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스 대신 LPG 탱크 설치
‘도둑 목욕’ 막으려 비상구 차단
2층엔 직원도 한 명으로 줄여
건물 옆에 설치한 LPG 저장탱크, 안에서 잠긴 2층 비상구 등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노블 휘트니스스파 화재 진압과 대피를 늦춘 요인들이 대부분 비용 절감과 관련돼 있다. 건물 매입 자금 상당 부분을 은행 대출로 충당한 건물주 이모(53)씨의 무리한 비용 절감 노력이 제천 화재 참사 인명 피해를 키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화재가 난 헬스클럽을 이용했던 회원과 직원들에 따르면 올 8월 경매로 감정가(52억원)의 절반도 안 되는 21억원에 건물을 낙찰 받은 이씨는 매입 자금 대부분을 대출로 충당한 탓에 비용 지출에 민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직원 A씨는 “매입한 건물이 하자도 많고 고장이 잦아지자 (건물주가) 이런 건물을 왜 낙찰을 받았는지 후회된다고 말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소방구조대의 내부 진입을 늦춘 2톤짜리 LPG탱크(화재 건물 2m 옆 설치)는 비용 절감의 대표적 사례다. LPG의 경우, 가스공급업체와 일정 기간 계약하면 업체 쪽에서 가스탱크와 배관 등의 시설을 무료로 설치해주기 때문에 굳이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도시가스 배관을 설치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제천 시내 식당과 숙박업소 등 대부분 영업소에서 이와 같은 이유로 LPG를 사용하고 있었다. 화재 현장 주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B씨는 “도시가스를 사용하려 했는데 설치비용이 너무 비싸서 500㎏짜리 LPG탱크를 쓰고 있다. 설치도 무료로 해줘 도시가스보다 가스비가 20% 정도 절감된다”며 “화재 건물도 그런 이유로 LPG를 설치해 사우나 물을 데웠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가장 많은 사망자(20명)가 발생한 2층 사우나 비상구가 잠긴 이유가 ‘도둑 목욕’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헬스클럽 직원 C씨는 “(건물주가) ‘다른 층 직원이나 세신사들이 (쉬는날) 비상구로 몰래 잠깐 들어와 목욕을 하는 것 같으니 여기를 좀 막든지 해야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며 “비상구 안쪽 문이 잠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증언이 사실이면 직원들이 무료로 사우나를 이용하지 못하게 건물주가 비상구를 잠가놨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발사 등 직원 3명이 손님들을 비상구로 안내한 3층(사망자 없음)과 달리 2층 사우나는 손님을 대피시킬 직원이 한 명 밖에 없었던 이유도 주목된다. C씨는 “2층 사우나 매점 아주머니(직원)가 건물주하고 언쟁하다가 2주 전에 해고 당했다”며 “평소라면 사우나 안엔 (비상구를 안내할 수 있는) 아주머니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점직원 해고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급여 문제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화재 당일 1층 주차장에서 공사를 했던 관리과장 김모(51)씨와 관리부장 김모(66)씨가 공사를 끝낸 후 지하 1층에서 감봉 문제를 논의했던 사실도 주목된다. 이들 가족 측은 “1층에서 작업을 마치고 지하로 내려가 최근 (건물주의) 감봉 조치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타는 냄새를 맡자마자 위로 올라와 소화기로 불을 끄려 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제천=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