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석 대한외과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
드라마나 영화 속 외과의사는 정말 멋지다. 죽어가는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북한 귀순병사를 살린 외과의사 이국종 교수가 내내 화제였다. 예산도 200억 원이나 더 따냈다.
대한민국 외과는 잘나간다. 과거 우리가 배우러 갔지만 이젠 선진국 젊은 의사들이 우리나라에 1년 이상 장기 연수하는 게 흔하다. 그런데 이런 국제적 명성, 증액된 예산이 무슨 소용인가?
모두 외과를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정작 “당신이 외과의사를 해보세요”하면 나는 말고 다른 의사가 살리길 원한다. 힘들어서다. 외과의사가 의사 가운데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정작 이런 극한 수련을 받고 개업도 하지만 대부분 외과 진료를 포기한다. 수가(酬價)가 보상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올해도 외과 전공의(레지던트) 모집에서 180명 정원에 148명이 지원해 82.2%로 미달했다. 2014년 71%, 2015년 67%, 2016년 82%, 2017년 88%, 2018년 82%… 참담하다.
또한 도중에 힘들어 그만두는 전공의도 늘고 있다. 누가 수술하고 환자를 돌볼 것인지. 한계치에 거의 다가섰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실 사건이 언제 어디서 다시 생길지 모른다.
문제는 원가(原價)의 75%만 보상하는 낮은 수가체계에서 비롯됐다. 오죽하면 ‘새로운 환자가 오면 검사만 하고 다른 병원으로 보내 수술시키는 게 가장 이득’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까. 많이 수술할수록 적자만 쌓이니 누가 외과에 투자하고 지원하겠나.
현재도 전공의가 턱없이 모자란대 ‘전공의 1주일 80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 누가 빈자리를 메울까. 지금도 과도한 업무를 하는 전문의나 전임의에게 불똥이 튈 것이다. 외과의사 인권뿐만 아니라 환자 안전마저 위협받을 것이다.
전공의 주 80시간제는 과도한 전공의 업무로 인한 환자 안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에서 시작한 제도다. 우리는 대안없이 시행하면서 환자 안전이 더 위험하게 될 지경이다. 올해 전공의 주 80시간제가 도입되면 누가 수술하고 누가 환자를 돌볼 것인가. 이미 몇몇 병원에선 전문의가 낮에 근무하고 밤에도 당직을 서는 일이 일상화됐다. 이들의 인권과 환자 안전마저 심각히 위협받고 있다.
해결책은 있나. 입원전담의를 전문분야로 인정하고 수가를 신설해 환자 안전을 강화해야 한다. 대한외과학회는 몇 년 전부터 외과 전공의 수련기간 단축을 주장해왔다. 외과 전공의 수련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줄여 수련 후 다양한 트랙을 통해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3년 간 일반 외과수술과 외과ㆍ중환자실 환자를 처치할 역량을 갖추게 한 뒤 ①3차 의료기관에서 입원전담의를 하거나 ②지역병원(community hospital) 외과 전문의로 1차 의료를 책임지거나 ③3년 수련 후 2년 간 추가로 세부전문의 과정을 받아 고위험수술을 맡도록 하는 방안이다.
이를 통해 입원전담의는 병실에 있는 수술 후 환자를 맡아 환자 안전을 책임질 것이다. 일부 전문의는 개인ㆍ중소병원에서 외과 1차 의료(충수돌기절제술, 항문수술, 탈장수술 등)를 담당할 것이다. 2년 간 추가로 세부전문의 과정을 이수한 외과세부전문의는 고난이도 중증질환 수술을 맡게 될 것이다.
대한외과학회는 이 같은 ‘외과 전공의 3년제 단축안’을 정부에 몇 차례 요청했지만 소 귀에 경읽기다. 지난해 내과 전공의만 3년제로 단축됐을 뿐이다. 정부의 이유없는 늑장 대처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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