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서초동 들썩였던 2년 수사재판 종지부
정운호 징역 3년 6월ㆍ이동찬 징역 8년 확정
최유정 변호사ㆍ김수천 부장판사 파기환송
홍만표 징역 2년ㆍ롯데 신영자에게도 불똥
전관예우 판검사비리 고액수임 ‘민낯’ 그대로
상상 못할 액수의 수임료, 대법원장의 대국민 사과까지 불러온 현직 부장판사의 뇌물수수, 전관예우와 그로 인한 사법불신 심화, 서초동의 ‘악의 축’ 법조브로커까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최유정 변호사의 팔목을 비튼 작은 ‘폭행사건’은 나비효과처럼 커져 지난해 법조계에 큰 후폭풍을 가져왔으며, 지난 22일 대법원 선고로 주요 인물들의 재판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법조비리 종합세트’로 불린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됐던 핵심인물들의 2년 간의 재판 결과를 정리했다.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징역 5년→징역 3년6월→3년6월 확정
원정도박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수감 중이던 정운호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석방을 위해 ‘올인’했다. 사업 확장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자유의 몸’이 돼야 했던 그는 보석석방 또는 집행유예 판결을 위해 수십억 원 수임료도 아끼지 않았다. 법원 내 인맥을 과시한 최유정 변호사에게는 착수금으로 20억원을 건넸고, 석방되면 성공보수로 30억원을 더 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선고 받은 징역 8월 형기를 불과 두 달 앞둔 지난해 4월 자신의 서초동 로비 행각이 낱낱이 밝혀지면서 원정도박 재판에서 풀려날 궁리를 하던 정 전 대표는 다시 실형을 받고 수감생활을 잇게 됐다.
앞서 정 전 대표는 이 사건이 불거지기 전부터 사업확장 과정에서 전방위 금품 로비를 벌여 수사선상에 올라 있었다. 2010년에는 네이처리퍼블릭의 서울지하철 상가 운영권 인수와 관련해 공무원 로비자금으로 거액을 건넸고, 롯데면세점 입점을 위해 롯데 경영진에게도 뒷돈을 건네려 한 혐의도 받았다.
정 전 대표는 현직 부장판사와 검찰 수사관에게 직접 ‘구명로비’를 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김수천 부장판사에게 자신이 연루된 원정도박 사건과 민사소송에서 유리한 결과가 나오게 해달라며 차량과 현금 등 억대 금품을 건넸고, 자신이 고소한 사건을 잘 봐달라며 검찰 수사관에게 2억5,000만원을 건넸다. 결국 그는 몇 달 일찍 감방에서 나오려다가 뇌물공여에 거액의 횡령 혐의까지 더해져 3년 6개월을 더 살아야 했다.
1심은 정 전 대표에게 적용된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고, 2심은 3년 6월로 감형됐다. 2심 재판부는 “정 전 대표는 자수성가해 상당 규모의 기업을 키운 사업가지만 그 과정에서 회사와 개인을 구별하지 못한 채 법인 자금을 함부로 유용하고 법을 경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질타했다. 이 판결은 지난 22일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최유정 변호사
징역6년→징역6년→파기환송
법원에서 부장판사로 근무하다 변호사로 개업한 최유정 변호사는 수감 중이던 피고인들에게 ‘전관’ 지위를 이용해 법원에 로비해주겠다며 100억원대 부당 수임료를 받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잘 나가던 부장판사가 퇴임 후 법정에 서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정운호 전 대표는 해외원정 도박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항소한 상태였다. 최 변호사는 정 전 대표를 서울구치소 접견실에서 만나 “친분관계가 있는 재판부에 사건이 배당되도록 하고 항소심에서 보석으로 나갈 수 있게 해 주겠다”며 착수금 20억원과 성공보수 30억원 등 50억원을 받았다.
최 변호사는 투자사기 사건으로 1심 재판 중이던 송창수 이숨투자자문 대표에게 재판부와의 친분을 내세우며 “집행유예를 받게 해 주겠다”며 20억원을 받기도 했다. 송 대표가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 되자 최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재판부에 부탁해 보석으로 석방해 주겠다”며 10억원을 추가로 받고, 회사에 대한 검찰 수사 무마 명목으로 20억원을 챙기는 등 모두 50억원을 받았다.
법원은 최 변호사에 대해 “재판부와 교제하거나 청탁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의뢰인들에게 심어줘 상상할 수 없는 거액의 금원을 받았다”며 징역 6년과 추징금 45억원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도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고 추징금만 43억여원으로 감액했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수임료 65억원을 신고하지 않아 세금 6억원을 누락해 유죄가 나온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 무죄로 판단하고 사건을 다시 재판하라고 돌려보냈지만, 핵심 혐의인 변호사법 위반 혐의는 그대로 인정했다. 최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최고 수위 징계인 제명을 당해 최소 5년간 변호사 활동을 하지 못한다.
▦악질 법조브로커 이동찬
징역 8년 확정
‘정운호 게이트’의 문을 세상에 처음 열게 된 인물은 최 변호사와 함께 일했던 법조브로커 이동찬씨다. 최유정 변호사와 의뢰인 정운호 전 대표가 서울구치소 접견실에서 성공보수 반환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던 상황에서, 최 변호사가 자리를 뜨기 위해 일어서자 정 전 대표가 최 변호사의 팔목을 잡았다. 이 사건은 이씨가 “정운호가 최 변호사를 폭행했다”며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하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이로 인해 최 변호사의 100억원대 수임료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이씨는 2015년 재판을 받고 있던 송창수 이숨투자자문 대표에게 접근해 부장판사 출신인 최유정 변호사의 경력을 앞세워 “재판부에 로비를 해주겠다”며 최 변호사와 함께 거액의 돈을 챙겼다. 1ㆍ2심 재판부는 “형사사법 절차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게 훼손됐다”며 이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이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고 추징금 25억원을 명령했다.
▦김수천 부장판사
징역7년→징역5년→파기환송
‘정운호 게이트’에 판사가 연루됐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더했다. 현직 중견판사의 직무 관련 범죄로 지난해 9월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은 대국민 사과까지 해야 했다. 김수천 부장판사는 2015년 2월 정 전 대표로부터 시가 5,000만원 상당의 레인지로버 차량과 현금 1억원 가량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네이처리퍼블릭 ‘가짜 수딩젤’ 제조ㆍ유통 사건의 피고인들을 엄벌해 달라는 게 정운호 전 대표의 청탁이었다.
김 부장판사는 2013년 7월 자신의 딸이 네이처리퍼블릭 후원 미인대회에서 1위로 입상한 것을 계기로 정 전 대표와 친분을 맺었고, 이후 정 전 대표 등과 함께 베트남 여행을 다녀온 사실도 드러났다.
1심은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김 부장판사가 정 전 대표 측으로부터 사건을 잘 해결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금품을 받은 혐의에 대해 뇌물죄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형량이 낮은 알선수재를 적용해 징역 5년을 선고해 논란을 빚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항소심이 적용한 알선수재 혐의 대신 뇌물죄를 적용하는 게 맞다며 다시 재판하라고 결정했다. 파기환송심에서 뇌물죄가 인정되면 김 부장판사의 형량은 더 무거워질 가능성이 있다.
▦홍만표 변호사
징역3년→ 징역2년 → 징역2년 확정
정운호 전 대표 수사는 그를 변호했던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 변호사에게로 번졌다. 홍 변호사는 현직 때 ‘특수통’ 검사로 이름을 날린데다, 퇴임 후 가장 돈을 많이 벌어들인 변호사로 알려져 법조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2015년 정운호 전 대표의 해외 원정도박 사건을 맡아 구속과 횡령 등 수사확대를 막아준다며 3억원을 받은 뒤 수사정보를 빼내고 수사상황에 따라 허위진술 변론계획을 짜는 등 친정인 검찰을 상대로 ‘구명로비’를 한 혐의를 받았다. 2011년에는 정 전 대표로부터 “사업에 차질이 생겼으니 해결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공무원 청탁 명목으로 2억원을 수수한 혐의도 받았다. 수임내역 미신고나 축소신고 등으로 세금 13억여원을 포탈한 혐의도 함께 받았다.
1심은 홍 변호사의 혐의 모두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에 추징금 5억원을 선고했다. 2심은 정 전 대표의 상습도박 수사무마 청탁 관련 혐의에 대해 “3억원을 청탁 명목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해 징역 2년과 추징금 2억원으로 감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이 옳다며 그대로 확정했다. 홍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최고 수위 징계인 제명을 당해 형기를 마치더라도 최소 5년 간 변호사 활동을 못하게 됐다.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징역3년→징역2년→파기환송
정운호 전 대표 수사는 재벌그룹으로도 불똥이 튀었다. 검찰 조사결과 롯데그룹 오너일가인 신영자 이사장이 롯데면세점 내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위치를 목 좋은 곳으로 옮기거나 유지해주는 대가로 정운호 전 대표로부터 수억 원을 챙긴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신 이사장은 정 전 대표 이외에 롯데백화점ㆍ면세점 입점 편의 대가로 여러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1심은 “롯데백화점ㆍ면세점 매장 입점 업체 선정 과정의 공정성과 적정성, 이를 향한 사회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징역 3년을 선했다. 2심은 일부 혐의를 무죄로 판단해 징역 2년으로 감형했지만, 대법원은 무죄 부분을 다시 유죄 취지로 봐야 한다며 사건을 돌려보내 형량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