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인권법연구회도 ‘핵심’ 분류
여성 판사들 온라인 카페도 살펴
“정치적 편향 부적절 글 있다”
“사법 수뇌부에 비판적 판사
엄포용 카드로 활용” 제시까지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의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의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의견을 표하는 일선 판사들에 대해 전방위적인 사찰성 동향 수집을 지속적으로 한 정황이 다수 문건으로 발견됐다. 다만, 추가조사의 핵심 대목인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를 두고는 개념 논란 등으로 조사 주체가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은 데다, 문건 속 대처 방안 실행 여부도 조사범위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밝히지 않아 법원 진통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추가조사위원회가 22일 공개한 각종 문건을 보면, 주로 법원행정처가 사법 수뇌부의 사법행정 추진 구상에 걸림돌이 되는 비판적 성향 판사들을 타깃 삼아 여러 루트로 동향 정보를 수집하고 통제 가능한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짠 정황이 대거 드러나 있다.
행정처는 사법행정에 간섭하는 것으로 보이거나 정책에 반기를 들 우려가 있는 특정 성향의 모임 판사들을 묶어 ‘고립’시킬 방안을 고심했다. 2016년 2월 24일자 ‘사법행정위원회 개선요구에 대한 대응 방안’에는 판사회의를 통해 수평적, 민주적 운영방식으로 사법행정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발표한 송모 판사의 소속 모임과 주된 관심사 등이 빼곡히 적혔다. 상고법원 등에 반대하는 진보 성향의 판사모임인 우리법연구회나 관료적 사법행정을 비판해온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 9명을 ‘핵심 그룹’으로 분류하고, ‘이 소수 그룹의 조직적 활동이 다수 판사의 호응을 얻는 것을 차단하고, 고립시킬 필요가 있다’고도 쓰였다. 송 판사를 두고는 별도 문건에서 ‘선동가, 아웃사이더 비평가 기질’이 있다며, ‘이슈 발생시 주변 법관들을 선동하는 기질이 다분하다’고 평가했다. 2016년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에 출마한 박모 판사에 대해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검사였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반대 글을 올린 경력을 적고, ‘사법행정라인과 대립할 수 있다’면서 그를 견제하기 위해 다른 판사를 대항마로 적극 미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행정처는 여성 판사들의 소통 목적으로 비공개로 개설된 온라인 카페 ‘이판사판 야단법석’(2014년 10월 개설)에 들어가 비판적 게시글 등을 살피고 보고서를 쓰기도 했다. 기조실 심의관(판사)이 접근 가능한 계정을 구하거나 회원가입을 통해 수집했다. 2015년 2월 14일자 문건에는 ‘정치적 편향을 드러내거나 지나치게 직설적 표현으로 부적절한 게시 글 존재’라고 쓰였다. 그러면서 ‘문제 소지 있는 주요 게시 글 및 댓글’ 항목을 더했다. 양 대법원장이 강력 추진한 상고법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형사사건 선고, 박상옥 당시 대법관 후보자 임명제청, 쌍용차 해고노동자 판결 선고, 법원 인사 등에 관한 것으로, 사법부 수뇌부 심기를 건드리는 문제 글들로 본 것이다. 그러면서 ‘대처 방안’으로 ▦법관윤리강령과 대법원공직자윤리위원회 권고의견 위반 여부를 검토해 위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설득 및 엄포용 카드로 활용 ▦여러 방법으로 카페 폐쇄 유도 등을 제시했다. 다만, 이 문건을 쓴 심의관은 기조실장 등에게 보고되진 않았다고 추가조사위에서 진술했다. 보고됐다는 문건에는 ‘선배 법관이 운영진에게 신중한 운영, 위험성 글의 삭제 또는 실명화 권유, 선배 법관이 다수 가입해 내부 변화를 모색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고 한다.
아울러 행정처는 심의관 출신 등을 신뢰할 수 있는 ‘거점 법관’이라 지칭하며, 법원 내 동향의 주기적인 파악 구상도 했다. ‘문제될 가능성이 높은 법관’은 그의 페이스북 등 SNS를 점검하고, 그가 부장판사면 그 배석판사나 참여관, 실무관의 SNS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추가조사위는 “법관이 사법정책을 비판 내지 반대했단 이유로 법관에 관한 자료를 폭넓게 수집해 이념적 성향, 인적 관계와 행정 등을 분석ㆍ평가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문서를 작성했다면, 그 방안이 실현이나 인사상 불이익 여부를 떠나 문건 작성 자체로도 법관 독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조사는 대응방안의 실행 여부나 관여 주체가 명쾌히 드러나지 않아 절반에 그친 조사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추가조사위 관계자는 “조사 대상과 범위가 판사 뒷조사 파일의 존재여부였기 때문에 그 이상 나아갈 순 없었다”고 설명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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