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납 못할 부적절한 문건”강경
사찰서 삼권분립 훼손 의혹까지
후속조치 통해 정면돌파 의지
비밀문건 개봉ㆍ중견 법관 이탈 등
법원 안팎 만만찮은 후폭풍 예상
‘판사 블랙리스트(뒷조사) 의혹’ 추가조사 결과 발표 이틀 만에 나온 김명수 대법원장의 전격적인 입장 발표는 예상을 뛰어넘는 강도 높은 수준이다. 판사 블랙리스트 존재와 사찰, 청와대 외풍 영향 등 삼권분립 훼손 의혹까지 후속조치를 통해 실체 규명을 하겠다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지금 국면을 “엄중한 상황”으로 규정했고, 이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24일 김 대법원장은 대국민입장문과 법관 대상 내부용 입장문을 통해 추가조사 결과 발견된 문건을 사실상 불법적인 ‘사찰 문건’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실체 규명 의지를 밝혔다. “블랙리스트 개념에는 논란이 있으므로 관련해 언급하지 않겠다”는 추가조사위원회 방침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셈이다. 이날 입장문에는 추가조사 결과 발표 이후 이어진 논쟁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중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이란 이름으로 권한 없이 법관 동향을 파악하고 성향에 따라 분류하거나 재판이 재판 외 요소에 의해 영향 받는 것으로 오해 받을 만한 일은 어떤 경우에도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해 추가조사 때 발견된 문건을 “용납할 수 없는 부적절한 문건”으로 정리했다.
실제 지난 22일 공개된 법원행정처 PC에서 발견된 문건을 두고 법원 내에선 의견이 엇갈렸다. “참담하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인사상 불이익 흔적이 없는 문건이라 블랙리스트가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됐고, 문건이 실제 실행됐는지를 두고도 갑론을박이 있었다. 이런 가운데 23일 대법관 전원이 “원세훈 상고심 재판 문건 관련 언론보도가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에 관한 불필요한 의심과 오해를 불러일으켜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명한다”는 입장을 발표, 추가조사를 주도한 김 대법원장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지자 소모적인 논쟁을 조기에 진화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밝힌 김 대법원장 입장을 보면 향후 성역 없는 조사가 뒤따를 전망이다. 이번에 추가조사위원회는 비밀번호를 풀지 못해 문서 등 760개 문서파일을 조사하지 못했고, 특히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검토(임종헌 수정)’ 등 부당한 사법행정 의혹이 짙은 제목의 파일 5개도 기술적 제약과 법원행정처의 협조 거부로 열어보지 못했다. 조사에서 나온 문건 내용이 실행됐는지 여부도 추가조사위원회 조사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밝혀지지 않았다. 법원 안팎에서 검찰 고발 필요성까지 대두되는 상황에서 김 대법원장이 “법원 스스로의 힘으로 밝히겠다”고 선을 그은 만큼, 외부의 조사를 받기 전에 후속조치 기구를 구성하고 강도 높은 조사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를 둘러싼 법원 안팎의 갈등과 진통도 커질 전망이다. 추가조사위원회의 행정처 내부 문건 조사 과정에서도 야권과 법원 내 일부 법관들이 강하게 반발했었다. 전ㆍ현직 법원행정처 심의관이 행정처 컴퓨터 하드디스크 공개에 동의하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상태에서 추가조사위원회가 일부 하드디스크를 복사해 문건을 확인했고, 이에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추가 조사를 결정한 김 대법원장을 비밀침해죄 등으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3차 조사의 핵심 역시 추가조사위가 손대지 못한 ‘비밀문건’의 개봉과, 관련 전ㆍ현직 고위 법관들에 대한 대면조사가 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김 대법원장의 본격적인 개혁 드라이브와 함께 중견 법관들의 대거 이탈도 점쳐진다. 내달 정기 인사를 앞두고 평소(40~50명)보다 많은 법관들이 대법원에 사의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법원 안팎에서 ‘적폐’로 지목되고 있는 법원행정처 보직을 역임하고,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을 앞두고 있던 사법연수원 25기를 중심으로 동요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법원장이 이를 감안한 듯 인적쇄신까지 직접 언급하면서 사법부가 점점 더 거센 태풍을 맞는 모양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