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세포 연구의 대부
교세포 비정상적 증식 등 밝혀내
퇴행성 신경 장애 등 열쇠 풀어
자신의 연구내용 조건없이 공유도
뇌와 척수 등 신경조직은, 크게 나눠, 뉴런이라 불리는 신경세포와 뉴런을 감싸고 있는 신경교세포(neuroglia cell, 신경아교세포)로 구성된다. 과학이 최근 100년간 주목해온 건 당연히 뉴런이었다. 뉴런은 전기ㆍ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며 감각, 운동, 사고 등 복잡한 인지ㆍ생명활동을 담당한다. 뉴런보다 10배 가량 세포 수가 많은 신경교세포는, 아교라는 이름처럼, 뉴런을 붙잡아주는 지지대 혹은 산소나 영양을 공급하는 보조역 정도로 홀대 당했다.
그런데, 뉴런과 신경교세포(줄여서 교세포, glia)가 주종관계가 아닌 대등한 협력관계라는 사실이 10여 년 전 밝혀졌다. 교세포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저마다 기능이 달라 뉴런 확장과 정보처리 속도ㆍ효율 증강, 뇌 면역을 포함한 신경활동 전반에 필수적인 기능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였다. 알츠하이머 병이나 파킨슨 병, 다발성 경화증, 루게릭 병 등 다양한 난치ㆍ불치 신경 퇴행성 질병들과 ‘만성’이나 ‘신경성’이라고 얼버무려야 했던 “원인 모를” 통증들도 교세포 이상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그렇게 알게 됐다.
2005년 2월 ‘셀(Cell)’ 논문을 통해 성상교세포(astrocyte)의 뉴런 형성 비밀을 처음 밝힌 게 미국 스탠퍼드 의대 신경생물학부 벤 베어리스(Ben Barres, 벤 바레스)와 그의 연구진들이었다. 이후 베어리스랩(lab)은 잇따른 획기적인 교세포 관련 논문들로 뇌 신경학 연구의 새 장을 앞장서 개척해왔다. 이제 뇌 신경과학자들은 벤 베어리스를 ‘교세포의 대부(The Godfather of Glia)’라 부른다. 1990년대 초 박사후연구원이던 베어리스를 3년간 지도했던 런던대(UCL) ‘래프 연구소’ 소장 마틴 래프(Martin Raff, 1938~) 교수는 “교세포 분야에서 베어리스랩을 빼면, 그 분야 자체가 아예 없다고 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med.stanford.edu)
하지만 그의 이름이 학계 바깥으로 알려진 건 2006년 7월 그가 ‘네이처’에 ‘젠더가 문제라고? Does gender matter?’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발표한 뒤부터였다. 하버드대 총장이던 로런스 서머스(Lawrence H. Summers, 1954~)의 성차별 발언에 맹공을 퍼부은 글이었다. 하버드대 최연소 정교수 타이틀 보유자로, 대통령 경제자문위원과 클린턴 행정부의 재무장관 등을 역임한 경제학자 서머스는 2005년 1월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개최한 과학ㆍ공학 분야의 다양성 토론회에서 여성 과학자 및 종신교수가 턱없이 적은 이유를 ‘선천적인 젠더 차이’ 즉 “타고난 생물학적 적성(innate aptitude)의 차이 때문”이라고 말해 파란을 일으켰다. 레베카 솔닛은 책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김명남 번역, 창비)에서 서머스 재임 중 하버드대가 여성을 종신 교수로 채용한 비율이 이전 36%에서 13%로 떨어졌다는 가디언 보도를 인용했다.
솔닛은 저 책에서, 베어리스를 성차별의 증언자로 호명했다. 그는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나 94년 성전환수술로 남성이 된 트랜스젠더 과학자였다. 베어리스는 저 에세이에서 여성으로서 교육 받고 연구자로 살아온 시절과 성전환 이후 겪은 바를 대비하며 자신의 성차별 경험을 폭로했고, 그것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학계를 포함 사회 전반의 고질이라는 점을 다양한 연구 데이터로 고발했다. ‘여자가 무슨 과학이냐’며 MIT 진학을 만류했다는 고교 담임교사 이야기, MIT 생명공학부 시절 남성 동급생들이 못 푼 수학 문제를 베어리스가 풀자 교수가 칭찬은커녕 ‘남자 친구가 대신 풀어준 것 아니냐’며 커닝이라도 한 듯 대하더라는 이야기, 하버드대 박사과정에 있을 때 고급 논문(high impact) 6편을 발표한 자기를 제치고 단 한 편을 쓴 남자 동료가 펠로십에 뽑혔다는 사실도 썼다. 심지어 지원서를 읽은 학장이 베어리스에게 ‘당신이 훨씬 빼어나다’고 말했다는 사실도 함께. (그 남성 경쟁자는 1년여 만에 펠로십을 그만뒀다고 베어리스는 훗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베어리스는 미국의 4~18세 청소년 2만 명의 수학 성적을 조사한 결과 유의미한 젠더 차이가 없었다는 데이터, 여성과 소수자가 연구비를 타기 위해서는 남자보다 2.5배의 연구실적이 필요하더라는 조사자료, 전년 미 국립보건원(NIH)의 혁신과학자상(Pioneer Award) 심사위원 64명 중 60명이 남성이었고 수상자 9명 전원이 남성이었다는 사실, 서머스를 편든 하버드대 정치학자 하비 맨스필드(Harvey Mansfield, 1932~) 등이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감정적(덜 이성적)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서는, 분노에 의한 폭력 범죄를 저지르는 건 여성보다 남성이 25배나 많다는 데이터를 들어 반박했다.
이른바 ‘서머스 가설’을 둘러싼 공방은 서머스의 발언 직후부터 트위터 등을 통해 뜨겁게 전개됐다. 아이오와주립대의 저명 정신의학자 낸시 앤드리어슨(Nancy Andreasen)은 인터뷰를 통해 학술지에 논문을 보낼 때 풀 네임 대신 이니셜(N.C. Andreasen)로만 쓰면 수록 확률이 훨씬 높아지더라는 경험담과 함께, “미국 국가과학자상(NMS)을 수상한 지금도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가 자주 있다”고 말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김명남 번역, 사이언스북스)를 쓴 하버드대의 스타 인지심리학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1954~)도 서머스를 편들었다. 그는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을 전제한 뒤 “다양한 실험들이 보여주듯, 평균적으로, 여성은 수학적 계산과 언어능력 등에서 남성보다 뛰어나고, 남성은 공간지각능력과 수학적 추론 면에서 앞선다.(…) 내 분야인 언어발달 연구분야에서 여성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기계공학 분야에선 남성들이 약진하는 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서머스의 발언을 성차별로 공격하는 건) 공정성(fairness)과 동일성(sameness)를 혼동한 결과다”라고 말했다.(WP, 2006.7.13) 논쟁이 격해지면서 핑커는 “베어리스는 과학을 오프라쇼(science to Oprah) 수준으로 격하시킨다”고 비난했고, 맨스필드는 그를 “정치적 얼뜨기(political fruitcake)”라고 조롱했다.(NYT, 2006.7.18) 영국 캠브리지대 분자생물학자 피터 로런스(Peter Lawrence)는 “과학분야를 포함해 모든 일터에서 같은 수의 남성과 여성이 일하게 되는 그런 어느 맑은 날”은 “유토피아의 꿈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베어리스 등은 ‘스티븐 제이 굴드 가설’, 즉 저 주장들이 말하는 천성(nature)의 차이란 교육ㆍ양육(nurture)의 차이일 뿐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베어리스는 “아시아 여학생들의 수학 성적이 왜 미국 남학생들보다 나은가? 당신들 말처럼 그것도 천성의 차이인가?”라고 반문했고, 하버드대 발달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스펠크(Elizabeth Spelke, 1949~)는 “통계로만 본다면, 19세기 과학계에 중국인이나 인디언 얼굴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은 수학적 재능 면에서 유럽인의 유전자가 아시아인의 유전자보다 훨씬 탁월하다고 말할 것인가? 왜 노벨상 수상자 대다수가 남성인지 함께 생각해보자. 그건 중세 피렌체의 위대한 과학자들이 모두 기독교신자인 것과 같은 이유다”라고 말했다. 서머스는 2006년 총장 직을 사임했다.
#경제학자 서머스와 설전 유명
“女과학자 적은 건 선천적”에 발끈
성차별 경험 바탕 조목조목 반박
연구자 다양성을 위해 평생 헌신
벤 베어리스는 1954년 9월 13일 뉴저지 웨스트오렌지 시에서 3녀 1남의 장녀 바버라(Barbara)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세일즈맨이었고, 가족은 가난했다. 이란성 쌍둥이 바버라는 인형보다 함께 태어난 동생 도널드(Donald)의 장난감과 옷을 더 좋아했고 할로윈 때도 군인이나 미식축구 선수로 분장하곤 했다고 한다.(WP, 2017.12.30) 과학을 좋아해서 공공도서관에서 현미경과 실험장비들을 만지며 자랐고, 고교 시절에는 수학 천재로 불렸다. 교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갓 여학생을 받기 시작하던 MIT에 진학해 생명공학을 전공했고, 79년 다트머스대 의대에서 박사학위(M.D)를 받았다. 웨일 코넬대 의대 신경과 클리닉에서 인턴ㆍ레지던트 과정을 이수하면서 다양한 퇴행성 신경증에 무력한 의료 현실에 눈을 뜬 뒤, 그 숙제를 풀고자 83년 하버드의대 신경학 대학원 과정을 시작했다. 환자 뇌조직의 손상 부위 주변에 교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현상을 처음 관찰한 것도 레지던트 시절이었다. 가족 구성원 중 유일하게 그만 대학에 진학한 건, 그가 탁월해서이기도 했지만 가난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는 밤에는 진료의로 일하며 대학원 연구를 병행, 1990년에야 박사학위(PhD)를 땄다. 당시로선 교세포 분리 증식 분야에서 앞서 있던 런던대 래프연구소에서 3년간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했고, 93년 스탠퍼드대 신경생물학과 조교수가 되면서 귀국해 98년 부교수 2001년 정교수가 됐다. 래프는 런던 시절 “베어리스는 놀랍고도 혁명적인 성과들을 잇달아 내놓곤 했다.(…) 내 연구실에서 바닥에서 잠을 자기 일쑤여서 내가 출근해서 문을 열다가 그의 머리를 찧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WP, 위 기사) 교세포의 일종으로, 뉴런의 긴 줄기(축색돌기)를 전선 피막처럼 감싸 전기 신호가 바깥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아주는 일종의 절연체(미엘린, myeline)를 구성하는 희소돌기교세포(oligodendrocyte)의 메커니즘을 규명한 게 런던 시절 베어리스의 대표적 업적이었다.(Stanford, 위 자료) 스탠퍼드에서 그와 연구진은, 성상교세포가 뉴런 생성(2005년)및 시냅스 기능 활성화(2009년)에 결정적인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성상교세포와 미세교세포(microglia)의 면역기능 이상이 만성 통증 및 다양한 퇴행성 신경장애 유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최초로 규명(2017년)했다. 베어리스는 그 해 인터뷰에서 “퇴행성 신경장애 및 질병의 매커니즘을 확인한 것이 우리 연구소 최대 업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건 레지던트 시절 가졌던 의문과 연구자로 진로를 바꾸며 꾸던 꿈의 문을 찾은 데 대한 개인적 소회이기도 했을 것이다.
#41세에 ‘바버라’서 ‘벤’으로
유방암 발병 후 성전환 수술 받아
그동안 여성 연구자로 겪은 일들이
성차별이란 사실을 뒤늦게 깨달아
1996년, 41세의 ‘바버라’는 어머니의 사인(死因)이기도 했던 유방암 진단을 받고 양쪽 유방절제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스탠퍼드대 젠더 클리닉에서 호르몬요법과 함께 외과적 성전환수술을 받고 42세의 ‘벤’이 되었다. 목소리가 굵어졌고, 수염이 나기 시작했고, 머리도 벗겨졌다. 그는 남성이 된 뒤에야 비로소, 과거 자신이 겪은 여러 부당한 일들이 성차별이었다는 걸 깨달았노라고, 그 전까지는 “나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성차별인 줄도 몰랐다”고 2006년 NYT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수술을 받고 얼마 뒤 자신의 수업을 들은 누가 다른 사람과 대화하며 “벤의 오늘 세미나 대단했어. 역시 누이(‘바버라’시절의 벤)보다 훨씬 나은걸” 하더라는 이야기,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트랜스젠더란 걸 알기 전과 후에 달라지더라는 이야기, 그래도 이제는 남자에게 중간에 말을 끊기지 않고 끝까지 말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 등도 2006년 에세이에 썼다. 그는 “역사를 보더라도, 집단에 대한 차별과 소외의 원인을 타고난 열등성에서 찾는 모든 시도는 쓰레기 과학(junk science)과 편협(intolerance)의 소산일 뿐”이라고, “인종이나 종교, 젠더, 성 지향을 근거로 학생의 우열을 평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언어폭력”이라고 썼다. 심한 안면인식장애(prosopagnosia)를 앓아 목소리나 헤어스타일로 사람을 식별해야 했던 그는, 물론 무척 불편하기야 했겠지만, 외모로도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시간을 쪼개 가며 젠더 관련 다양한 학회 등 행사 초청에 성실히 응했다. 남성 동성애자였던 그는 제자ㆍ동료들과 함께 게이ㆍ트랜스젠더 행사도 일삼아 찾아 다녔다. 그런 잦은, 도드라진 ‘외도’가 학자로서의 커리어나 연구실적 평가에 해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그 자신도 했다지만, 그는 2011년 미국고등과학협회(AAAS) 펠로에 뽑혔고 2013년 트랜스젠더 과학자로선 최초로 미국과학아카데미(NAS) 회원이 됐다. 연구자로서 상대적으로 짧았고 또 예외적으로 다망했던 시간을 살면서, 그는 167편의 학술논문(peer-reviewed)을 발표했다.
하버드 의대 신경학과 교수 베스 스티븐스(Beth Stevens, 1969~)는 2004~2008년 베어리스랩에서 성상ㆍ미세교세포 면역기능 연구를 주도한 연구자였다. 그가 하버드대에 자리를 얻어 옮기게 되자 베어리스가 베스에게 그 연구를 하버드로 가져가서 계속하라고 권하며 “너보다 그걸 더 잘 해낼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자기 연구소 아이템을 후배 연구자에게 떼어주는 예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앞서 베어리스는 자신이 찾아낸 교세포를 종류별로 배양하는 독자적이고 효율적인 기법을 연구자 일반과 조건 없이 공유하기도 했다.
그의 후임으로 스탠퍼드대 신경생물학과장을 맡은 앤드루 허버먼(Andrew Huberman)은 저 모든 그의 미덕을 ‘과학의 열정’이란 말로 압축했다. “그의 모든 열정은 오롯이 과학을 향해 있었다.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고, 과학 안에서 더불어 성장하게 하는 것을 그는 소명이라 여겼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베어리스랩의 연구진 15~20명은 다양성의 모범적인 표본 같았고, 여성이 남성보다 많을 때도 많았다고 한다. 스티븐스는 “그렇게 즐겁고 창조적으로 다이내믹한 연구소는 없을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말했다.
베어리스는 2016년 4월 췌장암 진단을 받고 20개월 투병 끝에 지난 해 12월 27일 별세했다. 향년 63세. 스탠퍼드대는 부고 자료에서 투병 말기의 베어리스가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든 반드시 해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매달린 것이 제자 및 연구원들의 추천서를 쓰는 일이었다고 전했다. 그렇게 분화한 연구자들이 하버드와 듀크대, 뉴욕대를 비롯, 해외 각지로 퍼져 각자 교세포와 씨름하고 있다. 2017년 1월 스탠퍼드대가 개최한 헌정 심포지엄은 드물게 성대했다고 한다. 그 행사는 물론 학술대회였지만, 연구자로서, 교육자로서, 반차별ㆍ다양성 옹호 활동가로서의 스승이자 동지였던 베어리스의 정신과 업적을 기린 자리이기도 했다. 스탠퍼드대 신임 총장 마크 테시에 라빈(Mark Tessier-Lavigne)은 기조 발언에서 30년 동안 쌓아온 베어리스와의 우정과 그의 헌신, 용기를 회고화며 “우리가 그처럼 낡은 생각에 도전하는 용기와, 차이를 포용하며 서로에게 배우려는 자세를 유지하는 한 우리의 잠재력은 무한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벤이 가르쳐 준) 다양성의 힘이다”라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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