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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

입력
2018.01.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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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대문로 한국일보에서 김민정(왼쪽부터) 박상순 손택수 시인이 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를 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서울 남대문로 한국일보에서 김민정(왼쪽부터) 박상순 손택수 시인이 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를 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응모작들 가운데 본심으로 올린 것은 총 다섯 사람의 원고였다. 심사를 맡은 세 사람은 일찌감치 그들 중에 둘의 손을 놓고, 남은 셋을 머리에 이고 진 채 논의를 이어나갔다.

‘유리창의 전개’외 4편을 응모한 조주안은 구사하는 문장에 있어 숙련된 대장장이 같았다. "나는 유리창에 보고 싶은 것을 그리면서/ 종교가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유리창을 종교로 품고 자라난 날들을 통해/ 작은 돌에도 믿음이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라고 시의 서두를 장식할 줄도 안다. 다만 이런저런 사유들을 유기적으로 엮어낼 때의 뒷심이 아쉬웠다. 뚝뚝 끊겨 읽히는 피로. 어깨에 옴팍 준 힘부터 빼야 할 것이다. 양은경의 ‘지구만 한 노래, B면’ 외 4편은 구조적으로 아주 잘 짜인 시들의 묶음이었다. 뼈대는 단단했고, 그에 붙은 살은 너무 기름지지도 너무 담백하지도 아니하였다. 특히나 ‘모과의 내부’가 좋았다.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개성 있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유일하게 이 시뿐이었다. 모창이 아닌, 영향의 영향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일단 자신감의 회복이 급급할 터였다.

우리는 이원하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외 4편을 만장일치로 꼽았다. ‘여전히 슬픈 날이야, 오죽하면 신발에 달팽이가 붙을까’란 시에서도 느낀 거지만, 거두절미하고 읽게 만드는 직진성의 시였다. 노래처럼 흐를 줄 아는 시였다. 특유의 리듬감으로 춤을 추게도 하는 시였다. 도통 눈치란 걸 볼 줄 모르는 천진 속의 시였다. 근육질의 단문으로, 할 말은 다 하고 보는 시였다. 무엇보다 '내'가 있는 시였다. 시라는 고정관념을 발로 차는 시였다. 시라는 그 어떤 강박 속에 도통 웅크려본 적이 없는 시였다. 어쨌거나 읽는 이들을 환히 웃게 하는 시였다. 웃는 우리로 하여금 저마다 예쁜 얼굴을 가져보게도 만드는 시였다. 그 어떤 이견 없이 심사위원 모두의 의견이 한데 모아진 데서 오는 즐거운 불안 말고는 아낄 박수와 격려가 없는 시였다. 앞으로 '제주에 사는 웃기고 이상한 사람'의 유쾌한 행보를 설렘으로 좇아볼 예정이다. 건필을 빈다.

박상순・손택수・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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