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연한 피해 85% 비강남권
개발 부담금까지 겹쳐 박탈감
“큰 돈 내느니… 외곽으로 이사”
불안감에 강북서만 매물 쏟아져
서민들 새집 마련 꿈 ‘산산조각’
“특정지역 겨냥 정책 폐해 유발”
재건축 심사 대상 지역 85% 이상이 강북… 강남 짒갑 잡기 유탄에 증폭되는 불안감
자금력 부족한 강북 실거주자, “부담금 내느니…” 급매 놓고 시 외곽行 확산 추세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 폐해 여실히 드러나… 장기적 관점으로 전환 필요”
“툭하면 녹물이 나오고 외풍도 심해 겨울에는 문마다 비닐을 씌워가며 살았다. 곰팡이가 자주 피어 빗자루로 닦아 내며 10년 넘게 참은 것은 언젠가 새 집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 하나 때문이었다. 강남을 겨냥한 정책에 왜 강북 서민들이 눈물을 흘려야 하는 지 모르겠다.”
23일 서울 강북에서 단일 규모로는 최대 재건축 단지(3,930가구)인 노원구 월계시영아파트(미성ㆍ미륭ㆍ삼호3차)에서 만난 주민 이모(59)씨의 목소리는 추운 날씨만큼 싸늘했다. 최근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재건축 연한 연장 검토에 이어 최대 8억원이 넘는 재건축 개발 부담금 예상액까지 발표한 뒤 오히려 강북 재건축 실거주자와 서민들이 유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월계시영아파트 단지 내 13개 공인중개사무소에는 하루 종일 “이제 집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푸념이 가득한 전화가 빗발쳤다. 정작 자금 여력이 큰 강남 재건축 주민들은 관망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강북 실거주자와 서민들은 추가 자금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자 매물을 쏟아 내고 있다.
서울시와 부동산114 등에 따르면 서울에서 재건축 연한(30년)이 막 지났거나 임박한 1987~91년 준공 아파트 총 24만8,000가구 중 강남 3구의 비중은 14.9%(3만7,000가구)에 불과하다. 나머지85.1%(21만1,000가구)는 강남3구가 아닌 곳이다. 강남3구 아파트는 70ㆍ80년대 집중적으로 지어져 준공된 지 이미 35년을 넘긴 곳이 많다. 정부가 재건축 연한을 40년으로 연장한다 하더라도 정작 강북은 또 다시 10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반면 강남은 몇 년 안에 합법적으로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강북 서민들의 박탈감과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86년 준공돼 재건축 연한 30년을 넘긴 월계시영아파트는 재건축 기대감에 지난해 7월엔 전용 50㎡ 아파트 가격이 최고 3억6,000만원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8ㆍ2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3억4,000만원대로 하향 조정된 뒤 몇 달째 보합세다. 특히 최근엔 급매도 속출하고 있다. 실제로 이날 한 대형 포털 부동산사이트에 오른 월계시영아파트 매매 물량 268건 중 37건은 평균 거래가보다 낮은 가격에도 팔겠다는 물건들이었다.
노원구 월계동 미성합동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주말을 전후로 원주민들이 ‘부담금을 더 내느니 차라리 이사를 가는 게 낫겠다’며 집을 속속 내놓고 있다”며 “이들 대부분은 정부가 더 높은 수위의 규제를 하기 전 시장가보다 싸게 집을 판 뒤 그 돈으로 경기 별내ㆍ다산ㆍ갈매 지구 등 외곽의 싼 아파트 매입을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도봉구 창동의 한 부동산중개소 관계자도 “강남과 달리 강북 재건축 아파트 실거주자는 수입이 높지 않은 영세 서민들이 대부분”이라며 “정부가 이에 대한 고려 없이 겁주기로 일관한 탓에 강북 서민들이 느끼는 주거 불안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비강남권의 재건축 아파트 예정 단지의 조직적 반발 움직임도 감지된다. 준공 30년을 맞은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거주민들은 최근 청와대 청원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도봉구 방학동 주공아파트 단지 거주민도 국토교통부에 성명서를 보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 대책에도 강남ㆍ북 집값의 온도차는 더욱 확연해지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송파구의 아파트 매매가는 전주 대비 1.47%나 오른 반면 노원구와 은평구는 각각 0.12%, 0.06% 오르는데 머물렀다. 더구나 강북구는 0.01% 하락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부동산 정책이 특정 지역만을 겨냥해 추진되면 부작용과 폐해가 따를 수 밖에 없다”며 “강북 재건축 아파트에 대해서는 철저한 시장 조사와 여론 수렴 등을 거친 뒤 중장기적 정책을 내 놔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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