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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가슴으로 쓴 편지]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된 날, 우린 행복해 울었지”

입력
2017.12.26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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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과 산책도 하고 수업도 하고

힘들어도 즐거워하던 너의 모습

아직도 소외받는 아이들 너무 많아

편견 없이 사랑을 나눌 수는 없을까

12월 달력의 붉은 활자 ‘12월 20일 대통령선거일’이 지난 한 해를 떠올리게 한다. 뜨거웠던 촛불 광장이 열어젖힌 2017년은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초유의 탄핵결정으로 역사의 기록으로 남게 됐다. 급속한 변화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박 전 대통령은 구속되고(3월 31일), 세월호는 1,073일만에 물 밖으로 나왔다(3월 23일). 5월 9일 장미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최대 표차로 당선되자 곧 비정규직 제로와 탈원전 시대를 선언하고 적폐청산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정권 교체만으로 한국인의 일상이 모두 달라질 수는 없다. 청년들은 여전히 취업난에 신음하고 헬조선을 부르짖는다. 여성혐오 문제는 더 복잡한 이슈로 확산됐다.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장애아 학부모들은 무릎을 꿇어야 했다. 양극화는 심화하는 중이고 우리 사회의 포용력은 늘 시험대에 오른다. 살충제 계란, 포항 지진 등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고와 재난 역시 이어진다.

열망했고 행복했고 좌절했던 2017년을 보내며 우리의 이웃 평범한 시민들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편지를 띄운다. 편지를 쓰는 이, 받는 이는 어쩌면 우리 모두일 수 있다. 또 한 걸음 나아갈 2018년 새해를 고대하며 한국일보 기획취재부가 7편의 편지를 30일자까지 연재한다.

희귀질환인 할러포르덴-스파츠를 앓다가 올 여름 하늘나라로 떠난 조현준 군과 엄마 이정은(왼쪽)씨. 학교에서 열어준 깜짝 생일파티에서 모자가 환하게 웃고 있다. 웅천초 제공
희귀질환인 할러포르덴-스파츠를 앓다가 올 여름 하늘나라로 떠난 조현준 군과 엄마 이정은(왼쪽)씨. 학교에서 열어준 깜짝 생일파티에서 모자가 환하게 웃고 있다. 웅천초 제공

나를 진정한 어른이 되게 해준 고마운 아들에게

현준아~. 우리 곁을 떠나간 지도 벌써 다섯 달이 지나가는구나. 장애라는 편견도, 몸의 고통과 통증도 없는 그곳 천국에서 잘 지내고 있지? 유난히도 학교와 교회를 좋아하며 행복해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2년이란 병원생활 속에서 수술과 죽을 고비도 여러 번 잘 참고 견뎌주었어. 넌 강직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어 목에 케뉼라를 삽입하고, 입으로 전혀 음식을 먹지 못해 유동식을 주입하는 뱃줄을 단 채로 퇴원했지. 온 몸의 강직이 심해 팔다리가 틀려 늘 힘들었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병과 싸우고 이겨내며 잘 버텨 주었어.

그러면서도 넌 학교를 늘 그리워했어. 우린 정말 어렵게 특수학급이 있는 학교를 찾았지만, 도저히 학교를 다닐 수 없을 것 같은 모습 때문이었을까. 휠체어에 몸을 싣고 목엔 케뉼라를 단 채 입학상담을 갔을 때 놀라던 선생님의 표정. 그 표정 앞에서 거절 당할까 봐 얼마나 두려웠는지 몰라.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숨기며 꼭 다니게 해 주고픈 절실한 심정을 호소했지. 이것이 기적인 걸까. 감사하게도 널 받아준 학교,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된 첫날 아들의 모습. 기쁘고 좋아서 함박웃음 지으며 집에 와서도 감추지 못하던 행복한 모습. 그때 우리 가족 너무 모두 행복해 울었지.

장애란 벽이 널 막아도 항상 밝고 적극적이며 특수학급 동생들과 산책도 하고 학급 친구들과 수업을 통해 장구도 치고 공놀이도 하며, 힘들어 하면서도 열심히 하던 모습. 한번은 놀이터에서 선생님 도움을 받아 3단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 모두를 놀라게 했던 일들. 학교행사인 ‘행복맞이’ 날에 전교생이 널 위해 깜짝선물로 생일파티를 해주었던 일. 그렇게 아들이 행복해 하며 호탕하게 웃던 모습. 그날은 장애 학생도 비장애 학생도 편견 없이 그저 같은 학교 같은 학급 친구들로 함께 즐거워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 아직도 엄마는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있어.

그런 시간들 덕분인지 물 한모금 마시지 못했던 넌 죽을 먹기 시작했고 점점 양이 늘어나면서 부드러운 음식들까지, 심지어 물컵으로 혼자 물을 마시며 삐뚤지만 글도 적어 다들 놀라게 했지. 널 이렇게 변하게 해준 학교생활에 엄마도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행복했단다.

또 선생님과 학교운동장, 놀이터에서 텃밭을 가꾸고 물총놀이를 하며 행복해하던 모습. 한번은 수업시간이 길어 힘들어 하는 아들 모습이 안타까워 쉬게 해 주고픈 선생님과 땀을 흘리면서도 끝까지 수업을 하려는 아들이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인 적도 있었지. 끝내 아들이 이겼지만 엄마는 마음이 아팠어. 하지만 이런 우리 아들이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대견했지. 역시 내 아들 조. 현. 준.

웅천초 텃밭에서 깻잎을 따고 있는 조현준 군과 엄마 이정은씨. 웅천초 제공
웅천초 텃밭에서 깻잎을 따고 있는 조현준 군과 엄마 이정은씨. 웅천초 제공

그러고 보니 학교는 널 성장시켜 주었을 뿐 아니라 행복한 추억을 선물해 준 곳이구나. 아직도 선생님과 친구들은 널 기억하며 이야기한단다. 아들~. 엄마는 작은 소원이 생겼어. 언론 보도를 통해 지역주민들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무척 아팠어. 아들은 저 하늘 천국으로 떠났지만, 아들처럼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맘 편히 다닐 수 있는 특수학교가 많이 설립되었으면 좋겠어. 아직도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그저 불편한 몸과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소외 당하는 아이들이 너무도 많아. 비장애인과 똑같이 행동할 수는 없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한 걸음씩만 양보하면 우리 현준이처럼 몸과 마음에 많은 아픔을 가진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유를 찾고 행복을 느끼며 학교에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엄마는 장애가 있는 친구들이 현준이처럼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그 사랑을 함께 나누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해.

현준아. 너는 우리 가족에게도 많은 선물을 주고 갔어. 조용할 날 없이 긴박하고 힘든 시간들이 많았지만 많은 추억을 안겨줬고 우릴 늘 웃게 해주었지. 서로 사랑하게 해주었고, 가족의 의미도 알게 해준 우리 아들. 엄마에게도 사랑하는 방법과 미성숙했던 자아를 발견하게 했고, 자존심과 욕심을 버리게 해준, 편견의 무서움도 알게 해준 고마운 아들.

늘 밝고 웃음이 많았던 아들 현준아. 보고싶단 말보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욱 그립다. 남겨진 우리 가족 더욱 씩씩하고 행복하게 사랑을 나누며 열심히 살게. 하늘나라 그곳에서 꼭 응원해 줄 거지? 늘 지켜봐 줘. 많이 사랑했고, 더욱 더 사랑한다.

-아들을 너무나 사랑해서 행복한 엄마 이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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