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정기인사 앞두고 40여명 사의 표명
“적폐 내홍” 행정처 판사도 다수
고법 부장판사 승진 폐지도 원인
법원이 뒤숭숭하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첫 법관 정기인사를 앞두고 법복을 벗으려는 판사들이 예년보다 늘어났다고 알려지면서 그 배경을 놓고 설이 난무한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관 40명 정도가 잇따라 사의를 밝히거나 거취를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법 한 부장판사는 “‘평생법관제’가 안착되면서 인사철에 사직하는 법관 수는 줄고 있었는데 올해는 예년보다 많아진 건 사실”이라 말했다. “1월 중순인데도 이번에 나가려는 판사 수가 과거 고법부장(고등법원 부장판사) 인사 발표 뒤 사직했던 법관까지 포함한 수를 이미 넘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올 법원 정기인사는 2월 13일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 이상, 26일 지방부장판사 이하 인사로 예정돼 있다.
요직으로 꼽혀온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나 대법원 연구관(판사)도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경법원 한 인사는 “행정처 K 판사와 L 대법 연구관 등 3명이 사의를 직간접적으로 보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행정처 판사 몇몇이 더 사의를 밝힐 예정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일각에선 1년 가까이 내홍을 부른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의 후폭풍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판사는 “저마다 일일이 말 못할 사정은 있겠지만, 동료들에게 ‘적폐’로 찍힌 판에 일할 의욕도, 법원에 더 남을 이유도 없으니 나가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중견판사는 “각 법원에서도 이번에 실력 있는 분들이 많이 나가는데, 최근 판사 전용 익명 게시판에서 제기된 ‘막말 사태’나 ‘블랙리스트 추가조사’ 등으로 인한 분란을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가 ‘줄사표’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는 말도 내부에서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한 부장판사는 “특히, 이번에 법원의 중추역할을 하는 사법연수원 25기 이하 지법 부장급들이 사표를 많이 내고 있다”고 전했다. 제도 폐지로 연수원 24기 판사까지만 승진이 된다.
이번에 법원을 떠나려는 고위 법관도 다수다. 김명수(59ㆍ15기) 대법원장보다 기수가 높은 강형주(59ㆍ 13기) 서울중앙지법원장은 사의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만(57ㆍ18기) 제1민사수석부장판사와 여미숙(52)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도 사의를 밝혔다.
줄사표 예고 상황을 두고 김 대법원장 체제에 대한 불만이 깔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지만 대법원은 “현재 확인된 선에서 예년 수준과 별차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 추가조사 결과가 이르면 내주 초 나올 예정이라 또 한번 내부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재경법원 한 판사는 “결론이 어떻게 나든 진상조사 결과를 놓고 외부는 물론 내부적으로도 말들이 많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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