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운명을 인지하고 사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류는 순간을 영원처럼 살았던 영웅 이야기를 남겨놓았다. 메소포타미아(오늘날 이라크) 지역에서 진흙으로 만든 토판 문서에 쐐기문자로 적은 문헌들이 발굴되기 시작하였다. 가장 오래된 토판 문서는 기원전 3,300년경이다. 인류 최초의 도시는 ‘우룩(Uruk)’이다. ‘우룩’이란 도시를 창건한 전설적인 왕이 있다. 길가메시다. 길가메시에 관한 이야기는 영웅 서사시의 효시다. 길가메시는 수메르어로 ‘노인’(길가)이 ‘청년’(메시)이 되었다는 의미다. 길가메시의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이 죽음을 육체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이 서사시의 첫 부분에서 길가메시와 그의 동료인 엔키두에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명성’이다. 짧은 인생을 사는 인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생존하는 것은 바로 ‘명성’이다.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백향나무 숲을 지키는 훔바바, 하늘의 황소 구갈라나를 살해한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여신인 이슈타르까지 무시하고 욕보인다. 이들의 명성에 대한 집착이 오만이 되어 신들은 길가메시의 제2의 자아인 엔키두를 죽게 만든다.
이 서사시의 후반부는 이제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는 여정이다. 길가메시는 지하세계의 대홍수에서 살아남아 아내와 함께 영원히 살고 있는 우트나피슈팀을 만나러 지하세계로 내려간다. 우여곡절 끝에 우트나피슈팀을 만나 영생의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한다. 그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잠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 후, 일주일 동안 잠을 자지 않는다면 영생의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약속한다. 길가메시는 몸이 너무 피곤하여 일주일 내내 잠을 자고 만다. 잠도 이길 수 없는데 영생을 추구하는 자신이 안쓰러웠다. 그러나 우트나피슈팀의 아내는 길가메시를 불쌍히 여겨 먹기만 하면 영원히 살 수 있는 불로초가 있는 장소를 알려준다. 그 불로초는 페르시아 만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 길가메시는 뱃사공 우르샤나비와 함께 페르시아 만 가장 깊은 곳으로 가, 마치 해녀처럼 발에 돌을 매고 바다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 드디어 불로초를 채취한다.
길가메시는 이 불로초를 봇짐에 넣고 자신이 왕으로 치리(治理)하는 우룩으로 돌아간다. 자신이 늙으면, 그때 불로초를 먹을 참이다. 우룩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 더웠다. 그는 시원한 시냇물로 들어가 잠시 목욕을 한다. 옷과 불로초가 든 봇짐을 냇가에 남겨둔 채로. 봇짐에서 흘러나오는 불로초 향기를 맡은 동물이 있었다. 바로 뱀이다. 뱀은 불로초를 다 먹어버리고 껍데기만 남기도 사라졌다. 목욕을 마치고 올라온 길가메시는 뱀 껍데기를 보고 울부짖는다. “나는 이 모든 수고를 뱀을 위해 했구나!” 한 순간의 더위도 참지 못하고 불로초를 방치한 자신의 모습에 실망한다. 그러나 그는 깨닫는다. 자신이 추구해야 할 것은 영생이 아니라 자신이 명성과 업적을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삶의 태도라는 것을 깨닫는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첫 구절엔 이 교훈이 담겨있다. ‘샤 나끄바 임무루 이쉬티 마티.’ 이 아카드어 문장을 직역하면 이렇다. “나라의 기초인 심연(나끄바)을 본 자”다. 왜 신-레케-우닌니는 ‘심연(深淵)’을 나라의 기초라고 정의했을까? ‘심연을 본다’는 행위는 무슨 뜻인가? ‘나끄바’라는 아카드어 단어는 축자적으로는 ‘페르시아 만 가장 깊은 곳’인 ‘심연’을 의미한다. 길가메시가 인류 최초의 도시인 우룩을 건설하고 ‘왕권’ 제도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을 “나라의 기초인 심연을 보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심연’이란 자신의 최선인 천재성이 발견되는 수련의 장소다. 길가메시가 영생을 찾으러 우트나피슈팀을 찾아가는 지하세계 여행을 감행하지 않았거나, 불로초를 발견하자마자 먹어버렸다면, 그의 이름은 후대에 영원히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길가메시는 목숨을 담보한 지하세계 여행을 통해, 자신이 치리하는 우룩의 왕으로, 그리고 길가메시라는 한 인간으로 자신의 고유한 임무를 발견하였다. 그 임무가 바로 ‘심연’이다.
길가메시는 자신의 인생여정을 제1토판 9행에 다음과 같이 덤덤하게 요약한다. “그는 먼 길을 떠나, 지쳤지만, 평안을 얻었다.” 그는 평안을 얻기 위해 해야 할 두 가지를 조언한다. 첫 번째로, “먼 길을 떠나십시오.” 여기서 먼 길이란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이나 습관을 벗어나는 용기다. 나는 주위의 평가나 과거의 습관에 얽매여 있지 않은지, 자신을 점검하는 행위다. 지금 여기는 내게 주어진 영원의 순간이다. 지금에 몰입하기 위해서 나는 과거라는 허상을 버려야 한다. 두 번째, “지쳐야 한다.” ‘지친다’는 의미는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반드시 따라오는 통과의례다.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을 시도하고, 자신의 최선을 가름하는 행위는 지치지만 거룩하다. 그러면, 역설적이게 세 번째 단계인 ‘평안’으로 진입한다. 나는 최선을 다해 2018년을 살 것인가? 나는 나의 천재성을 발견했는가? 고되지만 최선을 지향하는 오늘의 삶은 곧 평안으로 이어질 것이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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