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전문가 라이메남 인터뷰
현재 투기성 짙어, 점차 안정될 것
규제가 기술발전 속도 못따라와
한국정부 규제 성공 가능성 의문
한국 정부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투기 억제를 위해 다양한 규제를 검토 중인 가운데, 이 분야 국제 전문가가 장기적 관점에서 비트코인은 무가치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기술적 기반인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의 잠재력과 장래성 때문에 특정 국가의 과도한 규제는 바람직하지 못하며 성공할 수도 없다고 예측했다.
블록체인 기술의 세계적 전문가 마르크 판 라이메남은 12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은 거래 시스템 자체에 결점이 많다”며 “내가 보는 비트코인의 실질적 가치는 0달러”라고 말했다. 이는 비트코인이 가상화폐 시장을 주도하는 현재로서는 시장 자체가 투기성이 짙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러나 블록체인 기술의 발달로 비트코인의 단점을 해결하고 실질적 가치를 보장하는 가상화폐 혹은 암호화폐가 등장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의 실효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정보기술 공동체의 혁신 속도가 너무 빨라 규제가 의미를 잃어버릴 것”이라며 가상화폐 거래소의 보안 문제나 신규 암호화폐 공개(ICO) 같은 경우는 규제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혁신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라이메남 주문에 따라 가상화폐 대신 암호화폐로 표기한다.
_많은 전문가들이 비트코인 혹은 암호화폐를 투기적 거품 현상으로 규정하고 비판하고 있다. 당신의 견해는 뭔가.
“암호화폐는 기업을 운영하고, 재산을 송금하고 거래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다. (첫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이 등장한 지 이제 9년이고, 우리는 아직 이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에 어떻게 대응하고 우리의 상품과 서비스에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상태다. 그런 신 기술에는 당연히 투기적인 움직임이 등장하게 마련이고 그것이 우리가 보고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일이 아니다. 19세기 말 미국 서부에 새로운 금맥이 발견됐을 때도 큰 돈을 벌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몰려들었다(골드 러시). 나는 수년이 지나면 시장은 안정화될 것이라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규제 때문이고,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암호화폐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만 신용 사기나 신규 암호화폐 공개(ICO)를 이용한 사기는 사라질 것이라 본다.”
_당신은 지난해 비트코인에 기술적인 한계가 있어 무너질 것이라 예측했다. 그 이유는 뭔가
“나는 여전히 비트코인이 무너질 것이라 생각한다. 기술적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거래 비용이 지나치게 비싸고, 초당 거래 수는 지나치게 적다. 또 화폐의 발행(마이닝)은 대부분 중국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탈 집중성’의 장점을 잃고 중앙 집권적인 코인이 돼 버렸다. 게다가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네덜란드 등 웬만한 국가보다도 더 많은 전력을 소비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 위기가 거론되는 시대에 이런 터무니 없는 시스템은 유지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는 비트코인 개발자 나카모토 사토시가 비트코인을 개발할 때 이미 내재된 것이다. 현행 비트코인 공동체가 이를 개선할 것으로 보기 어렵다. 또 공동체가 너무 많이 분열됐다. 이미 세그윗2X 업데이트 문제로 비트코인과 비트코인 캐시가 쪼개지는 모습도 나타났다. 비트코인은 ‘암호화폐판 마이스페이스(현재 페이스북 등에 밀려 몰락한 초창기 소셜 미디어)’가 될 것이다.”
_그럼 비트코인의 적정 가치는 어느 정도인가. 비트코인 투자자들에게 무엇을 조언할 것인가.
“비트코인 가격이 2만달러로 정점을 찍었다고 본다. 내가 보는 비트코인의 실질 가치는 당연히 0달러다. 비트코인보다는 문제점을 개선한 다른 암호화폐에 투자하라고 권하겠다. 물론 어떤 암호화폐든 투자는 매우 높은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고 면밀하게 사전 조사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_비트코인뿐 아니라 다른 가상화폐들도 거래 수단으로서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기술 발전으로 개선될 것이라 생각하나.
“물론이다. 비트코인에서 나타나는 과도한 거래 비용과 에너지 소비를 해결할 새로운 블록체인 기술이 나와 있다. 예를 들어 이더리움 같은 경우는 거래 증명을 위한 합의 알고리즘을 ‘작업증명’ 방식에서 ‘지분증명’ 방식으로 바꿔 가면서 거래 비용을 크게 줄이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기술 발전이 있을 것이고, 더 많은 해법도 나올 것이라고 본다.”
_한국 정부는 추가 투자 금지와 암호화폐 계좌 실명제 등을 도입하려 시도하고 있다.
“계좌 실명제는 실패할 거라 생각한다. 암호화폐 체제 자체가 ‘탈 집중적’이라 실명 시스템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언제든지 돈을 이 지갑에서 저 지갑으로 옮겨 다닐 것이고, 현재 암호화폐가 1,400가지가 넘는데 이를 모두 통제하기가 어렵다. 물론 가상화폐 거래소는 실명제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이는 이들 거래소가 KYC(고객 알기) 정책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이미 지키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_규제당국은 암호화폐가 사기와 도난에 취약하다고 보고 규제에 나선 것이다. 이런 규제들이 성공할 것으로 보는가. 어떤 방식으로 규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사실 당국이 어떤 규제를 해도 유효한 규제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기술 혁신, 특히 정보 기술 혁신에 대응할 때 규제당국은 늘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들이 규제를 하려 하면 기술 공동체는 이미 혁신으로 앞서나가 있기 때문에 규제의 의미가 사라져 버린다. 정부가 이미 기존 금융 시스템에서도 해킹과 피싱, 스팸 사기를 막지 못하는데 암호화폐 시장이라고 딱히 다를 것이 없다고 본다.
물론 앞서 말한 대로 거래소는 규제가 가능하다. 정부는 거래소를 엄격히 통제해 적절한 보안 규정을 마련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해커들은 여전히 보안 취약점을 찾아낼 것이다. 결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규제보다는 암호화폐 투자자들에게 투기나 사기의 위험성을 환기하고 적극 교육하는 수밖에 없다.
신규 암호화폐 공개의 경우는 분명히 규제하고 사기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현재 기업공개(IPO)는 상당히 엄격히 규제가 되고 있는데 ICO도 같은 방식으로 규제하면 된다. 그러나 이 규제도 혁신적인 ICO 자체를 막는 규제가 돼서는 안 된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용어설명
▦신규 암호화폐 공개(ICO): 주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핵심 기술이나 사업 방식을 공개하고 투자자를 모으면서 투자의 대가로 기업지분 대신 암호화폐를 지급하는 것
마르크 판 라이메남은…
빅데이터와 블록체인 기술 전문 매체인 ‘데이터플로크(Datafloq)’의 설립자이자 세계 주요 정보기술(IT)ㆍ금융기업이 공동 창립한 ‘블록체인연구소’의 참여 연구원 중 하나다. 빅데이터 분야에선 영향력 있는 10인, 블록체인 기술 분야에선 영향력 있는 40인 안에 꼽혔다. 미국과 중국, 호주 등 15개국 이상 장소에서 디지털 기술 연사로 나섰으며 현재 시드니 기술대학에서 빅데이터와 블록체인이 조직과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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