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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약물중독자 마음의 고향 ‘다르크’를 아시나요?

입력
2018.01.24 04: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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떳떳이 간판 있고 이웃과 농담도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는 한국과 딴판

‘중독자=범죄자’ 틀 탈피하기 위해

어려워도 정부 지원 요청 안 해

입소자 기초생활수급비를 운영비로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의 민간 약물중독재활센터 ‘다르크’ 입소자들이 지난해 12월26일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던 도중 사진 촬영 요청에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의 민간 약물중독재활센터 ‘다르크’ 입소자들이 지난해 12월26일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던 도중 사진 촬영 요청에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일본의 민간 약물중독재활센터 ‘다르크’(DARCㆍ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 지부 중 하나인 ’일본 다르크’는 도쿄(東京) 신주쿠(新宿) 요초마치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 민간 마약재활센터인 서울 다르크(본보 1월22일자 7면)가 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의식해 공공연히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던 것과 달리 명패를 크게 붙여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다르크 직원들과 인사와 함께 농담도 주고 받는 이웃 주민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다르크 입소자들이 주변을 경계하며 낯선 기자의 시선을 피하는 모습에 우리나라의 한 마약류 중독자가 “중독이 심해질수록 (가족 등 주변에서 외면해) 처절하게 외로웠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일본 법무성이 발간한 2017년 각성제ㆍ대마 등 중독성 약물로 형사처벌 받은 사람은 1만5,000여명으로 인구비례로 따지면 한국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약물 중독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3층 건물에는 다르크 설립자 곤도 쓰네오(77)씨 사무실과 일본 다르크 본부, 아시아ㆍ태평양 중독 연구소(아파리ㆍAPARIㆍAsia Pacific Addiction Research Institute)와 약물의존 환자 치료 클리닉, 그리고 일본 다르크 입소자들이 낮 시간 동안 활동하는 데이 케어(Day care) 공간이 한데 모여 있다. 나고야 지역에서 2개 다르크 지부를 운영 중인 재일동포 2세인 마쓰우라 요시아키(54)씨는 “약물 중독 재활에 관한 곤도씨의 이상형에 근접한 모델”이라고 귀띔했다. 한 곳에서 치료와 재활이 연계ㆍ운영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다만, 클리닉에서 이뤄지는 실제 치료는 다르크 측에서 관여하지 않고 의사들에게 전적으로 일임한다.

다르크는 곤도씨가 1985년 일본 최초로 개설한 민간 주도 약물 중독자 재활 시설이다. 마약류뿐 아니라 가스, 본드, 중독성 있는 제조약 등 모든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을 받아 재활에 도움을 준다. 2000년 다르크 부속으로 설립된 아파리는 범죄학 박사나 법률 전문가 등 다르크 재활 프로그램 등을 연구하는 전문가 집단으로 다르크 활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다. 전직 판사나 변호사, 대학교수, 수사기관 관계자 등 전문가들이 약물 중독 개선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오다 마코토(57) 아파리 사무국장은 “’형사재판을 통해 중독자를 형무소에 보내는 건 사법시스템의 실패’라는 어느 판사의 말처럼 중독자들이 처벌받지 않고 재활할 수 있는 제도나 프로그램을 연구ㆍ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 시행착오와 재정난을 겪으면서도 힘겹게 버틴 결과, 현재 일본 전역에 87곳으로 늘어났다. 이제는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도 중독자에게 권유할 정도로 보편적 약물 재활시설로 자리잡았다. 곤도씨는 “다르크는 일본에서 고유명사화했다”고 했다.

다르크는 자리를 잡는 과정에 시설 임대료도 내지 못해 문을 닫을 뻔한 상황도 있었지만 정부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다. 국가 기관이 개입하면 중독자를 범죄자로 보는 정책적 틀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이나 ‘서울 다르크’처럼 민간의 재활 노력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지원이 거의 전무한 한국 실정과 유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르크는 현재 입소자가 1,000여명으로 늘어나는 등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성공 요인으로 다르크 관계자들은 ‘기다림’을 꼽았다. ‘도쿄 다르크’ 운영을 맡고 있는 모리타 구니마사(56)씨는 “약물 중독자가 한 번에 좋아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다르크를 운영하는 사람과의 호응, 프로그램의 적절성도 중요하지만, 여러 상황이 결부돼 딱 맞아 떨어질 때까지 다르크 10여곳을 전전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따라서, 다르크 입소자를 일률적인 프로그램에 맞추려고 하지 않고, 참여자들이 재활 의지를 갖고 자율적으로 동참할 때까지 강요하지 않는다. 다르크에서 운영하는 ‘NA(Narcotics Anonymous) 모임’(익명의 약물중독자들)에는 주기적으로 참석하도록 조정한다. NA모임은 중독자들이 각자 경험을 얘기하며 단약의 결의를 다지는 모임이다. 다르크 설립 초기 멤버인 고다 미노루(63)씨는 “아픔을 가진 사람들끼리 경험을 공유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중독자들이 다시 약을 하더라도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으로 다르크가 자리 잡은 건 이 같은 프로그램의 힘이 크다”고 했다. 이런 다르크에서 재활해 사회 복귀를 앞둔 입소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가와사키 다르크는 친구들 모임처럼 웃고 장난을 치는 등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였다.

재정 부분은 일본의 사회복지제도 때문에 극복이 가능했다. 일본 다르크는 기본적으로 입소자가 내는 돈으로 운영하고, 부족분은 헌금 등으로 충당한다. 곳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급자족한다. 도쿄의 경우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생활 보조금 7만~8만엔(약 70만~80만원)과 주택보조금 5만3,700엔(약 54만원)이 지급되는데 이를 시설운영비로 받는다. 세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집 월세가 12만~15만엔(약 120만~15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기초생활수급자 세 명만 모이면 다르크가 운영될 수 있는 셈이다. 1인당 최대 60만원선의 기초생활수급 비용을 받고, 방값이 비싼 한국에선 불가능하다. 두 나라 모두 중독자들에게 취업 기회가 많지 않지만 일본에서 다르크가 자리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사회적 안전망 때문으로 보인다.

다르크가 성공적으로 자리잡긴 했지만 여성 중독자 재활 프로그램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열악하다. 일본 여성 중독자의 경우 가정형편이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중독되는 경우가 많고, 약을 끊었다 하더라도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재발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중독 치료와 재활에 전념할 수 없어 스트레스가 쌓이면 다시 약물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독 사실이 주변이나 자녀들에게 알려졌을 때 생기는 2차 피해에도 민감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도 여성 다르크는 위치도 알려지지 않았고 주변 이웃들도 다르크라는 사실을 모르도록 운영하고 있다. 가와사키시의 여성 다르크에는 18명이 등록한 상태지만, 자녀들 방학 때는 절반도 참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여성 다르크 운영자 야마다 기요미(42ㆍ여)씨는 “어머니인 중독자들이 많아 안정(cozy)에 중점을 두고 운영한다”고 말했다.

도쿄=글ㆍ사진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글 싣는 순서>

1 도돌이표: 절망과 참회의 악순환

2 상상 초월: 청정하지 않은 대한민국

3 좀 이상해: 개운치 않은 수사와 재판

4 마약 양성소: 전문가 키우는 교정시설

5 보름 합숙: 쉽지 않은 재활의 길

6 갈 곳이 없다: 취업과 치료 거부하는 사회

7 일본 가 보니: 민간이 주도하는 재활센터

8 재사회화: 극복하고 있어요 응원해 주세요

특별취재팀=강철원ㆍ안아람ㆍ손현성ㆍ김현빈ㆍ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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