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알파인스키 대표팀이 훈련에 가상현실(VR)을 도입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미국스키스노보드협회(USSA)는 23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알파인스키 대표의 VR 훈련장면을 공개했다. 같은 날 워싱턴포스트(WP), 디지털미디어와이어 등 외신도 관련 소식을 일제히 전했다.
외신이 공개한 사진 속에는 미국 스키대표 로렌 로스(30)가 VR 안경을 쓰고 나무판 위에 서서 손을 내밀고 있다. 미 스키대표팀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주 1회 이상 선수들에게 가상현실 훈련을 실시했다고 한다. 그들이 VR 안경 속에서 보는 풍경은 강원 정선의 알파인 코스를 그대로 재현한 영상이다.
WP에 따르면 미국스키대표팀이 가상현실 훈련을 계획한 건 2016년부터다. 2년 전 정선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테스트 이벤트로 스키월드컵을 개최했을 때, 미 대표팀은 정선 알파인 경기장을 샅샅이 촬영해갔다. 코치 여럿이 360도 카메라가 부착된 헬멧을 쓰고 정선의 새 코스를 수십 번 활강하며 반복 촬영했다. 이후 미국에 돌아가 가상현실 기술 업체 STRIVR과 협력해 ‘정선 코스’를 재현해냈다.
문제는 ‘속도’였다. 스키 종목 중 최고 속도를 자랑하는 알파인스키 특성상 평균 시속 128㎞의 느낌을 영상에 담아내야 했다. 무작정 영상 속도를 높이면 선수들이 심한 구토감과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STRIVR 회장은 “선수들이 얼마나 토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느냐가 기술 완성의 기준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STRIVR은 최대한 선수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밸런스 디스크를 삽입해 영상을 다듬었고 지금은 몇몇 선수들이 주 1회 훈련할 수 있는 수준까지 기술이 안정됐다.
미 대표팀 훈련방식에 대해 대한스키협회 알파인스키 담당 관계자는 “2016년도 코스 상황이 지금과 100% 똑같을 수 없다”며 의문을 표했다. “그날 바람 부는 정도나 기온, 눈 내린 양에 따라서 깃발(기문) 위치가 변경되기 때문에 정확한 코스 생김새는 당일에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알파인스키의 경우 코스 모양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설질과 워터링 정도가 더 큰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워터링’이란 설질과 조금 다른 개념으로 코스에 인공눈을 뿌려 얼린 후 물을 뿌려 다듬는데 그때의 매끄럽기 정도를 뜻한다.
다른 관계자는 “선수의 유연성을 기르려면 같은 코스를 반복하는 것보다 다양한 코스를 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 스노보드 대표팀의 경우 국제스키연맹(FIS)와 협의 하에 일정 기간 평창올림픽 경기장 단독 이용 자격을 얻었으나 5일 정도만 훈련한 후 곧바로 해외 전지훈련을 떠났다. 관계자는 “기후 변수를 고려하면 다른 환경에서 적응 훈련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정선 알파인 경기장은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알파인스키 활강, 슈퍼대회전 종목을 위해 새로 준공한 것이다. 처음 코스가 공개됐을 때 모든 선수들이 낯설어할 수밖에 없었다. 전세계 알파인스키 코스는 모두 ‘세상 단 하나뿐인 코스’다. 코스별로 특색이 있어 그 점을 빨리 파악할수록 우승 확률도 높아진다. 여기서 소위 ‘홈 이점’도 생긴다.
새로 준공된 ‘정선 코스’는 테스트 이벤트로 경기가 열릴 때를 제외하곤 올림픽 개최 전까지 폐쇄되기 때문에 외국 선수들은 코스 경험을 쌓기 어렵다. 반면 개최국 선수는 국제스키연맹(FIS)과 협의 하에 단독 훈련 자격을 얻을 수 있어 약간의 경험을 더 쌓을 수 있었다. 홈 이점을 극복하려고 가상현실 기술을 올림픽 훈련에 도입한 건 미국 스키대표팀이 최초다.
김주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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