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안 해야 뜨나 봐요.” 20년째 음악 기획 일을 하는 A씨가 요즘 가요계 유행을 얘기하다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이 안엔 ‘뼈’가 있다. 지상파 방송사의 음악 프로그램들이 숨겨진 명곡 발굴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데 대한 불신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그의 말이 아예 틀린 것도 아니다. 멜론과 지니 등 주요 음원 사이트(8일 기준)에선 장덕철의 ‘그날처럼’과 딘의 ‘인스타그램’, 문문의 ‘비행운’이 음원 순위 1~3를 기록 중인데, 셋 모두 방송에서 해당 곡을 부른 적이 없다. 이들이 방송 출연 한 번 하지 않고 인기를 얻은 비결은 모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의 입소문이었다. 음악 유행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 창구가 ‘뮤직뱅크’ 등 지상파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SNS로 옮겨 가고 있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요즘 20~30대들은 방송 같은 전통 미디어 대신 뉴미디어로 음악의 유행을 확인하고 소비한다. 한국일보 인턴기자 14명에게 음악을 찾아 듣게 되는 유통 경로를 들었더니 방송(1명)보다 SNS(4명)가 더 많았다. 지상파 음악 순위 프로그램은 ‘아이돌그룹 잔치’가 된 지 오래다. 아이돌 음악만 소개되는 음악 방송에 대한 반감이 ‘열린’ SNS 공간에서 유통되는 음악에 대한 호기심으로 작용했다.
‘SNS 입소문’의 영향력은 음원 차트의 지형도도 바꾸고 있다. 신곡이 나온 지 최소 한 달 뒤에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하는 ‘역주행’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6개월 사이 음원 차트에서 역주행한 경우(멜론 1위 기준)는 윤종신의 ‘좋니’와 멜로망스의 ‘선물’, 장덕철의 ‘그날처럼’ 세 건이다. 볼빨간사춘기의 ‘우주를 줄게’와 한동근의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 해’로 두 차례의 역주행 신화를 보여준 2016년보다 잦아졌다.
음원 사이트 소비자에겐 차트 역주행 사례가 빈번할수록 반갑다. 특정 팬덤이 아닌 불특정 다수에게 사랑 받은 음악을 더 많이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다. 차트 역주행 사례가 “팬덤으로 서열화된 음원 사이트 톱10을 흔들어 보편적인 사랑을 받은 노래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계기가 되기 때문”(김상화 음악평론가)이다.
창작자들도 “역주행이 정상”(가수 윤종신)이라며 잦은 역주행으로 요동 치는 차트를 반기는 눈치다. 수만 명의 팬덤을 토대로 음원 공개 1시간여 만에 실시간 차트 1위를 하는 것보다 다양한 음악 소비자의 관심을 토대로 서서히 차트에서 주목 받고 소비되는 게 바람직한 현상이라 생각한다.
차트 역주행에 기대를 걸며 방송 홍보 대신 SNS 마케팅에 ‘올인’하는 소형 기획사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장덕철이 속한 리메즈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라이브 영상 등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기존 가수보다 2배 이상 만들어 SNS를 통한 음악 소비자들과의 접점을 넓히려 한 게 차트 역주행에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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