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현지시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동북쪽 매콤 카운티. 크라이슬러, 제너럴모터스(GM) 등의 자동차 공장이 밀집된 미 자동차 업계의 심장부지만, ‘마틴루터킹 데이’ 연휴인데다 눈보라까지 몰아쳐 공장 인근 거리는 한산했다. 한 카페에서 만난 자동차 노동자 출신의 공화당원 브라이언 페너베커(58)씨도 이제 막 휴가에서 돌아온 참이었다. 그는 “한국인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로 좋은 인상을 받았다는 것을 들었다”고 운을 떼면서 “미국 언론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나쁜 얘기만 듣다가 직접 연설을 들으면서 그의 진면목을 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언론들이 트럼프에 대해 늘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국민들을 위해 워싱턴의 의회, 언론 등 모두와 싸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86만여명이 거주하는 매콤 카운티는 인근 자동차 공장에 근무하는 노동자 밀집 지역이다. 2008년, 2012년 대선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 곳은 2016년 대선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53.6%를 얻어, 힐러리 클린턴 후보(42.1%)를 10%포인트가 넘는 큰 표차로 눌렀다. 역대 선거에서 민주당 텃밭이었던 미시간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1만여표(0.3%포인트)라는 초박빙 표차로 승리를 하는 데 결정적 몰표를 던진 것이다. 이 작은 차이가 미시간 선거인단 16명의 싹쓸이로 이어져 트럼프 대통령은 대 반전의 종지부를 찍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지지를 반영하듯, 메콤 카운티의 공장 인근 주택가에는 성조기를 걸어둔 집들이 적지 않았다.
“트럼프, 워싱턴 기득권ㆍ언론과 분투”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주의 발언 논란 등으로 민주당 성향 지지자들의 반 트럼프 정서는 하늘로 치솟고 무당파층의 민심도 크게 흔들리고 있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은 끄떡 없었다. 포드 공장에서 22년째 일하고 있는 넬슨 웨스트릭(42)씨는 “대통령은 언론과 워싱턴 정치인들의 반대 속에서도 공약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년 동안 밀어부친 의제들이 세제감면 외에는 대부분 의회 벽에 부딪혔고 트윗 발언으로 갖가지 논란을 빚었지만, 지지자들은 이를 워싱턴 기득권층과의 분투로 해석하고 있었다.
특히 주류 언론에 대한 불신은 강렬했다. 민주당 성향 지지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격한 혐오감을 쏟아내는 것만큼 트럼프 지지자들은 언론으로 혐오의 화살을 돌렸다. 웨스트릭씨는 “그들이 보도하는 95%는 좌파 리버럴의 편향적 뉴스”라고 말했다. 40여년간 건설장비 분야에 종사했다는 테렌스 돌리(72)씨는 “주류 언론들은 더 이상 뉴스를 보도하지 않는다. 뉴스를 만들어 낸다”고 비판했다. 또 “그들은 자신들을 따르도록 여론을 흔들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그토록 밀었던 클린턴이 패배했을 때 대중들이 이제 그들의 생각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주의 논란에 대해서도 페너베커씨는 “완전 가짜”라며 “언론의 또 다른 공격 소재일 뿐”이라고 딱 잘랐다. 그는 “내 조부모도 이민을 온 세대인데, 여기 와서 영어를 배우고 일을 하고 세금을 냈다”며 “우리는 그렇게 일을 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이민자들은 환영하지만, 일하지 않고 복지 혜택만 받으려는 이들은 걸러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종주의가 아니라 이민 제도의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지자들이 일제히 내세우는 최대 업적은 역시 세금 감면이다. 최근 크라이슬러사는 법인세 감면으로 생긴 여유금으로 직원들에게 1인당 2,000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웨스트릭씨는 “우리 가족들은 세금 감면으로 내년에 2,900달러를 더 모을 수 있는 데, 그 돈으로 휴가를 갈 것”이라고 말했다. 페너베커씨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언론과 민주당으로부터 온갖 공격을 받아서 지지율이 다소 떨어졌지만 40% 지지세는 굳건하다”며 “20%의 무당파층이 오락가락하지만 요즘 디트로이트 경기가 매우 좋은데다 세금 감면 효과가 나타나고 일자리가 늘면 몇 개월 내에 지지율은 반등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노동층 외면한 민주당에 대한 뿌리 깊은 분노
트럼프 지지자 상당수는 예전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들이다. 블루칼라 계층 자체가 역사적으로 민주당의 전통 지지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민주당에 대한 반감은, 트럼프에 대한 호감 이상으로 깊어 보였다. 돌리씨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트럼프 지지자들은 미국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워싱턴 정치인들에게 신물이 났다”면서 특히 민주당에 대해 “많은 노동자들은 동부 해안의 엘리트 민주당원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노리개로 이용해온 것을 지켜봐 왔다”고 적의를 드러냈다. 그는 “그들은 노동자들을 돕기는커녕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데만 급급했다”며 “때로 대통령의 말이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내 친구들 모두 지금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이 아니라는 데 매우 만족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 등 동부의 부유한 대도시 민주당 인사들이 제조업 공동화로 어려움을 겪는 중서부 지역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고 문화적인 진보 가치만 내세우는 데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낸 것이다. 이 정서야말로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의 이탈과 ‘트럼프 현상’을 배양한 사실상의 진원지이면서, 자유무역으로 이득을 보는 리버럴과 피해를 입는 노동층이 분화하는 길목인 셈이다.
샌더스 지지자들의 착잡한 심경... ’워싱턴 기득권’에 대한 여전한 반감
이 지역에서 민주당의 분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지지층의 태도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변을 연출한 미시간주와 위스콘신주 모두 민주당 경선에서 샌더스 후보가 클린턴 후보를 눌렀다. 클린턴 후보는 그러나 경선 후 샌더스 지지자들을 끝내 끌어 안지 못했다. 상당수 샌더스 지지자들은 투표를 포기하거나 일부는 아예 트럼프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클린턴 후보에 대한 반감이 그만큼 강했다는 얘기다.
샌더스 지지자들의 투표 포기는 결국 트럼프의 당선을 도운 격이어서, 대선 1년 후 이들의 평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샌더스 지지자를 수소문해 연락이 닿은 엘레인 페트루치(52)씨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착잡한 심경을 장문의 이메일로 보내왔다. 미시간의 샌더스 후보 측 대의원이었던 페트루치씨는 메일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트럼프에 대한 투표는 기득권에 대항하는 투표이자 희망을 위한 투표였다”며 “그들은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그의 거짓말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대안은 ‘힐러리’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이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징후”라며 “임금은 정체되고 대학 학비는 1970년대 이후 1,000%가 뛰었고 의료서비스는 통제 불능이며, 고용 보장도 받지 못해 우리 상당수는 희망을 잃고 있다”고 이 지역 노동계층이 직면한 현실을 강조했다. 그는 “샌더스는 우리에게 희망을 줬지만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를 강탈당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게 됐다”며 “샌더스 지지자 상당수는 힐러리 후보에 대한 투표를 거부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선 “인종주의자고 자기중심적이고 여성혐오자다. 미국의 파괴를 더 촉진시킬 것이다”면서도 “다만 미국을 실제로 굴러가게 하는 기업ㆍ기득권 바퀴의 한 축일 뿐이다. 진정한 문제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내 기득권과 최상위 0.1%로 미국은 더 이상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기득권’에 대한 반감이 트럼프 지지자뿐만 아니라 이 지역 노동계층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정서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페트루치는 “트럼프는 이런 미국 사회의 결과”라고 끝맺었다.
디트로이트=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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