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주인들이 하룻밤 사이에 1억원을 올려서 내놓기도 하는데 그마저도 매물이 없어요. 수요는 꾸준하기 때문에 결국 호가가 시세가 되는 거죠.”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매봉역 인근의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최근 강남 집값 상승 분위기에 대해 ‘미쳤다’는 말로 대신했다. 10년 넘게 강남에서 중개업소를 해왔지만 부동산 시장 비수기인 연초에 이렇게 집값이 뛰는 것을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매물 품귀 현상 때문에 이 같은 분위기가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쏟아낸 각종 부동산 규제가 무색하게도 연초부터 서울 강남구를 중심으로 집값이 무섭게 오르고 있다. 규제 여파로 인해 거래 매물은 적은데 수요는 줄지 않으면서 집주인들의 호가가 시세가 돼 전체 가격이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7일 정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월 첫 주(1월1일 기준) 서울 강남구 아파트 값은 전주 대비 0.98% 상승했다. 한국감정원이 주간 집계를 시작한 2012년 5월 이후 역대 최고치다. 같은 기간 송파구도 0.85% 올라 지난 11월 마지막 주(1.02%)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서초구도 0.39% 오르며 서울 평균치를 뛰어넘었다. 이들 지역 집값 상승세가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서울 아파트 값은 0.26% 올랐다. 8ㆍ2 부동산대책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상승률이다.
전문가들은 강남권이 정부의 부동산 규제 타깃이 되면서 매물이 크게 줄어 오히려 희소성이 부각됐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재건축 전매제한 등 각종 규제로 거래 가능한 매물이 줄어든 가운데 가격이 계속 오르자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면서 ‘품귀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값 상승이 단순히 공급이 줄어서만은 아니다. 자립형 사립고 등의 학생 우선선발권이 폐지되면서 학군이 좋은 서울 강남으로 수요가 더욱 몰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요즘 강남권 아파트 시장은 단 1~2건의 거래가 전체 시세를 좌우하는 분위기다. 국토교통부 아파트 실거래가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7일 기준)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의 경우 전체 1,300가구에 이르는 단지 가운데 지난달 실거래가가 신고된 계약은 단 2건에 불과했다. 특히 지난달 12일 실거래가가 신고된 전용 84㎡는 전달에 비해 2억원 가량 오른 20억원에 거래된 후 호가가 일제히 올라 현재는 대부분 21억~21억5,000만원에 매물이 나오고 있다.
지역 대표 단지로 꼽히는 강남구 은마아파트(총 4,424가구)와 송파구 잠실 엘스(총 5,678가구), 리센츠(총 5563가구) 등도 지난달 실거래 건수는 각각 3건, 2건, 1건에 불과하지만 이 거래 가격이 시세가 돼 전체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매물 품귀 현상으로 인해 하룻밤 사이 1억원을 올려 내놓는 단지도 나오고 있다. 도곡동 삼성래미안 아파트의 경우 전용 84㎡가 10월까지 12억원대에 거래됐으나 이후 매물이 사라졌다가 지난달 4억원 가량 오른 16억원에 매물이 나왔다. 하지만 최근 가격이 급등한다는 소식에 지난 2일 집주인이 1억원을 더 인상해 17억원으로 가격을 조정하기도 했다. 이마저도 이 단지에서 유일하게 나온 전용 84㎡ 매물이다.
이처럼 부동산 시장의 대장주인 강남권 집값의 폭등 현상에 그 동안 연달아 대책을 내놓던 정부도 당혹스런 모습이다. 이미 정부는 부동산 대책의 최종판이라고 할 수 있는 보유세 카드를 준비 중이다.
그러나 보유세 인상 카드는 올해 발표돼 국회를 통과한다고 해도 내년 이후 적용되기 때문에 당장 폭등하고 있는 강남 집값을 잡기에는 역부족이다. 또한 올해 지방선거가 있는 만큼 보유세를 강도 높게 적용하기에는 정부로서도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 외에 가능한 대책은 이미 대부분 발표돼 적용되고 있는 만큼 정부의 고민이 클 수 밖에 없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강남에 대한 수요는 늘 높았기에 정부의 규제로 인해 집값이 뛴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집값에는 시장의 유동성과 경제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니 상황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고 대응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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