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영화 100편을 분석한 결과 오직 단 하나의 장르에서만 여성의 등장시간이 상영시간의 절반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공포영화다.
구글은 지난달 지나데이비스재단과 함께 기계학습(머신러닝)을 이용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중 박스오피스 상위 100위에 오른 작품을 분석해 영화 속 성평등 정도를 조사한 내용을 발표했다. 지나데이비스재단은 영화 ‘델마와루이스’, ‘엑소시스트’ 등으로 유명한 배우 지나 데이비스가 세운 미디어 교육재단이다.
조사를 위해 구글이 프로그래밍한 컴퓨터는 100편의 영화를 모두 감상하면서 분석했다. 영화를 보는 동한 컴퓨터는 영화 속 등장인물의 얼굴을 인식해 성별을 파악했다. 이후 컴퓨터는 캐릭터의 얼굴과 대사를 추적하며 ▲얼마나 오래 등장하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말하는지를 측정했다.
이는 그 동안 미디어 속 성평등 측정 도구로 쓰이던 ‘벡델테스트’와는 약간 다른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1985년 만화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앨리슨 벡델이 만든 테스트는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최소 2명 등장하는지 ▲그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지 ▲그들의 대화가 남성에 대한 것이 아닌 다른 것인지에 따라 테스트 통과 여부를 결정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들의 테스트 통과율은 약 50% 정도다.
분석 결과 공포영화를 제외한 모든 장르에서 여성의 평균 등장 시간은 상영시간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액션과 범죄스릴러 장르에서는 각각 평균 29%, 23%에 그쳤다. 여성 등장인물이 말하는 시간은 모든 장르에서 상영시간의 50%를 넘지 못했다. 공포영화가 47%였으며, 액션과 범죄스릴러 장르 역시 각각 29%, 26%에 그쳤다. 구글은 2015년 아카데미 수상작 18편도 분석했는데, 이 작품들에서 드러난 여성의 등장 시간과 말하는 시간은 각각 32%, 27%에 그쳤다(결과 자세히 보기).
공포영화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이유는 전통적으로 희생자 역할에 여성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여성 희생자의 귀를 찌르는 듯한 비명은 한동안 공포영화의 대표 이미지였다. 특히 ‘13일의 금요일’ ‘텍사스전기톱 살인사건’ 등 1980년대 등장한 공포영화에서는 성적으로 개방된 여성이 가장 먼저 희생당했다. 영국의 작가 노아 벨라스키는 이를 두고 “사회적 금기를 넘는 여성을 영화 속에서 단죄하는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공포영화는 달라지는 추세다. 지난 2010년 이후 여성은 영화 속 괴물 또는 이를 처단하는 영웅으로 그려지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겟아웃’에서는 아름답고 젊은 백인 여성들이 주된 공격자로 나왔다. 중세 마녀재판을 다룬 2015년 개봉작 ‘더위치’ 에서는 마녀로 몰린 10대 소녀 주인공이 자신을 공격하는 사회에 반기를 드는 선각자 역할을 했다.
이는 분명 사회 속 여성의 역할 강화가 미디어에 반영된 결과이지만, 왜 유독 공포영화에서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는 아직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 지나데이비스재단 관계자는 “’원더우먼’같은 영화가 성공을 거두고 있는 만큼 조만간 다른 장르에서도 여성 영웅과 선각자가 자주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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