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피맺힌 그 기다림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13일 오후 서울 관악구 대학로 5길. 고(故) 박종철 열사를 기억하는 박 열사 생전의 지인들과 지역주민, 정치인 등 약 400명의 시민들이 박 열사가 생전에 좋아했다는 ‘그날이 오면’을 합창했다. 곧이어 열린 제막식에선 박 열사의 얼굴이 담긴 동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박 열사를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 이 곳을 찾은 이들은 저마다 동판 위 박 열사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손으로 쓰다듬으며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
이날 행사는 서울 관악구가 ‘6월 항쟁 도화선’으로 불리는 박 열사의 대학시절 하숙집 앞 길를 ‘박종철거리’로 선포하는 자리였다. 관악구청이 1년여 전부터 기획한 이 거리엔 박 열사 동판을 비롯해 벽화와 거리 안내판 등이 설치됐다.
행사장을 찾은 박 열사 누나 박은숙씨는 31년 전 박 열사가 경찰에 잡혀갔을 모습을 상상하면서 가슴 아파했다. 박씨는 “종철이가 살던 길이나 한 번 보려고 왔는데, 그 때에 비해 많이 화려해졌다”면서 “1987년에 이 길이 이렇게 밝았다면, 종철이가 새벽에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진 않았을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 박 열사가 민주화의 열망을 품고 이 곳을 지나다녔을 모습을 그리며 “종철이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다”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이날 오전 이철성 경찰청장이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에 대한 시민참여 운영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 데 대해선 “고마운 일”이라면서 “이제 제발 시민 품에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행사장엔 박 열사의 대학시절 친구 20여명도 이 자리를 찾아 박은숙씨 등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박 열사와 같은 하숙집에 살았다는 최인호(52)씨는 “‘1987’의 흥행으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지만, 이 거리는 조성 준비는 훨씬 일찍 시작됐다”며 “종철이를 추모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준 구청과, 이를 환영해준 주민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라고 했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박 열사는 우리의 아픈 역사이자 자랑스런 역사의 시작”이라며”빠른 시일 내에 박종철 거리 내에 기념관을 조성해 시민들이 언제나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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