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내외 현관서 영접
나눔의집-청와대 오갈 때
경찰 에스코트에 구급차도 배치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나 한일 정부 간 12·28 위안부합의가 '잘못된 합의'였다며 고개를 숙였다. 비록 전임 박근혜 정부 시절 체결된 것이지만 한일 정부간에 체결된 합의라는 점에서 '대통령으로서' 공식 사과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이날 낮 청와대로 위안부피해 할머니 여덟 분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였다. 지난달 외교부 태스크포스가 '12·28 위안부합의'는 할머니들의 의견이 배제된 채 이뤄졌다고 발표한 뒤 할머니들을 먼저 위로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판단에 따라 마련된 오찬이었다.
문 대통령은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청와대 본관 현관 입구에 서서 경기도 광주의 위안부피해 할머니 지원 시설인 '나눔의 집'을 출발해 도착한 할머니들을 일일이 반갑게 맞이했다. 개별적으로 이동해 뒤늦게 청와대에 온 할머니가 도착할 때까지 15분간 현관에서 선 채로 기다리기도 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저희 어머니가 91세이신데 제가 대통령이 된 뒤로 잘 뵙지 못하고 있다"며 "오늘 할머니들을 뵈니 꼭 제 어머니를 뵙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할머니들을 전체적으로 청와대에 모시는 게 꿈이었는데 오늘 드디어 한 자리에 모시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전임 정권에서 이뤄진 '12·28 위안부합의'를 두고 "할머니들의 뜻에 어긋나는 합의를 해서 죄송하다"며 "대통령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위안부피해 할머니들은 "가슴이 후련하다"며 문 대통령의 사과를 반기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2015년 12월 28일 합의 이후 매일 체한 것처럼 답답하고 한스러웠는데 대통령이 합의가 잘못됐다는 것을 조목조목 밝혀줘서 가슴이 후련하고 고마워 펑펑 울었다"고 밝혔다. 이 할머니는 "(일본의) 공식사과와 법적 배상을 26년이나 외쳐왔고 꼭 싸워서 해결하고 싶다"며 "대통령이 여러 가지로 애쓰는데 부담드리는 것 같지만 이 문제는 해결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이)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하는데 소녀상이 무서우면 사죄하면 된다"면서 "국민이 피해자 가족이고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면 세계평화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때 국빈 만찬에 초대받았던 이 할머니는 "내 나이 90에 청와대 근처에도 못 와봤는데 문 대통령이 당선되고 두 번이나 청와대에 들어왔다"고도 이야기했다. 이옥선 할머니는 "대통령이 바뀌고 할 말을 다해주니 감사하고 이제 마음 놓고 살게 됐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어린아이를 끌어다 총질, 칼질, 매질하고 죽게까지 해놓고 지금 와서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말이 되나"라면서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사죄만 받게 해달라. 대통령과 정부를 믿는다"고 호소했다.
13살 때 평양에서 끌려갔던 길원옥 할머니는 인사말 대신 '한 많은 대동강'을 불렀고 지난해 자신이 직접 노래를 불러 발매한 음반인 '길원옥의 평화'를 문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김 여사는 할머니들에게 목도리를 직접 매줬다. 목도리는 아시아 빈곤 여성들이 생산한 친환경 의류와 생활용품을 공정한 가격에 거래해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국내 최초의 공정무역 패션 브랜드 제품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대통령과 사진을 찍는 게 가장 하고 싶었다'고 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은 문 대통령은 오찬이 끝나고 김 여사와 함께 할머니 한 분 한 분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청와대는 이날 할머니들이 '나눔의 집'과 청와대를 왕복하는 길에 비서실 의전 차량을 제공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경찰의 에스코트 아래 국빈 이동 때와 같은 최고의 예우를 갖춰 모셨다"면서 "건강상 불편 사항에 대비해 차량 이동 때 앰뷸런스까지 배차했다"고 전했다.
오찬에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공동대표와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단체인 정의기억재단의 지은희 이사장,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등도 배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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