년 넘게 수사
정ㆍ재계 인사 160여명 유죄판결
회수 불법 자금만 12조 넘어
요즘 그의 사진이 새겨진 티셔츠는 12달러에 팔린다. 그의 얼굴로 분한 가면이 축제 현장을 누비고, 이름을 써넣은 스티커를 범퍼에 장착한 차들이 거리를 질주하는 장면도 낯설지 않다. 인기 연예인 얘기가 아니다. 2017년 브라질 국민은 성역 없는 수사를 외치며 헌정 사상 최대 권력형 비리를 파헤치는 열혈 판사, 세르지우 모루(45)에 열광했다.
대형사건의 경우 판사가 검사들과 함께 수사팀을 꾸리는 브라질에서 모루 판사는 이른바 ‘세차 작전’으로 명명된 ‘라바 자투(Lava Jatoㆍ고압 분사기)’ 수사를 2014년 3월부터 3년 넘게 이끄는 중이다. 차량의 묵은 때를 말끔히 벗겨 내는 분사기처럼 뇌물, 돈세탁 등 온갖 불법으로 얼룩진 브라질의 썩은 정치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가 투영된 작명이다.
세차 작전은 국영석유업체 페트로브라스가 계약 수주 대가로 오데브레시(OAS) 등 대형건설사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정황이 불거지면서 시작됐다. 지금까지 편법을 눈감아 주다 모루의 그물망에 걸려들어 유죄판결을 받은 정ㆍ재계 인사는 160여명. 미셰우 테메르를 비롯한 전ㆍ현직 대통령 4명도 부패의 덫을 비껴가지 못했다. 회수된 불법 자금만 120억달러(12조9,600억원)에 이른다.
출발은 미약했다. 모루는 브라질 남부 파라나주 쿠리치바시 연방법원의 판사였다.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이민자가 많아 중앙 정치권에서 거의 주목하지 않은 도시다. 무관심은 되레 호재가 됐다. 모루가 10년 동안 부패 권력을 향해 차근차근 날을 벼릴 시간을 제공한 것이다. 그는 1990년대 이탈리아 정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반(反)부패 수사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를 모델로 삼고 돈세탁 수법을 철저히 연구했다. 이후 모루의 지휘 아래 금융범죄 지식으로 무장한 연방검사 및 경찰들로 ‘드림팀’이 꾸려졌다. 스위스 은행들과 정보를 공유해 검은 비자금의 흐름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마침내 2014년 3월 브라질리아의 한 주유소에서 뇌물 스캔들의 연결고리를 입증할 단서가 포착됐다. 그해 5월 수사팀은 페트로브라스의 거물급 경영진을 기소하면서 사정 광풍의 서막을 열었다. 그리고 올해 7월 법원은 브라질 좌파 영웅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에게 뇌물수수죄를 물어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했다. “모루가 골든골을 터뜨렸다(월스트리트저널)”는 찬사가 쏟아졌다. 최후의 성역을 넘어섰다는 의미다.
의회는 수사팀 권한을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때마다 모루는 “공적인 부패를 까발리고 처벌하는 일은 치욕이 아닌 국가의 명예”라고 맞받아쳤다. 시민들도 그의 곁을 지켰다. 정치권의 압박이 거세지자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내가 모루이다”를 외쳤다.
모루는 내년 치러질 대선에서 유력 후보로 급부상한 상태이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룰라 전 대통령과 호감도 1, 2위를 다툴 만큼 국민의 신망은 엄청나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손사래를 친다. “내가 정치에 입문하면 수사 의도가 불순해진다.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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