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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가슴으로 쓴 편지] “세월호 후 남겨진 우리, 함께 웃고 울어요”

입력
2017.12.27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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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진실 밝히고, 피해구제법 개정해

시연이∙관홍씨 하늘에서 다시 만날 때

“우리 숙제 다 했다” 말할 수 있기를

세월호 희생자 김시연양의 어머니 윤경희(가운데)씨가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2기 특조위 구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세월호가족협의회 제공
세월호 희생자 김시연양의 어머니 윤경희(가운데)씨가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2기 특조위 구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세월호가족협의회 제공

다은이, 라은이, 효, 세 아이의 엄마이자 고(故) 김관홍 잠수사의 부인으로 익숙한 혜연씨.

처음 장례식장에 갔을 때 그저 옆에 있어주고 싶었어요. 어리게만 봤던 라은이가 효를 보며 울지 말라고, 그럼 엄마도 운다고, 엄마 힘들다고…, 일곱 살 동생을 챙기던 열 살도 안 된 어린아이가 저를 더 잡은 듯해요. 관홍씨 떠나기 전날 전시회에 라은이와 효를 데리고 왔었어요. 관홍씨가 우리 세월호 엄마아빠들과 같이 저녁 먹자고 했는데 다른 약속으로 그러지 못했어요. 그게 아직도 미안하고 가슴 아파요.

나는 아직도 관홍씨가 떠난 것이, 우리 시연이가 떠난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우리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김관홍 잠수사의 부인으로, 시연이 엄마로 어디서든 부르면 가야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화도 해야 하고, 가끔은 웃어도 줘야 하고…. 내가 지금 여기에 왜 있는거지? 왜 이런 말들을 듣고 있는 거지? 화도 났다가 서럽기도 하다가 그랬어요. 그런데 그런 분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세상 모든 것을 원망만 하며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혜연씨, 난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어요. 이 세상에서 내 딸 시연이가 가장 불쌍하고 참담하게 떠나갔다고 생각했어요. 2014년 여름 국회에서 처음 노숙을 시작했을 때 정말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주었는데 다 의심스러워 말을 섞지 않고 피했어요. 한낮 땡볕 아래 노란색 배를 접어 국회 앞마당에 꽂고 있는데 어느 여자분이 다가와 말을 건네는 거예요. 내게 대구지하철 참사를 아느냐고 물었어요. 자기는 거기서 살아남은 생존자라며, 하는 일이 사진 찍는 일이라 우리가 이렇게 싸우고 있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러 왔다고 했어요. 그때부터인 것 같아요, 내 마음이 열린 것이. 내가 다른 재난재해참사의 피해자들과 함께 하기 시작한 것이.

시연이를 잃고 나서 세상을 보니 참 억울한 사람들이 많더군요. 그들 옆에 함께 하는 활동가와 시민은 더 많았구요.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아이들이 서울시청 앞에 천막치고 농성하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왜 저기 있는 거야?”하고 물었을 때 “해주면 안 되는데 해달라고 떼쓰는 사람들이야”라고 말하던 저였어요. 그랬던 내가 시연이를 잃고 나서는 함께 해달라고, 도와 달라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호소했어요. 너무 부끄러웠어요. 내가 진즉 이 세상을 좀 더 알았더라면, 주변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살았더라면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내 딸 시연이를 잃지 않았을 텐데, 나 스스로를 원망하고 또 원망했어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고 김관홍 잠수사의 세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아내 김혜연(맨 오른쪽)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고 김관홍 잠수사의 세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아내 김혜연(맨 오른쪽)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관홍씨와 함께 준비했었던 세월호피해구제지원법 개정안이 아직도 처리되지 못하고 묶여있어요. 관홍씨는 무엇보다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고 국가가 하지 못한 일을 대신한 국민들을 국가가 돌봐야 한다고 말해왔어요. 민간잠수사와 자원봉사자처럼 희생한 분들을 비롯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피해를 입은 모든 국민들을 국가가 보살펴야 하는 건 당연한 것이니까요. 하루빨리 법이 고쳐지기를 바라요.

정권이 바뀌었으니 다 잘 될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제대로 되는 것이 없어요. 지난달 24일 드디어 사회적 참사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어요. 1기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난 다 기억나는데 그 사람들은 왜 다 모른다고 하지?”라며 울먹이던 관홍씨가 반가워하겠죠? 관홍씨가 부탁한 ‘뒷일’은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정부는 왜 구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관홍씨와 같은 민간잠수사들을 왜 버렸는지를 밝혀내고 책임을 묻는 것이겠죠. 나는 시연이와 관홍씨가 남겨준 숙제를 끝까지 해내고 싶어요. 그래서 세월호 엄마아빠들과 선체조사위원회를 만들었고 2기 특조위를 만들고 있어요.

고 김관홍 잠수사의 아내 김혜연씨가 삼남매와 함께 국회를 찾은 날 첫째 다은양과 국회 본회의장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김혜연씨 제공
고 김관홍 잠수사의 아내 김혜연씨가 삼남매와 함께 국회를 찾은 날 첫째 다은양과 국회 본회의장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김혜연씨 제공

혜연씨도 다은이, 라은이, 효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더욱 굳게 마음먹기를 바라요. 내가 늘 함께 할게요. 저 하늘에서 관홍씨의 넉살에 시연이와 아이들이 꺄르르 웃으며 서로 장난치는 상상을 해봐요. 남겨진 우리도 늘 함께 웃고 때로는 함께 울어요. 그러다보면 어느덧 기쁘게 관홍씨와 시연이를 만날 날이 올 거예요. “우리 숙제 다 하고 왔어요~^^” 하며.

-깨박이 시연이 엄마 윤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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